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사세 아니냐고? 프리즈 서울을 둘러싼 이야기
Q : 프리즈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작가
A : 일레인 콱(하우저앤워스 아시아 총괄 파트너) 김범 작가와 강서경 작가의 작품을 아주 재밌게 봤다.
A :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마이크 리 작가의 작품.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남아야 하는 ‘코리아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가 많지만, 그것을 독창적인 작업 방식을 통해 특유의 화풍으로 도출해낸 것이 인상적이다.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우한나 작가 등 젊은 작가들의 에너지가 자본의 논리로 팽팽한 페어장 전반의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또한 강서경 작가의 작품을 국제갤러리뿐 아니라 티나 킴 갤러리, 커먼웰스 앤 카운실 갤러리 등 곳곳에서 마주친 것도 좋았다. 리움 개인전에서 대규모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면, 페어에서는 이와 궤를 같이하되 보다 상업적인 스케일로 변용된 작업들이 등장했다. 미술관에서 담론을 펼치던 작품이 시장에서 설득 가능한 형태로 스스로를 바꾸는 모습은 미술계에서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라도, 늘 흥미롭다.
A : 이지혜(〈아트토크 머니토크〉 저자) 매튜 웡이라는 캐나다 출신의 자폐 작가. 그가 생전에 그린 잘 익은 복숭아 작품이 계속 생각난다. 한 번도 미술을 배워본 적이 없는 ‘아르 브뤼’ 작가인데, 이번 프리즈에서 본 그의 작품 역시 크기는 작았지만 몇 번을 돌아 다시 작품을 보러 왔을 정도로 뇌리에 깊게 박혔다.
A : 손엠마(리만머핀 수석 디렉터) 현남 작가. 젊은 에너지, 독특함, 재료의 사용, 조각을 다시 보게 만드는 시선이 재미있다. 또한 ‘포커스 아시아’ 섹션의 노바 컨템포러리에서 봤던 태국 작가 프래 푸피티야스타폰. 시적인 풍경화인데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다.
A : 정영도(작가) 나이트 갤러리의 안드레아 마리 브레일링의 ‘Dragon Ball’(2023). 페인팅의 완성도는 물론, 제목이 주는 익숙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A : 황규진(타데우스 로팍 디렉터) 이미 뜬 작가들보다는 갤러리에 새로 영입된 신인 작가 위주로 본다. 이번엔 파울로 몬테이로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다. 서용선 작가 작품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A : 노두용(실린더 대표) 화이트 큐브에 있던 에디 피크의 ‘Soliloquy of the Glabrous Outraged’. 그가 기존에 선보인 퍼포먼스 및 영상, 혹은 그래피티 요소를 지녔던 이전 평면 작업과는 달리 시간성이 드러나는 유화 작업이었는데, 작가가 가진 특징적인 컬러 팔레트를 통해 구체적인 대상이 드러나는 화면이 인상적이었다.
A : 김재석(갤러리 현대 디렉터) 사이먼 후지와라의 'Who the Bær' 시리즈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에스더 쉬퍼의 부스에서는 퍼포머가 관객의 이름을 묻고 이를 크게 호명하는 피에르 위그의 ‘Role Announcer’가 시선을 끌었다.
A :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갤러리 현대는 라이언 갠더의 솔로 부스전을 준비했다. 다른 갤러리 부스에 비해 입구를 폐쇄적으로 조성하고, 그 안에 하늘색 스포츠카를 배치해 흡사 자동차 쇼룸처럼 느껴지도록 연출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슈퍼카가 관객의 시선을 압도적으로 한번 사로잡고, 이후 그 위에서 버둥대는 날파리 모형이 눈에 들어오는 구조를 가진다. 평생 꿈도 못 꿀 드림카와 서서히 죽어가는 벌레의 대비. 마치 프리즈를 겨냥하는 듯한 작가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A : 권오상(작가) 실린더의 유신애 작가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전통적인 회화 방식을 차용해 지옥의 한 장면을 고요하게 묘사했다. 살까 고민했는데 집에 있는 애기들이 무서워할 것 같아 포기했다.(웃음)
A : 이소영(아트 컬렉터) 실린더의 유신애 작가 작품은 종교화처럼 삼면화로 만들어 관객의 호응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에이라운지의 정수정 작가도 인상적이었다.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인 방향으로 동시대 미술이 흘러가는 가운데 구상 회화만으로도 폭발적인 힘을 전달했다.
