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레이트]때로는 광기도 코미디가 된다

이종길 2023. 10. 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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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창작 욕망 그린 김지운 감독
플랑 세캉스로 강박관념·협업 동시 강조
"최악의 순간이 와도 유머를 잃지 말자"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다. 김기영 감독은 영화 '하녀(1960)', '화녀(1971)', '충녀(1972)' 등에서 도착(倒錯)을 앞세웠다. 여성들이 하나같이 뒤틀리고 이상해진다. 자학적 상상으로 채워지는 공포는 가학적 사회를 향한 공격이다. 한국 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병리적 증상이 혼재돼 나타난다. 시대적 우울감에 저항하는 뒤틀림이 스크린 안팎을 관통한다.

김지운 감독은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에너지이자 살아가는 기저"라며 "고전적 형태로 전달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신작 '거미집'에 극중극을 배치한 이유다. 주인공은 영화감독 김열(송강호). 걸작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촬영을 마친 영화 '거미집'을 다시 찍는다. 극중극은 흑백 화면이다. 배경인 1970년은 그 틀을 벗어난 시기.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클래식 영화로 상징화하고자 했다.

"극중극이 다소 난폭한 장르 영화다. 그에 맞는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흑백을 빌렸다. 흑백 영화인 '하녀', '마의 계단(1964)', '디아볼릭(1955)', '싸이코(1960)' 등을 참고하기도 했고. 반대로 극은 상업적 요소를 표방하던 시대에 부합하려고 화려한 색으로 꾸몄다. 두 공간이 연결되는 지점은 콘트라스트(한 화면에서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간의 격차)로 맞췄다. 나머지는 현실과 허구를 명징하게 구분하고자 했다."

강렬한 욕망은 창작에서 나타난다. 김열이 복수에 걸쳐 플랑 세캉스(Plan-sequence)를 주장한다.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지는 신 또는 시퀀스다. 촬영하기 까다롭지만 고전 미학 관점에서 영화를 한층 우아하게 만든다. 관객이 카메라의 존재를 잊을 만큼 사실성도 극대화한다. 김열이 구사하는 플랑 세캉스는 정반대 성격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로프(1948)'처럼 카메라의 존재감이 크다. 곳곳에서 예술적 비전을 담아야 한다는 김열의 강박관념이 새어 나온다. 김지운 감독은 "예술가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과 영화 제작이 협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김열이라면 플랑 세캉스를 2류 감독에서 벗어날 열쇠로 생각할 듯했다. 집착을 통해 완성되기에 극중극도 자연스레 욕망의 산물로 나타날 듯했고. 한편으로는 김열을 포함한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촬영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지 않나. 롱테이크를 한 번에 완성하려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노력을 통해 영화가 협동 예술이란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전까지 프레임 밖은 그다지 조화롭지 않다. 김열은 제작사의 외면과 문공부의 검열로 재촬영에 어려움을 겪는다. 겨우 마련된 판에서도 배우들의 불만을 달래기 바쁘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에는 배우들의 가짜 연기 등을 내심 아쉬워한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열거하면서까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또한 믿음과 불신 사이를 오갈 만큼 불완전하다.

김지운 감독은 김열과 롤 모델의 대화로 병리적 증상을 보여준다. 알고 보면 경험으로 체득해 만든 허구다. "촬영장에서 스스로를 천재 같이 느끼다가도 쓰레기처럼 생각할 때가 있다. 박찬욱 감독조차 그렇다고 하더라. 김열에게 그런 초상을 불어넣으려고 애썼다. 상반된 느낌은 극과 극중극에서도 나타난다. 세트 안은 화려하고 장식적이다. 하지만 벽 하나만 통과하면 앙상하고 보잘것없는 세계가 나온다. 불협화음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 속에서 최악의 순간이 와도 유머를 잃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병리적 증상은 때때로 코미디로 치환된다.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을 찍으며 자각할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던 광기가 우스꽝스럽게 발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교가 폭발하는 신을 촬영하는데, 폭발물 불씨가 옆 세트에 옮겨붙었다. 내가 '컷'을 외치자마자 모두가 불을 진압하려고 뛰어갔다. 나만 카메라 감독에게 향하고 있었다. 몸을 움츠린 그에게 태연하게 물었다. '잘 찍혔어?'"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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