공화당 강경파 ‘극단정치’와 민주당 ‘진영정치’ 합작품
“다음은 뭔가?(What’s next?)”
3일(현지시간) 미국 의회 역사상 초유의 하원의장 해임결의안 가결처리 직후 혼란에 빠진 공화당 회의실에서 의원들 사이에 터져나온 개탄의 목소리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하원은 이날 오후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216표 대 반대 210표로 가결 처리했다. 매카시가 속한 공화당(218명) 의원 210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내 강경파 의원 8명이 이탈했다. 여기에 표결에 참여한 민주당 의원 208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234년 미국 의회 역사상 첫 해임
이로써 지난 1월 당내 강경파의 반대 속에 15번의 투표 끝에 어렵사리 하원의장에 선출된 매카시는 9개월 만에 물러나게 됐다. 234년 미 의회 역사에서 대통령, 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3위인 하원의장 해임안이 제출된 건 1910년(조셉 캐넌), 2015년(존 베이너)에도 있었지만 표결에 부쳐져 실제 가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초유의 사태는 의장 해임안을 낸 맷 게이츠 하원의원 등 공화당 내 ‘프리덤 코커스’로 대표되는 극단주의 강경파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매카시 의장이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중단)을 막기 위한 임시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재정지출 대폭 삭감 및 이민정책 예산 증액 등 자신들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민주당 정부에 협조했다며 해임을 추진했다.
해임안을 낸 게이츠를 비롯해 앤디 빅스, 밥 굿 등 공화당 강경파 의원 8명이 찬성표를 던질 거라는 건 예상됐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찬성표를 던지면서 뜻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비공개 회의 때 당론으로 ‘해임안 찬성’을 정했다고 한다. 매카시 의장이 임시예산안 통과로 정부 셧다운을 막는 데 기여하긴 했지만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를 하원 상임위에 지시하는 등 과정에서 민주당 측 신뢰를 잃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부채한도 협상 당시 약속을 깨고 셧다운 위기 직전까지 상황을 몰고 간 것에 대한 책임도 민주당은 거론했다. 결과적으로 공화당 내 비타협적 강성 진영의 ‘극단의 정치’와 공화당에 대립각을 세운 민주당의 ‘대결의 정치’가 결합해 최초의 하원의장 해임 사태를 부른 셈이다.
하원의장 공석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국은 대혼란에 휩싸였다. 매카시는 이날 취재진에게 “의장직을 떠난다.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화당 하원 2인자인 스티브 스컬리스 하원 원내대표가 당 의원들에게 차기 의장직과 관련해 연락을 시작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게이츠 의원은 차기 의장에 스컬리스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공화당 하원 서열 3위인 톰 에머 원내총무, 트럼프 전 대통령 측근인 짐 조던 법사위원장, 엘리스 스테파닉 의원도 거론된다. 차기 의장 선출 전까지 임시의장은 매카시 측근인 패트릭 맥헨리 금융위원장이 맡게 됐다.
차기 의장이 뽑힐 때까지 한동안 혼란이 불가피하다. 당장 내년도 예산안과 국방수권법(NDAA)안 등 주요 의사일정 처리가 당분간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하원의장 해임안 표결 과정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간 신뢰가 깨져 향후 각종 법안이나 고위 공직자 임명안의 여야 합의 처리 등 협치 구현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의회는 극심한 대치로 본예산 처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방예산 집행 마비 사태를 막기 위해 1961년 NDAA 제도를 도입한 뒤 매년 여야 합의로 처리해 왔다. 정치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프리덤 코커스’가 ‘비타협적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62년 만에 국방예산 관련 합의 관행마저 깨지는 또 다른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말 임시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빠진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처리도 다시 불투명해졌다. 이날 백악관은 커린 잔피에어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미국이 직면한 시급한 도전 과제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하원이 속히 의장을 선출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바이든, 우크라 지원 약속 재확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주요 동맹 정상과 통화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약속을 재확인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하원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제외한 임시예산안이 처리된 직후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지속적 공조 방침을 확인한 것이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통화에서 정상들은 우크라이나에 탄약과 무기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며 “겨울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 복구 방안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원의장 해임을 주도한 게이츠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2010년 하원의원(플로리다주)으로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1982년생인 그는 같은 당 소속 대선배 매카시를 하원의장직에서 끌어내리면서 존재감을 보여줬다. 조부 제리 게이츠와 부친 돈 게이츠 모두 워싱턴에선 큰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지역구에선 중량감 있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린 정치가 집안 출신이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강태화·전수진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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