A : 김성우(프라이머리프랙티스 큐레이터) 양유연 작가. 그의 작업은 빛과 어둠의 긴장 관계 안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개인의 불안감과 정서를 탁월하게 포착한다.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매우 일관되게 주제를 이끌고나가면서도 매우 섬세한 실험을 구사한다. 좋은 작업이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양유연의 작업이 그러하다.
A : 장진택(독립 큐레이터) 에스더 쉬퍼에서 선보인 피에르 위그의 ‘Role Announcer’.
Q : 젊은 신인 작가들은 충분히 주목받고 있는가?
A :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아트페어는 작가가 직접 참여하는 것이 아닌 갤러리가 참여하는 형태이고, 높은 부스비를 지불해야 하기에 안정적으로 시장에 세일즈가 되는 중견 작가를 선보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꽤 많은 갤러리가 떠오르는 신진 작가와 함께 출전하는 것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갤러리스트들의 예술기업가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지점이지 않을까 싶다. 세일즈도 중요하지만 아트페어라는 무대에서 본인들이 앞으로 에이전시로서 육성할 작가를 과감히 선보이는 부스가 많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실제로 올해 프리즈 최우수 갤러리, 상은 떠오르는 작가를 조명하는 신생 갤러리, 실린더가 수상했다.
A : 에스더 김 바렛(VSF 갤러리 대표) 올해 VSF 갤러리 부스에 니키 리 같은 기성 예술가와 듀 킴 같은 신예를 같이 선보인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다. 국제적으로 한국인이나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들은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금이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본다.
A : 황규진(타데우스 로팍 디렉터)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만 해도 젊은 신인 작가 2명, 제이디 차와 정희민 작가를 조명했다. 정희민 작가의 작품은 브레게 부스에서도 특별전처럼 작은 작품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타데우스 로팍뿐만 아니라 휘슬 갤러리, P21 등 젊은 작가를 다루는 갤러리가 많았다. 게다가 작년보다 포커스 아시아 섹션을 많이 늘린 것도 체감했다.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아트페어는 판매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는 자리다. 갤러리 입장에선 사활을 걸어야 하기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을 것이다. 신인이라 해도 ‘주목받는 작가’의 카테고리에 들지 못하거나, 언급될 기회조차 없어 상실감과 문제의식을 느끼는 작가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쩌면 이런 반작용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해외 미술 관계자 및 컬렉터들은 실제로 미술관은 물론이고 한국 작가들의 스튜디오도 방문하고 싶어 한다. 꼭 아트페어 전시장이 아니더라도 연계한 행사 혹은 비영리 공간 등에서 ‘재능 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을 활발히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A : 이소영(컬렉터) 미술계는 늘 신진 작가를 조명한다. 미술관이나 페어가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상이나 지원도 정말 다양하다. 배제되는 건 오히려 중견 작가들이다. 대부분 50~60대가 가장 힘든 시기인데, 이때 성실함과 자기 관리, 열정으로 버텨내야 70~80대까지 작업할 수 있고 결국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A :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프리즈는 자본 중심적인 기업이고, 미술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시장이다. 즉 시장성, 상품성이 높은 작가를 우선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아트페어는 판매를 넘어 전시·교육의 기능까지 두루 맡고 있으며, 프리즈도 아티스트 어워즈, 필름 상연 등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최우선으로 두는 목표는 언제나 판매 성과다. 신인 작가를 발굴, 육성하는 책임은 프리즈뿐 아니라 한국에 지점을 둔 갤러리가 공통으로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A : 송정희(〈매혹하는 미술관〉 저자) 한국 작가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해외 미술계 인사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한국 작가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눈길을 끌 만한 화제작이 여전히 부족했다는 평가는 새겨볼 만하다. 박서보와 하종현 등 단색화 거장들은 다시 한번 글로벌하게 통하는 인기 작가임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중진 작가와 신진 작가가 페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여건도 시스템도 부족하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한 술에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향후 3년 이상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의 많은 작가가 홀로 고군분투하던 과거와 달리 더 많은 기회가 확대될 것이다.
