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출신' 전지희 '쌩~'→북한엔 '짜요'…중국 관중 '홈 콜' 이겨낸 값진 金 [AG현장]
(엑스포츠뉴스 중국 항저우, 나승우 기자) 중국 출신 전지희가 뛰고 있음에도 중국 관중들은 한국이 아닌 북한 탁구를 더 응원했다. 하지만 여자복식 신유빈-전지희 조가 해냈다.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복식 세계랭킹 1위 신유빈-전지희 조는 2일 중국 항저우 궁수 캐널 스포츠파크 체육관(GSP Gymnasium)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탁구 여자복식 결승에서 북한 차수영-박수경 조를 게임 스코어 4-1(11-6 11-4 10-12 12-10 11-3)로 완승을 거뒀다.
신유빈-전지희 조는 여자복식 최강의 위용을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제대로 뽐냈다. 지난달 29일 16강전에서 김금영-변송경 조(북한)를 게임 스코어 3-1로 제압했다. 남북대결로 관심이 쏠렸던 가운데 한 수 위 기량을 과시하면서 무난한 승리를 챙겼다. 8강전에서 만난 대만 전즈여우-황이화 조는 첫 게임을 내주며 고전했지만 이후 2~4게임을 눌러 준결승에 진출했다.
4강에서 만난 일본의 하리모토 미와-기하라 미유 조도 신유빈-전지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신유빈-전지희는 1게임을 먼저 내주고도 2게임부터 빠르게 주도권을 되찾았다. 하리모토와 기하라를 한 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뒤 빈곳을 공략하는 작전이 적중하면서 2, 3게임을 챙기고 경기를 뒤집었다.
신유빈-전지희의 환상 호흡은 3, 4게임에서도 이어졌다. 쉴 새 없이 하리모토 미와-기하라 미유 조에 맹공을 퍼부은 끝에 게임 스코어 4-1의 역전승으로 결승에 안착했다.
대진에 행운도 따랐다. 탁구 강국 중국 복식 2개 조가 일찌감치 8강에서 짐을 쌌다. 쑨잉샤-왕만위 조가 일본 하리모토-기하라 조에게 게임 스코어 1-3으로 패했고, 천멍-왕이디 조 역시 인도 수티르타 무케르지-아이히카 무케르지 조에 1-3으로 무릎을 꿇었다. 준결승에서 신유빈-전지희 조가 하리모토-기하라 조를, 북한 차수영-박수경 조가 수티르타-아이히카 조를 각각 꺾고 결승에 올라 남북 대결이 성사됐다.
1게임에선 신유빈-전지희 조가 2점을 먼저 따내며 기선을 제압했다. 북한이 리시브에서 범실을 기록해 10-4까지 점수를 벌렸다. 매치포인트에 도달한 상황에서 2점을 내준 신유빈-전지희 조는 11점에 먼저 도달해 1게임을 가져갔다.
2게임에서도 2-1 상황에서 신유빈의 백핸드 공격이 통했다. 3-1로 리드를 잡은 신유빈-전지희 조는 착실히 점수를 올렸다. 10-4로 먼저 매치포인트에 도달했고, 1점을 더 따내 11-4로 2게임을 승리했다.
3게임은 차수영-박수경 조가 먼저 점을 따냈다. 하지만 신유빈-전지희 조는 당황하지 않고 3연속 득점에 성공해 어렵지 않게 역전에 성공했다. 북한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3점을 연달아 따내며 재역전했다. 4-6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신유빈-전지희 조가 힘을 냈다. 3점을 따내 7-6으로 다시 점수를 뒤집었다.
4게임도 접전이 이어졌다. 신유빈-전지히 조가 점수를 벌리면 차수영-박수경 조가 줄기차게 따라붙었다. 9-7 불안한 리드가 이어졌고, 2점을 내줘 9-9 동점이 됐다. 신유빈-전지희 조가 먼저 매치 포인트에 다가섰다. 하지만 차수영-박수경 조가 동점을 만들어 다시 듀스가 됐다. 다행히 상대 범실로 2점을 얻어 4게임을 가져와 우승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5게임은 완승이었다. 5점을 먼저 앞서갔다. 북한이 2점을 기록했지만 8-2까지 격차를 벌렸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중국 관중들은 한국이 아닌 북한을 더 응원했다. 중국 허베이성 출신으로 지난 2011년 귀화한 전지희가 뛰고 있음에도 한국이 아닌 북한 선수들에게 더 큰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
선수 입장 때부터 반응이 달랐다. 신유빈-전지희 조가 경기장에 입장할 때는 싸늘했지만 차수영-박수경 조가 들어서자 엄청난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대회 내내 북한 대표팀을 따라다녔던 북한 응원단이 이날 탁구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중국 관중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힘을 보탰다.
1, 2게임이 신유빈-전지희 조의 압도적 내용으로 흘러갔을 때는 조용했으나 차수영-박수영 조가 득점에 성공하거나 잠깐 점수를 뒤집으면 환호가 쏟아졌다. 3게임에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10-10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자 '짜요'를 외쳤고, 듀스 상황에서 신유빈-전지희의 범실이 나오자 크게 좋아했다. 전지희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북한 선수들에게만 응원을 보냈다.
반면, 신유빈-전지희 조가 득점에 성공했을 때는 경기장 한 구석에 자리한 대표팀 관계자 10여명의 박수만 나와 대조적 분위기를 이뤘다. 간혹 경기장 한 쪽에서 '신유빈 화이팅'이라는 한 관중 응원이 더해졌을 뿐이었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신유빈-전지희 조는 흔들림 없이 앞으로만 나아갔다. 실수가 나와도 서로를 토닥여주며 랭킹 1위 조다운 호흡을 보여주면서 21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사진=연합뉴스
나승우 기자 winright95@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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