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 사라진 '귀신고래'가 기후 변화 구원투수 될까 [창간기획-붉은 바다]

정은혜, 천권필 2023. 10.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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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바다, 위기의 탄소저장고] ⑧살아있는 탄소저장고, 고래의 죽음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에선 ‘이상한 죽음이 있었다’고 현지 과학자들은 말했다. 75일 이상 만 안의 항구 주변을 맴돌던 한 쇠고래(gray whale·한반도에선 귀신고래로 불렸다)가 죽은 채 해안가로 떠밀려온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산타바바라(UCSB) 캠퍼스의 베니오프 해양 과학 연구소 캘리 스테픈 연구원은 지난 7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 쇠고래는 영양실조에 걸린 채 배에 치여 죽었다”며 “쇠고래가 선박이 많이 드나드는 만 안에 그토록 오래 머문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최장 기간 머문 쇠고래의 모습. 이 쇠고래는 75일 이상 선박이 드나드는 캘리포니아만에 머물다 죽은채 해안가로 떠밀려 왔다. 사진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양포유류센터 대런 알렌(Darrin Allen)

쇠고래는 약 90종의 전세계 고래 중 유일하게 이름에 ‘한국’(Korean)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종이다.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 적도에서 북극까지 오르내리는 쇠고래는 크게 캘리포니아계(북동태평양계)와 한국계(북서태평양계)로 분류된다. 캘리포니아와 위도가 같은 동해에선 고대부터 근대까지 쇠고래가 자주 보였지만 1970년대 마지막 발견 이후 자취를 감췄다. 한국계 쇠고래가 이동하는 지역에 있는 동아시아에서 모두 포경을 했기 때문이다. 쇠고래는 신석기시대 유적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그려져 있을 만큼 우리 민족과 친숙하다. 한민족은 쇠고래를 귀신고래로 불렀다. 회색 등에 따개비가 달려 있어, 멀리서 보면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위 같다는 이유에서다.


동해선 사라진 쇠고래들…최근 美서 특이동향


올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최장 기간(75일 이상) 머물던 쇠고래의 모습. 사진 미국 해양대기청(NOAA) 해양포유류센터 지안카를로 룰리(Giancarlo Rulli)
캘리포니아 쇠고래는 1~4월 사이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이동해 캘리포니아 해양 과학자들의 관심 대상이다. 먹이와 생식 활동을 위해 북극에서 멕시코까지 왕복(최대 2만2530㎞)하는, 포유동물 중 가장 멀리 이동하는 종이다. 사람과 비슷하게 70~80년 가량의 수명을 살며 14~16t 무게에 달하는 대형 어종이라 고래류 중 탄소포집 능력도 상위권에 속한다.
베니오프 해양과학연구소와 인근 해양포유류케어센터는 쇠고래가 2019년부터 샌프란시스코 만에 비정상적으로 자주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 학자들은 쇠고래가 주로 먹는 크릴 새우 개체가 줄면서 먼 길을 이동하던 중 샌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멸치를 먹고 잔잔한 바다에서 쉬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다 선박에 치여 죽은 사체들이 해변으로 떠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북태평양 연안을 따라 북극에서 적도 부근까지 이동하는 쇠고래 서식지 분포도. 사진 미국 해양대기청(NOAA)
울산 정자항 북방파제에 세워진 귀신고래 등대. 사진 뉴시스


“고래 지켜야 기후변화도 더디게 온다”


