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은 어렵다'는 서울 이곳, 문제는 이준석
6개월 후면 22대 총선입니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던 21대 총선, 0.7%p 차로 갈린 20대 대선,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난 2022년 지방선거까지. 지난 4년, 민심은 끊임없이 요동쳤습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가 될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오마이뉴스>는 대표적인 '스윙보터'이자 전체 의석수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수도권을 시작으로 각 지역구를 가로지르는 이슈와 인물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박현광 기자]
서울 노원병. 2004년 5월 지역구 신설 이래 치러진 7번의 선거에서 당선된 보수정당 국회의원 후보는 2008년 홍정욱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단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3%p 격차의 신승. 만약 당시 민주(김성환)-진보(노회찬) 단일화가 성사됐다면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그만큼 민주·진보진영의 '텃밭'으로 볼 수 있는 지역구지만 내년 총선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노원구 전체 의석수가 3석에서 2석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 경우 현재 노원 갑·을·병 모두를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현역 간 내부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여기에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국면에서 드러난 민주당 내홍에 대한 지지자들의 실망감도 일부 부각되는 중이다.
지역구 토박이이자 전국구 인지도를 확보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동정 여론 역시 감지된다. 이 전 대표는 19대 총선부터 지금껏 서울 노원병에서만 출마를 계속하면서 민심을 두드렸다.
<오마이뉴스>는 9월 26일 노원병을 찾았다.
▲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
ⓒ 남소연 |
"여긴 호남 사람이 많이 와서 살아. 그래서 민주당이 계속 (당선)돼 왔고, 또 되겠지. 국민의힘은 힘들 거야." - 상계동의 한 세탁소 주인 A씨
그의 말처럼 2004년 17대 총선 때 노원구 전체 인구 증가(63만 1931명, 2003년 12월 기준)로 신설된 노원병(상계1동, 상계2동, 상계3·4동, 상계5동, 상계8동, 상계9동, 상계10동)은 민주·진보 정당의 '텃밭'과 같았다. 18대 총선 때 민주(김성환)·진보(노회찬) 후보가 표를 나눠가지면서 승리한 홍정욱 후보를 제외하면 모두 민주·진보 진영 후보가 당선됐다.
19대 총선 땐 민주통합당(민주당 전신)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노회찬 통합진보당(정의당 전신) 후보가 57.21% 득표율로 승리했고, 노회찬 의원직 상실로 열린 2013년 보궐선거 땐 당시 민주·진보인사로 분류된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치러진 20대 총선·21대 총선에서도 국민의당 안철수(52.33%), 민주당 김성환(53.15%) 후보가 모두 과반 득표로 당선됐다.
특히 김성환 의원은 탄탄한 지역 기반을 자랑한다. 그는 1995년 상계9동에서 구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권에 입문했고, 1998년 노원구를 기반으로 서울특별시의원으로 당선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하며 정치 경력을 쌓은 뒤 2010년 노원구청장에 당선돼 2018년까지 두 차례 구정을 돌봤다. 이후 곧바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 때문에 전반적인 판세는 김성환 의원에게 유리하단 평가가 나온다. 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는 등 의정활동 와중에도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의원 쪽 지역 보좌진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일요일에 3시간씩 천막을 치고 지역구민의 민원을 조건 없이 청취한다"라며 "상대가 누가 되든 신경 쓰지 않고 우리가 하던 대로 열심히 하면 주민들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계중앙시장 상인 B씨는 "이준석은 대표 된 뒤로 거의 안 보이는데, 김성환 의원은 자주 보인다"라며 "아무래도 얼굴을 맞대고 인사하는 게 주민들에겐 진심 있는 정치인으로 다가온다"고 평가했다.
지역구 통합 따른 내부경쟁 불가피... 친명-비명 갈등도 영향
하지만 변수가 있다. 노원구 전체 인구가 20년 만에 13만 2023명이 줄어들면서 노원을(하계1동, 하계2동, 중계본동, 중계1동, 중계2·3동, 중계4동, 상계6·7동) 지역구가 나뉘어 노원갑과 노원병에 병합될 전망이다.
현재 노원갑·을·병의 현역 의원은 각각 고용진·우원식·김성환으로 모두 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노원을 우원식 의원(4선)이 새 둥지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결국 당내 교통 정리가 관건이다. 이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면 민심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여의도 안팎에선 우 의원이 김 의원과 정치적 동지 관계로 오래 연을 맺은 만큼 지역구가 통합된다면 노원갑 고용진 의원과 경선을 치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금지' 등을 이유로 우 의원을 '컷오프(공천배제)' 한다면 우 의원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가늠할 수 없다.
최근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를 두고 민주당에 실망한 지지자들의 '이탈' 가능성도 감지된다. 최소 29명 이상의 의원들이 당의 체포동의안 부결 대오에서 이탈한 것을 두고 당내 '친명(친이재명)'과 '비명(비이재명)'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상황에 신물을 느끼는 지지자들이 발생한 것.