Q : 국내 갤러리들과 한국 작가들은 선전하고 있는가?
A : 이지혜(〈아트토크 머니토크〉 저자)2022년은 한국에 새로운 전시 공간이 가장 많이 개관한 해다. 물론 이 중 무려 65%의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갤러리다. 글로벌 갤러리들의 틈바구니에서 미술 시장을 주도해나가는 국내 갤러리가 많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그린라이트’다. 과거는 시장 규모 자체가 작고, 거래되는 작가군이 단조로워 신진 작가를 다루는 갤러리 자체가 드물었다. 오늘날 한국 미술 시장에 단색화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대표 사조가 없다는 약점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 갤러리가 많아진 지금 새로운 사조와 다양한 물결로 미술 시장에 파도를 일으킬 갤러리들의 행보가 기대된다.
A : 권오상(작가) 잘하고 있다. 리움미술관에서 강서경 작가 개인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들고 나온 갤러리가 많았다. 한국 작가 중 젊은 작가 축에 속하는 이진주 작가 작품도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볼 수 있었고, 타데우스 로팍에선 정희민, 한선우, 제이디 차의 그룹전을 열었다. 예전엔 해외 갤러리들이 한국 작가들을 프로모션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는데 올해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A : 송정희(〈매혹하는 미술관〉 저자) 아트페어는 작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안목도 팔고 기회도 판다. 몇 가지 참신한 전략은 좋았다 1갤러리 1작가를 추구한 일부 국내 거물급 화랑 전략은 시선을 끌었다. 실험 작가로만 구성한 국내 유명 갤러리도 있었다. 관람객 수 측면에서도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작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판매 작품 및 판매가 역시 작년 수준과 비슷하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아시아 최대 규모라는 수식 뒤에 숨어 있는 함정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상당수 중견 갤러리들, 특히 신진 작가 작품을 갖고 나온 갤러리들은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됐다는 하소연도 많다. 다른 돈을 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가지 긍정적인 부분이라면 전 세계의 다양한 미술계 인사와 컬렉터들이 한국을 찾았다는 점이다. 이들을 겨냥할 작품 구성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컬렉터들의 심리, 트렌드 등을 파악해 영리하게 장사할 필요가 있다.
A : 이소영(컬렉터) 지갤러리, P21, 화이트 노이즈 등 비교적 젊은 갤러리들이 활약했다. 전체적으로 작가들의 해외 진출이나 비엔날레 참여까지 고려하는 게 보인다. 역사가 오래된 학고재나 국제 갤러리 등도 프리즈 서울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있다. 특히 학고재는 마스터 부스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중요한 한국 작가들을 많이 소개했다.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국제갤러리는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현재 한국의 미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작가들의 ‘오늘’을 보여준다는 의도로, 최고의 작품들을 선별해 프리즈 부스를 꾸몄다. 동시에 키아프 부스에서는 우고 론디노네의 단독 부스를 열었다. 이렇게 프리즈와 키아프의 부스를 차별화하는 나름의 전략은 관객과 고객 모두를 위한 것이다. 올해 있었던 갤러리들의 다양한 시도는 매우 유의미했다고 보고, 내년엔 더욱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Q : ‘그사세’로 오히려 미술 진입 장벽을 높이는 건 아닐까?
