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사라진 '귀신고래'가 기후 변화 구원투수 될까 [창간기획-붉은 바다]
[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⑧살아있는 탄소저장고, 고래의 죽음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에선 ‘이상한 죽음이 있었다’고 현지 과학자들은 말했다. 75일 이상 만 안의 항구 주변을 맴돌던 한 쇠고래(gray whale·한반도에선 귀신고래로 불렸다)가 죽은 채 해안가로 떠밀려온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UCSB) 캠퍼스의 베니오프 해양 과학 연구소 캘리 스테픈 연구원은 지난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쇠고래는 영양실조에 걸린 채 배에 치여 죽었다”며 “쇠고래가 선박이 많이 드나드는 만 안에 그토록 오래 머문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쇠고래는 약 90종의 전세계 고래 중 유일하게 이름에 ‘한국’(Korean)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종이다.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 적도에서 북극까지 오르내리는 쇠고래는 크게 캘리포니아계(북동태평양계)와 한국계(북서태평양계)로 분류된다. 캘리포니아와 위도가 같은 동해에선 고대부터 근대까지 쇠고래가 자주 보였지만 1970년대 마지막 발견 이후 자취를 감췄다. 한국계 쇠고래가 이동하는 지역에 있는 동아시아에서 모두 포경을 했기 때문이다. 쇠고래는 신석기시대 유적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그려져 있을 만큼 우리 민족과 친숙하다. 한민족은 쇠고래를 귀신고래로 불렀다. 회색 등에 따개비가 달려 있어, 멀리서 보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위 같다는 이유에서다.
동해선 사라진 쇠고래들…최근 美서 특이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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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지켜야 기후변화도 더디게 온다”
고래는 ‘살아 있는 대형 탄소저장고’로 불리는 점에서 기후변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레이첼 로드 베니오프 해양과학센터 연구원은 “특히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회색고래 같은 대형 고래들은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격리, 저장한다”며 “이들을 지키는 것은 기후위기를 어느 정도 안정화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형 고래는 한 개체 당 평균 33t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수 세기 동안 격리-죽은 이후에도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나무 1500 그루가 이산화탄소를 한 해에 흡수하는 양이다.
남극까지 들리는 음파 탐사, 고래 생존 위협
기후변화와 상업 포경 외에도 전세계 고래를 위협하는 인간의 활동은 많다. 최근에는 해저 자원 개발을 위한 에너지 기업들의 탐사가 고래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저에서 가스 등의 자원을 찾기 위해 공기총(airgun)으로 음파를 쏘는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ing)’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해 소리에 민감한 고래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쇠고래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낚시 장비 얽힘 사고·선박 충돌·고래 관찰 산업·해양 소음·서식지 황폐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는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북태평양 수온 변화가 영향을 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니오프 연구소 스테픈 연구원은 최근 쇠고래가 샌프란시스코만에 자주 들어올뿐 아니라 오래 머무는 모습이 관찰된 것과 관련 “해수 온도 상승 등으로 고래들의 거처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래를 구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펼쳐지고 있다. 베니오프 연구소는 선박과 고래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 선박이 서식지를 피해가도록 초음파 등 과학 기술을 산업계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한때 멸종위기였던 캘리포니아 회색고래 개체수는 인간의 노력으로 한동안 크게 회복되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죽는 특이 동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해양동물센터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고래를 목격할 때 신고할 수 있는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했다. 최근 호주 연방법원은 대형 고래류 서식지 보호를 위해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의 서호주 앞바다 수중 탐사 계획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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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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