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10월이면 반복되는 ‘노벨상 앓이’…100년을 이어온 ‘한탄’
‘폭발약을 발명한 스웨덴인 노벨 씨가 창설한 상금으로, 매년 물리학과 화학·의학·문학, 그리고 세계 평화에 노력한 인사에게 팔천 파운드씩 증여하는 다섯 개의 상이다. 세상에 명예가 한둘이 아니지만, 노벨상을 타는 것같이 명예로운 일은 없다. 서양 사람은 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동양사람으로는 겨우 인도의 시성이라는 타고르 박사 한 사람뿐이다. 조선인으로서 노벨상을 탈 만한 사람이 출생하기까지는 지식계급이 아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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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상 명단이 곧 과학의 역사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큰 관심
한국은 평화상뿐 과학상 없어
“단기성과 매달리는 풍토 문제”
」
올해 한국 수상자 나올 수 있을까
국내 신문에 등장하는 최초의 노벨 과학상 관련 글(동아일보 1923년 9월 13일자 1면)이다. 1923년, 100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인 그때도 이 땅에선 노벨상을 부러워했다. 심지어 짧은 글 안에 노벨상을 탈 만한 지식계급이 없다는 한탄까지 들어간다. 한 세기가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나마 한국을 노벨상 수상 국가 명단에 올렸다.
10월 ‘노벨상 앓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2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3일 물리학상, 4일 화학상까지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이어진다. 이어 5일에는 문학상, 6일 평화상, 9일 경제학상 순으로 올해 수상자들이 발표된다.
올해 우리나라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까. 노벨상 시즌이 다가오면 정부는 물론 학계 등 곳곳에서 노벨상을 둘러싼 행사가 이어진다. 지난달 24일에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주최로 노벨상 수상자들과 토론하는 행사가 서울에서 열리기도 했다. 왜 우리는 이토록 노벨상 앓이를 할까. 노벨상은 무엇일까.
1 노벨상은 왜 최고의 상인가
노벨상, 특히 노벨 과학상의 권위는 수상자에게서 나온다. 지난 120여년 노벨상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세계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받을만한 사람이 받았다’는 평가다. 노벨상을 연구해온 임경순 포항공대 명예교수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리스트를 보면 전통 과학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며 “물리학의 역사를 쓴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중심으로 쓰면 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외의 요소도 있다. “인류에 공헌한 사람을 위해 유산을 써달라”는 알프레드 노벨의 의미 있는 유언과 100년 넘게 이어오는 거액의 상금 등도 노벨상의 권위를 지켜오는 요소다.
2 노벨상은 누가 어떻게 뽑나
노벨상 선정 작업은 발표 1년여 전부터 시작한다. 노벨위원회는 그해 수상자 발표 한 달 전인 9월에 분야별로 전 세계 전문가 1000명에게 추천 의뢰서를 발송한다. 위원회는 이렇게 들어온 추천서를 300명 정도로 추린다. 이후 토론과 심사를 거쳐 7월까지 후보를 압축하고, 8월 말에 최종 후보 1명을 투표로 정한다.
이어 9월에 30명으로 구성된 분과별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거쳐 10월 왕립한림원에서 결정한다. 선정 과정은 비밀리에 진행되며, 수상자도 발표 직전에 통보받을 만큼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다. 심사 과정은 규정에 따라 50년 동안 공개되지 않는다.
3 ‘노벨상 앓이’는 한국만의 현상인가
노벨상 수상 소식은 선진국 언론들도 주요 소식으로 다룬다. 가장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7일 ‘2023년 노벨상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벨상 시즌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4일 3개 부문 노벨과학상 수상이 유력한 자국 과학자를 소개하는 등 최근 들어 연일 노벨상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과학상 수상자를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탓에 매년 ‘앓이’를 하는 셈이다. 임경순 명예교수는 “한국이 유독 노벨상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만큼 노벨상을 갈구하는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서구 중심, 남성 중심 논란도
4 노벨상은 공정한가
의견이 갈린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의 근거는 서구 중심적 과 남성 중심적이란 평가다. 실제로 국가별 노벨상 수상 순위를 보면 1위 미국에 이어 영국-독일-프랑스-스웨덴-러시아(소련)-일본 순으로, 6위까지 서구 일색이다. ‘남성 중심적 노벨상’은 숫자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올 3월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노벨상 수상자가 전체의 3%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 세기에 걸친 가부장적 인습, 차별, 해로운 관습이 과학과 기술 영역에서 거대한 성차별을 낳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괴란 한손 스웨덴 왕립 과학한림원 사무총장은 “우리는 수상자들이 성별이나 인종 때문이 아닌, 가장 중요한 발견을 했다는 이유로 상을 받길 바란다”는 말로 노벨상의 공정성을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노벨상이 120여년간 ‘세계 최고의 상’이란 권위를 이어온 만큼 다른 상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가장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노벨상이 서구 중심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론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며 “ 동양인이라고 해서 될만한 사람이 되지 않고 서구인이 대신 수상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5 한국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노벨 과학상은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선구적 연구를 수행하고, 그 연구가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경우에 주어진다. 『최초의 질문』의 저자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을 설립하는 등 노벨상에 부합하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 연구를 위한 투자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단기 성과에 매달리는 평가 체제가 문제”라며 “올해 돌발한 일이지만 R&D 예산 삭감 등 부정적 요인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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