A : 류성실(작가) 언제 순수미술의 진입 장벽이 안 높았던 적이 있었나?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그사세’에 대한 반감을 뛰어넘은 것 같다. 이번 페어를 치르고 보니, 요즘 관객들이 페어를 전 세계 미술계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일종의 대규모 그룹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컬렉터뿐만 아니라 전시를 보러 가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는 새로운 관객들이 많아졌다는 걸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다. 특히 VIP 고객이 아닌 관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 주말의 전시장 풍경은 이들에게 프리즈라는 아트페어가 흥미로운 볼거리이자 즐길 거리임을 증명한다. 미술 시장이 독특한 건 2개의 트랙을 모두 가져가야 한다는 점이다. 고객(컬렉터)도 있지만, 관객도 있다. 한쪽만 만족시키는 미술은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프리즈는 현재 일반 관객들에게 미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보여주는 자리이기도 했다.
A : 권오상(작가) 미술은 항상 그래왔다. 왕과 귀족들이 사는 것이 그림이고 조각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된 거지. 누구든 ‘그사세’에 가볼 수 있으니까. 미술을 좋아하는 것과 사는 건 큰 차이가 있다. 미술 컬렉팅은 고난도의 쇼핑에 가깝거든. 그래서 나는 미술을 좋아하는 관객들이 한 번쯤 가능한 예산에서 작품을 사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이 쇼핑엔 어떤 공허함도 찾아오지 않을 거다. 인류의 문화유산을 산 거 아닌가. 백 년 후엔 내 소장품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문화재로 전시돼 있을지 어떻게 아나?(웃음) 컬렉터로 유명한 허버트&도로시 보겔 부부를 보라. 우체부와 도서관 사서지만 작은 아파트 벽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작품을 빼곡히 걸어놨고, 그 컬렉션에서 온갖 대가들이 나왔다. 꼭 부자라서 컬렉팅을 하는 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컬렉터의 힘은 더 강해져야 한다. 판매가 잘돼야 전시도 잘된다.
A : 이지혜(〈아트토크 머니토크〉 저자) 컬렉터는 미술 시장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산업의 유일무이한 소비자기 때문이다. 미술 시장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지만 이 산업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방향키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 컬렉터다. 물론 치솟는 VIP 티켓값과 갤러리에서 기구매 손님들에게 지급하는 VIP 티켓은 미술 시장에서 누가 ‘인싸’인지 아닌지를 나누는 기능을 하고 있고, 이를 ‘그사세’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VIP 데이가 이러한 기준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구매 이력이 충분히 있는 컬렉터가 오는 날과 퍼블릭 데이에 방문하는 미술 애호가들을 위해 갤러리들은 성격에 맞춰 작품도 달리 배치하고, 세일즈 전략도 따로 정하기 때문이다. 한 갤러리에서 일하는 직원은 VIP 데이에 주로 듣는 질문으로는 “이 작가, 다른 작품 더 있어요?”를, 퍼블릭 데이에 가장 많이 하는 말로는 “그림 만지지 마세요”를 꼽았다.
