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이 정말 어려워요"...찌아찌아족 한글 나눔 푹 빠진 부톤섬 새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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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구·뜨리 부부, 남매와 한국서 첫 추석
한글 나눔에 앞장선 인도네시아 여성과 결혼한 한국인이 남매와 함께 한국에서 첫 추석을 보냈다.
주인공은 강민구(44)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홍보팀장과 인도네시아 소수 민족인 뜨리(30)다. 뜨리는 찌아찌아족은 아니지만, 찌아찌아어를 할 줄 알아서 6년여간 바우바우시 한글학당 보조교사로 일했다. 이 부부는 2018년 9월 결혼했다. 2020년 2월 첫째 아들 하늘(3)이 태어난 뒤, 이듬해 5월 둘째 딸 아름(2)을 얻었다.
뜨리 가족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순 우리말 이름을 찾다가 ‘하늘’과 ‘아름’으로 지었다고 한다. 강씨 부부는 2016년부터 인도네시아 부톤섬 바우바우시에 사는 찌아찌아족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찌아찌아족은 한국 ‘한글 나눔 1호’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독자적 언어가 있지만, 표기법이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바우바우시는 2009년 훈민정음학회 건의를 받아들여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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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 한글 교실서 인연, 5년 전 결혼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정덕영(62) 한글학당 교장이 14년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강씨는 이곳에서 정 교장을 도와 교재 보급 등 한글교실 운영을 지원했다. 강씨 부부는 잠시 한글 나눔 활동을 접고, 지난 4월 아이들과 충북 청주에 왔다. 강씨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서 일하고, 뜨리가 아이들을 돌본다. 강씨는 “어머니가 계신 충북 단양에서 아이들과 처음으로 추석을 보냈다”며 “차례를 지내기 전 하늘이와 아름이에게 절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고 말했다.
남매는 부모 영향으로 인도네시아어와 한국말을 알아듣는다. 강씨는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 우리 말로 자장가를 불러줬더니 어느 순간 내 말을 알아듣더라”며 “어린이집에 다니며 한국어 실력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여느 한국인 아이처럼 ‘뽀로로’와 ‘아기상어’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있다. 강씨는 “아이들이 잘게 썬 깍두기도 먹는 등 김치 문화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것 같다”며 “한국 음식과 인도네시아 음식을 다 잘 먹는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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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생활 6개월 “아이들 김치 입문했어요”
강씨와 뜨리 인연은 찌아찌아족 한글교실에서 시작됐다. 평소 한글 나눔 사업에 관심을 갖던 강씨는 2016년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협회 일을 도우며 뜨리를 만났다. 뜨리는 2010년 정덕영 교장에게 한글을 처음 배운 뒤 대학 4학년 때 한글교실 자원봉사를 나갔다가 강씨를 만났다.
바우바우시가 있는 부톤섬엔 찌아찌아족 등 소수민족이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말은 다르지만 부톤섬 공통조어에서 파생한 언어라 부족끼리 겹치는 단어가 많다. 뜨리 친구 중에도 찌아찌아족이 있다. 강씨는 “아내가 찌아찌아어를 할 줄 알아서, 한글교실 보조교사 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성격이 차분하고, 한글에 관심이 많던 아내가 눈에 들어와 2018년 1월 ‘나 어떻게 생각해’란 말로 청혼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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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아찌아족 한글 나눔 14년 “한국인 교사 절실”
뜨리는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뜨리는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여전히 존댓말을 사용하는 게 어렵다”며 “시댁에서 말실수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말했다. 뜨리는 오는 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열리는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찌아찌아족 한글 나눔 사업은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 등 민간단체와 기업·자선기관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8월 교보생명은 바우바우시에 2층짜리 한글학교 건물을 지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은 최근 교육용 IT기기를 지원했다. 하지만 현지에 남아있는 한국인 교사는 정덕영 교장 혼자뿐이다.
강씨는 “한글 보조교사로 자원봉사를 온 대학생과 기관, 말없이 후원해 주신 분들이 있었기에 한글 교실 운영이 가능했다”며 “지난해 한글학교 건물이 세워진 만큼 한국인 교사가 서너명 정도 상주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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