고래는 ‘살아 있는 대형 탄소저장고’로 불리는 점에서 기후변화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레이첼 로드 베니오프 해양과학센터 연구원은 “특히 혹등고래와 대왕고래, 참고래, 회색고래 같은 대형 고래들은 많은 탄소를 대기 중에서 격리, 저장한다”며 “이들을 지키는 것은 기후위기를 어느 정도 안정화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대형 고래는 한 개체 당 평균 33t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서 수 세기 동안 격리-죽은 이후에도 이산화탄소를 품고 있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나무 1500 그루가 이산화탄소를 한 해에 흡수하는 양이다.
지난 7월 캘리포니아 남부 산페드로 항구 앞 바다에 나타난 돌고래의 모습. 이날 산페드로 항구를 출발한 고래 관광 선박에선 "오늘은 대형 고래를 볼 수 없었다. 언제든 다시 관광 선박을 타길 바란다"는 안내 음성이 나왔다. 산페드로=정은혜 기자
고래의 탄소 흡수 기여도에 대한 평가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래 자체가 아닌 고래가 만드는 바닷속 환경의 탄소 포집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큰 고래가 머무는 곳은 식물성 플랑크톤도 발달하는데 고래 노폐물에 식물성 플랑크톤이 필요한 철과 질소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은 대기 전체 산소 50%를 제공하고 생성된 전체 이산화탄소의 40%를 포집해 아마존 숲 4개 분량의 역할을 해내는 존재다. 국제통화기금(IMF) 관계 경제학자들은 2년 전 이런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대형 고래의 경제적 가치를 200만 달러로 추산한다는 의견을 IMF 홈페이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베니오프 연구원들은 “고래의 자체의 탄소 포집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고래가 해양 먹이사슬 유지와 기후 문제 해결에 매우 중요한 존재이기에 보호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극까지 들리는 음파 탐사, 고래 생존 위협


기후변화와 상업 포경 외에도 전세계 고래를 위협하는 인간의 활동은 많다. 최근에는 해저 자원 개발을 위한 에너지 기업들의 탐사가 고래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저에서 가스 등의 자원을 찾기 위해 공기총(airgun)으로 음파를 쏘는 ‘탄성파 탐사(seismic surveying)’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해 소리에 민감한 고래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지난 7월 26일 호주 서호주 올버니 동쪽 셰이네스 해안가서 자원봉사자들이 참거두고래(long-finned pilot whales) 무리를 살리기 위해 일하는 모습. 앞서 서호주 해변에서는 52마리의 참거두고래가 떼죽음을 당했다. EPA=서호주 생물다양성보존관광부
호주 해양보존협회에 따르면 이 소음의 크기는 250데시벨(dB)에 달한다. 우주왕복선이 발사될 때 발생하는 소음(약 160dB)보다도 크다. 리차드 조지 그린피스 호주 캠페이너는 “호주 상원 연구에 따르면 호주 수중에서 발생한 탄성파 소음이 남극까지 들릴 수 있다고 한다”며 “고래들은 청각에 의존하여 먹이를 찾는데 탄성파 탐사는 청력에 심각한 손상을 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청력이 상실된 고래는 생존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쇠고래 개체 수 감소 원인으로 낚시 장비 얽힘 사고·선박 충돌·고래 관찰 산업·해양 소음·서식지 황폐화를 꼽는다. 기후변화는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북태평양 수온 변화가 영향을 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니오프 연구소 스테픈 연구원은 최근 쇠고래가 샌프란시스코만에 자주 들어올뿐 아니라 오래 머무는 모습이 관찰된 것과 관련 “해수 온도 상승 등으로 고래들의 거처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와 시민들이 호주 퍼스의 우드사이드 본사 앞에서 탄성파 탐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그린피스

고래를 구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펼쳐지고 있다. 베니오프 연구소는 선박과 고래 충돌 사고를 줄이기 위해 선박이 서식지를 피해가도록 초음파 등 과학 기술을 산업계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한때 멸종위기였던 캘리포니아 회색고래 개체수는 인간의 노력으로 한동안 크게 회복되다 다시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죽는 특이 동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해양동물센터는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고래를 목격할 때 신고할 수 있는 24시간 핫라인을 구축했다. 최근 호주 연방법원은 대형 고래류 서식지 보호를 위해 에너지 기업인 우드사이드의 서호주 앞바다 수중 탐사 계획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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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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