당장 <오마이뉴스>가 상계중앙시장에서 만난 상인 C씨는 "나는 호남 출신이고, 평생 민주당 지지자"라면서도 "그런데 이번엔 민주당 안 찍을 겁니다. 차라리 진보당을 찍을 작정"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향후 당내 갈등과 혼란을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김성환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아직 합구 결정이 될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우원식 의원의 선택은 알 수 없지만 그럴 일(경선)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체포동의안 가결과 관련해서 탈당한 사람보다 입당한 사람이 많다는 것에서 민심을 볼 수 있다"라며 당내 갈등에 따른 지지층 이탈 가능성은 낮게 전망했다.
영원한 텃밭은 없다? 변화하는 지역 민심
하지만 영원한 텃밭은 없다. 지난 대선 앞뒤로 '정권 심판론' 바람이 분 뒤로 노원병 지역구민도 이전보다 보수 진영에 마음을 연 모양새다. 선거 결과와 수치가 이를 방증한다.
시작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부재로 치러진 2021년 4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였다. 노원병 지역구민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4만 5468표(55.07%)를 몰아줬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3만 4518표(41.80%)를 얻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민주당 후보에게 4만 2830표(51.60%),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에게 2만 437표(24.62%),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1만 6275표(19.60%)를 준 것과 큰 차이다.
지난 대선에선 노원병 지역구민은 이재명 후보에게 4만 9009표(48.43%), 윤석열 후보에게 4만 8455표(47.88%)를 줬다. 이재명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었지만, 표 차이는 고작 554표에 불과했다.
2022년 6월 치러진 8회 지방선거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시장 선거에선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4만 280표(56.56%), 송영길 민주당 후보가 2만 9791표(41.81%)를 기록했다. 노원구청장은 민주당이 가져갔지만 표 차이는 크지 않았다. 오승록 민주당 후보가 3만 7394표(52.47%), 임재혁 국민의힘 후보는 3만 3860표(47.52%)를 얻었다. 3534표 차이였다.
특히 지난 구의원 선거에선 노원병 지역구와 맞물리는 마·바선거구의 총 6석 가운데 3석을 국민의힘이 가져갔다. 2018년 6월 있었던 구의원 선거에서 마·바선거구의 6석 가운데 민주당이 3석, 자유한국당이 2석, 정의당이 1석을 얻은 것과 비교했을 때 지형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제가 느끼기엔 여기 지금 분위기는 5 대 5라고 봐요." -노들역 인근 한 카페 주인 D씨
▲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2023년 3월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전당대회 등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며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들어 보이고 있다. |
ⓒ 남소연 |
3전 4기 이준석의 도전은 통할까
게다가 내년 총선에 출격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만만치 않은 상대다. 서울 노원병에서만 네 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는 그는 단단히 신발 끈을 묶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당내 입지가 약화된 만큼 내년 총선에서 낙선한다면 향후 정치 행보에 비상등이 켜질 수밖에 없다. 절실한 만큼 전력을 쏟아붓겠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 측은 출마를 거듭하며 지지세를 모아온 만큼 해볼만 하다고 보고 있다. 20대 총선에서 3만 2285표(31.32%),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2만 5002표(27.23%)를 얻었던 이 전 대표는 21대 총선에서 김성환 의원과 맞붙어 4만 6373표(44.36%)를 기록했다. 이는 노원구 지역구에서 보수 정당 후보로서 얻은 최다 득표율이었다. 특히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수도권 121석 가운데 103석을 싹쓸이할 정도의 분위기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고무적인 결과였다.
지역구민들이 이 전 대표를 '상계동 키즈'로 인식하고 있는 점도 강점이다. 앞서 만난 상계중앙시장 상인 B씨는 "이준석은 그래도 (상계동에 위치한) 온곡초 나오지 않았나"라며 "그래도 이 동네 출신이라는 게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 버림받았다'는 점도 민주·진보 성향 지역구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당 내 야당'이란 이미지뿐만 아니라 동정표를 호소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이 당에서 막 당했잖아, 그게 짠하지. 나는 누굴 찍을지 모르겠는데, 네 번이나 나오는 건 그래도 지가 뭔가 해보려는 거 아냐? 동정표가 갈 수 있지." - 상계역 인근 상인 F씨
하지만 관건은 당의 공천 여부다. 국민의힘이 그에게 공천을 주지 않고, 이 전 대표가 무소속으로 출마를 강행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그 만큼 낮아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건 2018년 노원병 재·보궐선거다. 당시 이준석 바른미래당 후보는 2만 5001표(27.23%)를 얻었는데, 이는 2016년 4월 직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얻은 3만 2285표(31.32%)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재·보궐선거 당시 강연재 자유한국당 후보가 나와 1만 3297표를 얻어(14.48%) 소위 '보수표'를 분산했기 때문이다.
"이준석은 똑똑하고 '말빨'이 좋은데, 윤석열 대통령이랑 불화를 일으키잖아. 난 국민의힘에서 후보를 내면 그쪽에 투표하지. 근데 이준석이 공천을 받아오면 찍어줘야지." - 상계중앙시장 반찬가게 상인 G씨
▲ 이은주 정의당 의원과 홍기웅 진보당 당협위원장이 내건 현수막. 둘은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 박현광 |
덧붙이는 글 | 노원병의 대통령 선거·지방선거 표심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를 바탕으로 추산한 것이다. 다만 추산 과정에서 거소·선상 투표,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를 제외한 관내사전투표와 선거일투표를 기준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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