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점 ‘고흐’···2년간 구상만 ‘다빈치’ [유경희의 ‘그림으로 보는 유혹의 기술’]

2023. 10. 2.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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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와 창조적 예술가들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 빌 게이츠, 조지 부시, 카네기, 모차르트, 피카소,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들은 모두 성인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 환자였다. 그들은 유년 시절 심한 ADHD였고, 평생 ADHD를 안고 살았지만 매우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살았다. 정신의학계에서도 아동 ADHD의 50%는 정상적으로 회복 가능하지만, 나머지 50%는 성인 ADHD로 남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요즘 부쩍 회자되는 성인 ADHD 때문인지, 주변 예술가 친구들을 만나면 (나 자신을 포함해) 스스로를 성인 ADHD라고 고백하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면서 그들은 어려서부터 생활기록부에 ‘산만하나 교우 관계는 원만함’ ‘성적은 좋으나 지나치게 산만한’ ‘좀 산만하고 특이한’ 등 ‘산만하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산만하다는 그들의 말이 마치 엄청 창의적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산만하다는 것을 더 이상 단점이나 폐해가 아닌, 독특하고 특별하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피카소를 ADHD로 진단하고는 했는데, 그 역시 학창 시절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창가로 가서 창문을 두드리는 등 전형적인 ADHD 증상을 보였다. 더군다나 평생 지속된 여성 편력은 물론 화가인 그가 조각, 드로잉, 무대미술, 도자기 등 장르를 불문하고 과감히 시도하고 실험했다는 것, 하루에 평균 여섯 점의 작품을 생산했다는 사실은 범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과잉 행동임에 틀림없다. 이런 다양한 관심사와 막대한 작업량은 그의 호기심과 충동성의 산물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부분), 회반죽에 템페라와 오일,1495~1998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붓질 → 의자 앉기 → 손 비비기, 반 고흐의 요상한 습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더 심한 경우에 속한다. 사실 그가 ADHD 증상을 가진 예술가라는 의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그가 ADHD로 의심되는 것은 바로 67년의 생애 동안 겨우 13점의 회화를 그렸을 뿐이고, 그것도 모나리자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미완성작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과작인 데다 미완성이 많다는 것은 다빈치가 강박적일 정도로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가진 탓도 있겠지만, 어쩌면 데드라인을 못 지키는 등 시간 관념에 문제가 있으며 뒷마무리를 못할 정도로 금세 싫증을 내는 성향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시간 개념 부재와 쉽게 흥미를 잃는 것 역시 전형적인 ADHD의 증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적 미완성 작품인 광야의 성 제롬, 1480~1490년경, 마감을 잘 못 지키는 성격과 동성애 혐의 등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내쳐진 자신의 심경을 고통스러운 성자로 표현했으나 이미 관심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 미완성작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밀라노 공국의 군주 루도비코 스포르차 후원으로 그려진 ‘최후의 만찬(1495~1498년)’은 완성하는 데 무려 4년이나 소요됐다. 이렇게 오랜 기간이 소요된 이유는 아이디어와 기획에 엄청난 공을 들이는 다빈치의 사고방식 때문이었는데, 그는 다른 화가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만찬에 올려질 음식이 정해지지 않아 작업을 미룬다는 식의 핑계 아닌 핑계를 댔다. 또 다빈치는 작업 현장에서 그림은 그리지 않고 마치 명상하듯 물끄러미 벽면만 응시하는 등 빈둥빈둥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 수도원장은 참다못해 루도비코에게 다빈치가 그림은 그리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수도원의 온갖 포도주와 음식만 축내고 있으며, 식탁에 올린 요리에만 관심을 보였지 그곳에 둘러앉은 인물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내용의 불만스러운 편지를 보낸다. 그럼에도 다빈치가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은 머릿속에서 구상이 이뤄지기만 하면 작업 자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정 다빈치는 상 위에 차릴 요리 선별 작업이 끝나자마자 3년 동안 미루던 그림의 나머지 과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해 단 3개월 만에 작업을 끝냈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그림을 그리던 당시부터 회벽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원래 벽화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야 하는데, 다빈치는 회벽에 템페라(달걀노른자가 주재료)와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다빈치가 프레스코화로 그리지 않은 이유는 하루치 분량만큼만 정해놓고 빠른 시간 내에 그려야 하는 프레스코 기법이 즉흥적이고 변덕스러운 그의 기질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새롭고 낯선 것을 향한 호기심은 실험을 계속하게 만들었고, 이는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변덕스럽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인상을 줬다. 물론 그 자신도 노트에 “무엇이라도 완성된 것이 있는지 말해봐… 말해봐… 말해봐”라고 되풀이해 쓸 정도로 중도 포기가 잦았음을 인지했다.

빈센트 반 고흐야말로 대표적인 ADHD 예술가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27세에 화가가 돼 37세에 생을 마감한 반 고흐는 10년의 작가 생활 동안 1000점의 작품, 마지막 3년에 무려 300점을 그려냈다. 말년의 3개월 동안은 거의 하루에 한 점씩 그림을 그렸다는 것인데, 이 또한 과잉 행동의 결과다. 특히 반 고흐의 그림 그리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목격되고 각인됐다. 예컨대 그는 캔버스 앞에 서서 세 발자국 걸었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세 발자국 걸었다. 그런 뒤 손을 가슴에 올리고 캔버스를 오랫동안 노려본다. 갑자기 캔버스를 공격할 것처럼 뛰어올라 빠르게 두세 번 붓질을 하고 다시 의자에 앉아 눈을 찡그리며 이마를 닦고 손을 비볐다. 그는 보폭이 짧고 빨랐으며 불규칙적이었다. 또한 마치 틱 장애가 있는 것처럼 캔버스에 특유의 작은 붓질을 할 때마다 머리를 뒤로 젖혀 반쯤 눈을 감고서 쳐다봤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도중 습관적으로 붓을 입으로 빨았다. 이것은 그림을 그릴 때의 반 고흐만의 고유한 육체적 리듬이었다. 그 역시 스스로를 “말하거나 행동할 때 긴장하거나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처럼 반 고흐의 과잉 행동은 겁나는 속도로 많은 습작을 해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는 이런 속도로 빠르게 많이 작업하는 것만이 진정 좋은 작품을 생산해내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와 관련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급하게 그린 그림이 잇따라 나오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해둔 덕분이다. 누군가 내 그림이 성의 없이 빨리 그려졌다고 말하거든, 당신이 그림을 성의 없이 급하게 본 거라고 말해줘라”라고 쓰기도 했다.

반 고흐의 ADHD가 가장 잘 드러난 분야가 바로 편지 쓰기다. 어떤 때는 테오에게 하루에 두 통의 편지를 쓴 적도 있는데, 두 번째 편지는 장장 16장에 달했다. 또한 좋아하는 것이 빨리, 자주 바뀌었다. 한때 그가 좋아했던 화가의 명단을 편지에 쓴 적이 있는데, 그 명단이 유명 화가와 무명 화가를 합해 예순 명에 이르기도 했다.

이처럼 ADHD라 부를 수 있는 예술가들의 과잉 행동이 걸작을 낳았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예술가의 ADHD는 지루하고 권태롭고 재미없는 세상에 보내는 행위예술이 아닐까?

그들은 “현명한 선택보다 무모한 선택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짧지만 강력한 집중력의 소유자들은 아닐까?

유경희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8호 (2023.09.27~2023.10.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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