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지역 영화 예산 삭감 칼질에, 영화계 패닉 [D:이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2024년도 영화제 및 지역 관련 지원 예산이 대폭 줄어들면서 영화계 안팎으로 예산 삭감 철회와 증액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진위는 내년 한국 영화 진흥 예산이 734 억원(영화발전기금 464 억원, 일반회계(국고) 270억원) 으로 편성됐다고 밝혔다. 또한 사상 처음으로 체육기금 300억 원, 복권기금 54억 원의 영화발전기금 (이하 영발기금) 전입을 확정했다.
그러나 복권 기금 54억은 전액 장애인과 청소년 등 문화 소외 계층의 영화 향유권 확대를 위한 예산으로 쓰인다. '장애인 관람 환경 개선'에는 46억 원으로 146% 증액시켰고, '차세대 미래 관객 육성'을 신규 사업으로 개설해 9억 원을 배정했다.
국고 270억 원 중 250억 원은 침체된 한국 영화 투자·제작 활성화를 위한 영상전문투자조합에 쓰인다. 또한 하반기 중 '한국 영화 개봉 촉진 투자조합'을 신규 결성한다. 110편의 미개봉 한국 영화의 개봉 촉진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으로, 순 제작비 30억 원 이상 규모의 작품에 우선 투자해 개봉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의도다.
영진위는 2005년 이후 역대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점과, 타 기관 전출금 확보를 강조하며 영발기금 우려를 해소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국내 영화인들은 국내외 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 예산과 창작·제작 지원에서는 예산이 삭감되거나 폐지돼 충격에 휩싸였다.
지역 영화제를 지원하는 '국내외 영화제 육성지원사업' 예산은 지난해 52억 5900만 원에서 24억 원 감액 된 25억 1900만 원을 배정 받았다. 절반 수준으로 삭감돼 국내·국제영화제를 통합하여 기존 40개 지원에서 20여 개로 축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역 영상 관련 사업은 더욱 처참하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관련 사업'과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은 각각 8억과 4억에서 전액 삭감됐다. 지역영화 관련 사업은 지역 간의 문화 격차를 인식해 2018년부터 영화 관련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의 상황에 맞춰 효율적으로 영화인 육성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시작됐다.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예산은 2023년 117억 3000만 원에서 2024년 70억 원으로 40.3% 줄었다.영진위 지원을 받는 장·단편 영화 및 다큐멘터리 작품 수는 올해 136편에서 내년에는 75편으로 줄어든다.
이 같은 영진위의 사업 예산 삭감과 폐지 등의 결정은 줄어든 영발기금이 영향을 미쳤다.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은 "영발기금의 충당 여력이 없는 상황을 감안할 때 일부 사업의 조정이 불가피했다"라며 "영발기금 고갈에 따른 재원 다각화를 실현한 부분과 펀드 출자 확대 등 영화 산업 내 선순환 구조 마련을 위한 재투자 사업을 적극 확대한 부분은 평가받아야 한다"라고 향후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위한 사업을 지속 기획·발굴해 나가겠다고 했다.
영발기금은 영화관 입장권 수익의 3%를 떼어낸 부과금과 국고지원 등으로 조성되는 법정 기금이다. 영발기금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예산의 원천 역할을 하며 각종 영화 관련 지원 사업에 활용돼 왔다. 팬데믹 이후 줄어든 관객 수는 자연스럽게 영발기금의 직격탄이 됐다.
영진위에 따르면 2023년 영화 전체 매출액은 6078억 원, 전체 관객 수 5839만 명이다.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8390억 원)의 72.5% 수준이다. 한국 영화 매출액은 2122억 원으로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3929억 원)의 54.0% 수준이다. 전년과 비교했을 때도 5.9%(133억 원) 감소했다. 2023년 상반기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105만 명으로 2017~2019년 같은 기간 평균(4782만 명)의 44.0% 수준, 전년 동기 대비 6.3%(141만 명) 감소했다. 즉, 관객 수가 회복되지 않는 한, 영발기금의 독자적인 증액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지난 6월 문체부가 영발기금 예산을 부실하게 운영한 사실을 파악하고 사업 체계를 전면 정비한다고 밝힌 것도 지금의 상황과 관계 있다고 풀이된다.
당시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영진위가 5년간 24억 원의 예산을 쓴 영화기구 설립이 실패하는 등 예산을 방만하게 운영하고, 지원대상 선정에도 불공정성 문제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영화제작지원' 사업이 매년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편성되지만 최근 3년간 실집행률은 30~40%대에 불과했다.
한편 영화인들은 대한민국 정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영화에 관한 지원 역할을 위임 받아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한국영화 및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인 영진위가, 올해 내린 예산의 칼질은 정체성과 장기적인 영화 발전과 거리가 먼 처사라고 보고 있다.
국내개최영화제연대는 2024년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2차까지 발표했다. 국제·국내 영화제가 일제히 공동성명을 낸 것은 최초 사례로써 영화제연대는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이 영화창작, 영화배급, 영화문화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의견이다.
지역영화 네트워크 및 영화단체는 정부의 전액 삭감 결정은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를 봉쇄하고 포기하겠다는 무책임한 처사라며 "영진위 전체 예산의 0.2% 수준에 불과한 예산을 가지고 지역 영화 생태계의 존폐를 결정하는 일을 멈춰 달라"라고 요청했다.
전북독립영화협회 사무국 관계자는 "지역 영화 관련 사업 예산 중 국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0% 정도 된다. 이 30%를 가지고 교육 사업, 전북 독립영화제 개최, 육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액 삭감이 된다면 영화제 축소는 물론 진행하고 있는 교육 사업을 폐강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업이 줄어들면서 지역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배우고 싶은 영화인들에게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독립영화들이 제작되어야 하는데 최근에는 개인이 영화 하나를 만들기 점점 힘들어지는 구조다. 단체의 지원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국가의 지원까지 줄어들게 되면, 편수는 물론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는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의 포용성이 훼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북독립영화협회 박영완 이사는 "전국에 있는 지역 영화단체들끼리 매일 회의를 하고 있지만,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성명서를 발표했지만 반응이 없어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영화인을 육성하는 사업이 뒤로 밀리고, 돈이 되는 상업 영화 살리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독립 영화와 영화제는 영화인의 미래를 발굴하는 소중한 기회이자 플랫폼이다. 이번 영진위의 예산 결정은 장기적으로 영화 산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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