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예식 대신 셀프다큐 상영
“혼인식을 치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가장 먼저 ‘결혼식’(結婚式)이란 말이 남성이 장가간다는 뜻이란 걸 알게 돼서 ‘혼인식’(婚姻式)이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박배일 감독)
다큐멘터리 감독 박배일(42), 초등학교 교사 황남임(31)씨 부부는 지난해 9월 24일 예식장이 아닌 극장에서 화촉을 밝혔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버진로드를 걷는 결혼식 대신 혼인 과정의 고민과 경험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 부모·가족·친지 앞에 상영했다. 부부가 공동 설립한 제작사 나하나필름의 첫 작품이다. 연출·촬영·구성·편집도 모두 두 사람이 함께했다. 영상 세대의 새로운 혼인 풍속도를 그렸다.
지난달 폐막한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다큐 ‘어푸 어푸’는 부부가 이 영화의 제작을 결심하고부터 혼인식 상영 뒤까지를 담은 작품. 가난한 독립 다큐 감독이 교사란 안정된 직업에 나이 차까지 큰 여자친구를 만나, 여자친구 집안의 반대를 극복하고 혼인에 이르기까지를 본인 및 주변인들의 솔직한 인터뷰로 그려냈다.
박 감독은 2018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자원활동가로 참여한 황 감독을 만나 진심 어린 편지로 구애에 성공했지만 두 사람의 연애는 단맛만큼이나 쓴맛이 컸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한 환경에서 성장해, ‘밀양 아리랑’(2014), ‘소성리’(2017) 등 여성·노인·장애·지역공동체를 주제로 한 독립 다큐를 만들어온 박 감독과 부모가 원하는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자란 황 감독. 다큐엔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황 감독은 사회 초년생 때 부당한 일을 당하고 불안정한 연애를 겪으며 자해 등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박 감독의 ‘어푸 어푸’ 제작 후기에 따르면 “‘짝꿍’(그는 아내를 이렇게 불렀다)이 영화 만들면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찍지 마요!’였다”고 한다. 촬영 거부에, 우는 모습을 빼달라는 요구까지 겹치자 박 감독도 “협업하는 건 (이 작품이) 끝이다. 이렇게 무시당하면서 작업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던가.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멀찍이 튕겨 나간 상대에게 ‘어푸 어푸’ 헤엄치듯 다가가는 화해의 과정은 서로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터준다. 아내로 인해 박 감독은 부동산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고, 남편으로 인해 황 감독은 삶의 고민을 담은 단편영화 만들기에 도전한다. “신부가 아깝다”던 세간의 일방적인 생각도 바뀌어간다. 그렇게 두 사람은 ‘나’에서 ‘우리’의 세계로 확장하고 변화한다.
“억압으로만 생각했던 혼인이 누군가에겐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여정일 수도 있단 걸 영화를 보며 느꼈다.”
박 감독이 자신의 SNS에 전한 동료 감독의 감상평이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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