A :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아트페어 자체가 좋은 작가들의 작품을 ‘꽤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좋겠다. 작품을 구입하는 여러 경로 중에서 아트페어는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하나의 브랜딩으로 가지고 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작가들이 조명되지 않을까? 아트페어 자체를 프리미엄 전략으로 짜서 마스터피스급의 작품에 비중을 둔다면, 오히려 아트페어에서 구매해야 하는 동기를 떨어뜨리는 맹점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A : 이소영(컬렉터) 아트페어는 옥션이 아니다! 미술 시장은 작가, 갤러리, 페어, 미술관, 컬렉터가 모두 연결돼 있고, 작가를 지원하려면 그에게 판매 금액의 절반이 돌아가는 1차 시장에서의 거래가 활발해져야 한다. 갤러리와 아트페어는 대표적인 1차 시장이고, 체감상 컬렉터들의 실구매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A : 신경철(작가) 프리즈 행사 자체보단 언론의 보도 방향이 ‘그사세’를 만드는 것 같다. 수십억짜리 작품을 살 수 있는 사람보다 일반 관객 수가 훨씬 많을 테고, 중저가 작품들도 있을 텐데, 판매액을 강조하는 기사가 먼저 쏟아지면 일반 관객 입장에선 처음부터 포기하게 된다. 첫날 판매된 작품이 얼마나 비싼지 강조하는 내용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갤러리와 작가가 참여하고, 일반인들이 어떻게 즐기면 좋은지 알려주는 기사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Q : 행사가 넘쳐났던 프리즈, 가장 인상 깊었던 이벤트는?
A :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아트 위크를 맞아 열린 많은 행사가 있었는데, 그중 한국의 예술 스타트업 아티팩츠가 진행한 8일간의 아트 토크를 흥미롭게 봤다. 한국의 주요 작가들을 비롯해 프리즈 서울 디렉터,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 큐레이터,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스트와 같은 주요한 미술계 인사들과 대담을 이어가는 행사라 의미 깊었다.
A :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삼청 나이트에 대한 입소문이 엄청났다. 전시를 저녁 늦게까지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미술인과 일반 시민 모두 제한 없이 파티를 즐기는 자리로 운영됐다. 지난해 프리즈가 개막하던 즈음 패트릭 리 디렉터는 서울 자체를 미술 축제의 장으로 만들겠노라 포부를 밝혔는데, 지난 1년간 프리즈 서울이 내실을 공고히 다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국제갤러리의 삼청 나이트 행사에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그사세’에 주눅 들지 않고 미술계에 진입한 모든 분들을 대접하는 잔칫집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작가들과 미술 관계자들, 관객들과 컬렉터들이 모두 한 마당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부지불식간에 존재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술계에서는 VIP 디너 같은 방식의 행사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삼청 나이트가 좋았던 건 모두에게 열려 있고, 모두를 환대하는 행사였다는 사실이다.
A : 류성실(작가) 삼청 나이트 때 국제갤러리에 갔다가 운 좋게 얻어먹은 통돼지구이가 맛있었다.
A : 신경철(작가) 한남 나이트, 청담 나이트, 삼청 나이트에서 밤늦게까지 전시를 보고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았다. 미술계 인사들이야 전시 오프닝 파티 같은 게 익숙하지만, 그런 문화가 익숙지 않은 일반 관객들과 함께 어울려 미술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일주일 동안 펼쳐진 ‘미술 축제’였다.
A : 황규진(타데우스 로팍 디렉터) 아트와 관계없이 무분별하게 열린 파티 틈바구니에서도 좋은 행사가 있었다. 김민정, 이건용, 이불, 이지아, 제이디 차, 지지수, 하종현 작가와 협업한 레이디 백을 출시한 디올은 해당 작가들을 초청해 아트 토크를 진행했는데 작가에 대한 심도 있는 정보를 제공해 좋았다.
A : 이소영(컬렉터) ‘디올 레이디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과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 행사. 2016년부터 디올이 아티스트와 꾸준히 협업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패션 브랜드와 예술의 협업이 동시대 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게 되는 계기였다.
A : 손엠마(리만머핀 수석 디렉터) 한남 나이트 때 리만머핀 갤러리 앞 야외 공간에서 음악 틀고 바비큐를 구웠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았는데도 금방 동났다!
A : 권오상(작가) 각종 행사며 파티가 이어지는 아트 위크는 마치 명절 같았다.(웃음) 과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트페어는 시장이지 현대 미술 담론을 논하는 곳이 아니다. 시장 이상의 기대를 할 필요는 없고, 아트페어를 올림픽 하듯이 여길 필요 또한 없다.
A : 김성우(프라이머리프랙티스 큐레이터) 프리즈 필름을 기획한 입장에서 당연하게도 프리즈 필름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다. 이번 프리즈 필름은 ‘It was the way of walking through narrative’라는 주제 아래 영상 고유의 언어를 발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안하고자 했다. 여기서 ‘발굴’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과 오늘날의 현상 아래 존재하는 새로운 대안을 개념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 단순히 시각적 미감을 넘어 영상 작업이 가진 언어 자체를 다시 한번 고민하고, 그를 통해 오늘을 다시 한번 감각하길 바랐다. 또한 이번 프리즈 필름은 지난해와는 다르게 여러 비영리·독립 예술 공간과 협력해 전시를 진행했다. 동시대 미술의 다이너미즘은 시장과 활황과는 별개로 창작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는 비영리 예술 공간의 실험과 담론 중심의 창작이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프리즈는 상업적인 페어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비영리 공간과 협업을 진행했고, 오늘날 예술 창작의 동력을 감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고 평가할 수 있겠다.
Q : 프리즈의 명과 암
A : 윤혜정(국제갤러리 이사) 프리즈는 원래 천막을 치고 시작한 젊고 실험적인 아트페어로, 권위를 지닌 아트바젤의 대항마였다. 지금은 시장 논리 때문에 아트바젤과 다를 바 없어졌지만 말이다. 브랜드도 파티도 좋지만, 프리즈 페어장이 아닌 외부에서라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또 한 가지 중요한 건 공동 주최인 키아프와의 관계다. 우리나라에서 수십 년간 메인 아트페어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키아프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키아프도 나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겠고, 언론에서도 프리즈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키아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활발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A : 황규진(타데우스 로팍 디렉터) 개인적으로 걱정되는 것은 주변 행사들에 치여 프리즈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 프리즈의 고객은 부스를 사는 갤러리들이고, 갤러리의 고객은 작품을 사는 VIP들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각종 브랜드 파티와 디제잉 파티가 VIP들을 프리즈 밖으로 데리고 나가버린다. 아트와의 접점이 단 하나도 없는 파티들은 ‘프리즈’ 이름값에 숟가락을 얹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프리즈 런던, 아트바젤 등 해외 어떤 아트페어를 가도 이렇게 파티를 많이 하는 곳은 없다.
A : 일레인 궉(하우저앤워스 아시아 총괄 파트너) 상업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프리즈의 가장 큰 목적은 작가의 명성을 높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 작가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올해 프리즈 서울은 컬렉터들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저널리스트, 학생 등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다만 홍콩이나 중국에 비해 영어 사용이 약한 것이 한계라면 한계다. 한국이 강력한 시장인 건 확실하지만 좀 더 세계적으로 뻗어가기엔 언어의 장벽이 있다.
A : 이지혜(〈아트토크 머니토크〉 저자) 결국은 미술 시장의 근간이 자본이라는 명확한 사실이 명과 암이다. 메가 갤러리들이 서울 한복판에 모여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판매가 이뤄진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그러나 시장의 공급자와 수요자 논리를 떠나서도 당연히 미술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마켓'의 기능을 하는 아트페어의 특성상 미술의 공공성은 배제될 수밖에 없으니까.
A : 이지현(‘널 위한 문화예술’ COO) 연계·부대 행사의 대부분이 파티의 형식을 취했다. 물론 SNS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인증샷이 파티에 집중되는 경향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브랜드가 파티에 비중을 많이 둔 것으로 보인다. 명품 브랜드와 공식적으로 손잡고 멋진 파티를 기획한 점은 좋았으나, 주요 해외 인사들이 대거 입국하는 상황을 잘 고려해 세미나와 논의의 장을 더 많이, 심도 있게 기획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A : 우한나(작가) 설치·조각을 하는 작가로서 작년 프리즈 서울에 왔을 때 느꼈던 무력감을 기억한다. 조각을 제대로 프레젠팅하고 있는 갤러리가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페어에서 시장성을 갖는 작업이 주류가 되는 것이 당연하나, 어렵지만 가치 있는 시도를 하는 갤러리들이 더 유입될 수 있으면 좋겠다. 포커스 아시아, 프리즈 필름, 아티스트 어워드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조각, 설치를 따로 조명하는 프로그램도 생기길 희망한다. 한편 미술계의 모든 중요한 이벤트가 프리즈 시기에 맞춰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프리즈가 서울에서 열리게 된 것은, 프리즈가 생기기 전부터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아트 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A : 노두용(실린더 대표) 서울에만 미술 인프라가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방에도 미술 기관, 갤러리, 대안 공간들이 탄탄하게 갖춰지고 다양성이 확보돼야 장기적으로 한국 아트 신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획일화된 제도적 경로를 벗어나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갤러리 입장에서도 신진 작가를 프리즈에 전시하기엔 위험 부담이 있을 터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한 방법으로 제도적인 문제와 지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A : 장진택(독립 큐레이터) 프리즈 서울을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키아프 서울이다. 이들은 5년간의 장기 협약을 맺었는데, 문제는 두 페어의 차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프리즈와 대비되는 키아프의 부진으로 볼 수 있는 한국 미술계 전반의 문제는 뚜렷하다. 자기 주도적 개혁의 필요성이 그것이다. 국가 산업으로서의 문화 예술 분야 발전을 목표로 주체들의, 주체들에 의한, 주체들을 위한 합당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역성을 기반한 차별화 전략으로 이 위기를 기회로 돌려야 한다.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할 때다.
A : 신경철(작가) 작가 입장에서는 ‘그래도 프리즈가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작가는 국내 아트페어도 참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큰 행사가 있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받을 수 있거든. 교과서에서 보던 유명한 작가의 작품부터 국내 신진 작가의 참신한 작품까지 한 번에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내 작업의 방향성을 만들어가는 기회기도 하다.
A : 이현(〈아트인컬처〉 부편집장) 프리즈 서울 첫해에는 오픈런 때문에 아트페어 입구가 북새통을 이뤘다. 전시를 보기도, 어디론가 이동하기도 어려울 만큼 동선이 복잡했다. 반면 올해는 VIP 입장 시간을 나눠 전시장을 쾌적하게 유지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취약한 관람층에게는 진입 장벽이 되기도 했다.
Q : 2회째 성황리에 개최됐고 키아프와 5년 공동 개최 계약을 한 프리즈,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A : 이지혜(〈아트토크 머니토크〉 저자) 글쎄,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작년에 프리즈 서울을 처음 개최한 직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내년이 정말 중요하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일단 작년보다 참가 갤러리 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올해는 세계 갤러리 랭킹 5위인 영국의 화이트 큐브가 도산공원에 갤러리를 열었고, 프리즈 서울의 개최 직전에는 랭킹 1위에 빛나는 가고시안 갤러리가 최초의 한국인 디렉터를 선임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그 외에도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아트 위크에 팝업 전시를 열며 적극적으로 한국 컬렉터와 스킨십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야 긍정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각자가 계산기에 어떤 숫자를 두드리는지일 것이다. 프리즈 서울 2회 차가 돼보니 더 확신이 드는 것은 딱 하나뿐이다. ‘2024년 가을에 열리는 프리즈 서울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A : 노두용(실린더 대표) 공동 주최인 키아프가 국제 페어로서 얼마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리고 프리즈는 얼마나 한국 시장을 심도 깊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A : 김재석(갤러리 현대 디렉터) 올해는 페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열려 축제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듯 보였다. 갤러리와 기관에서 준비한 너무 많은 행사에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동 개최의 시너지 효과는 충분히 확인했다. 내년이 프리즈 효과의 장기 지속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해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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