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혁명'의 결과가 이런 대통령이라니

이소영 입력 2023. 10. 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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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에게 왕은 필요없다③]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은 정치 실종의 결과

[이소영]

"지지율이 1%가 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다. '국민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생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말대로 윤 대통령은 여론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주요 정책과 인사를 밀고 나간다. 대통령실 이전부터 시작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R&D 예산 대폭 삭감은 물론 위법 행위가 의심되는 정부 인사의 임명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정을 운영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도 않다.

온전히 국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민주 국가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행보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독주를 멈추게 할 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개헌만으로 제왕을 막을 수 있을까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기 위해 합리적 공론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 참여사회
 
한국의 대통령은 흔히 '제왕적 대통령'이라 불린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이에 촛불 이후 개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개헌 논의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분산 또는 제한하는 것이 유일하고도 핵심적인 해결책'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정부 형태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돼 왔다.

현재의 헌정 체제에서는 원래 국회에 귀속되어야 할 법률안 제출권이나 예산에 대한 실질적 결정권 등이 대통령에게 있다. 이뿐 아니라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명을 받아 정부 정책을 수립·이행하는 국무위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행정부 견제가 힘들다. 또 대통령 1인이 행정부 내 모든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대통령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특별사면권을 갖고 있어 독점적 사면 결정도 내릴 수 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모든 결정을 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이 행정부 전체를 통제하는 구조이다.

이렇게 비대한 대통령 권한을 줄이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는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진 듯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정부 형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 결국 그 핵심은 '대통령 권한의 제한'이다.

가령 국민적 선호도가 가장 높은 대통령 4년 중임제 안의 경우, 국회와 대통령의 권한을 명확하게 분리하고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금지하며, 예산법률주의1)를 통해 예산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국회에 부여함으로써 국회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행정부 내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국무회의를 의결기구로 바꾸고,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견제를 위해 독립적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제안된다. 이와 함께 ▲ 국무총리의 지위와 권한 강화 ▲ 지방분권을 통한 중앙집권적 행정권력의 분권화도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면 제왕적 대통령의 출현을 막을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 나타난 원인은 현행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권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서운 추위속에 촛불 든 시민들 '허탈'

우선, 대통령의 제왕적 성격은 헌법이나 법률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법을 우회하고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제왕적 대통령은 독립성과 중립성이 요구되는 권력기구를 자신의 통치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권한을 강화하고 권력을 독점한다.

법에 따라 독립된 지위를 부여받아 중립적이고 공정한 감찰 의무를 지니는 감사원, 마찬가지로 독립성·중립성·공정성이 최고 가치가 되어야 할 검찰이 대통령의 통치 도구로 전락하여 정치적 반대 세력 및 사회에 대한 통제와 억압에 활용된다. '법치주의'라는 구호로 무장한 이들 권력기관은 제대로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은 채 대통령 권한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둘째, 의회정치가 실종된 시대에 대통령의 권한은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입법부의 기능이 약화되면 행정부가 입법 기능을 대신하고 대통령은 견제 없이 제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정치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시행령을 남발하고 거부권을 남용함으로써 입법부 고유의 권한을 더욱 약화시킨다. 거부권과 행정명령권은 헌법과 법률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권한이지만, 이 권한의 남용은 전적으로 정치의 영역과 관련되어 있다.

적대적 정치환경에서 여당과 야당의 협치는 불가능해지고 여당은 대통령의 수하 기관처럼 기능한다. 대통령은 여당을 이용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원하지 않는 법안에 대해서는 통과를 막는다. 또한 야당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 설혹 법안이 통과되어도 시행령을 통해 법을 무력화시킨다.

나아가 여야의 극단적 대치는 언론·검찰·사법부 등 비(非) 선출 권력이 정치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고, 이 과정에서 비선출 권력이 국회의 의정활동과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권위주의 시대의 관성과 왜곡된 정치문화의 토양을 답습한 리더가 주요 언론을 통제하고 검찰을 통치 도구화할 경우, 비선출 권력에 의한 입법부 통제는 강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비대해진다.

셋째, 정당 정치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커지고 있다. 정당 민주주의가 약하고 공천 과정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클 때, 선거에 출마해야 하는 여당 정치인들은 대통령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충직한 스태프 이상이 되기 힘들다.

헌법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지만, 내년 총선에서도 대통령이 여당 후보자 공천 과정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클 것이라고 예상된다. 과거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선거중립성 의무 위반'을 들어 탄핵소추를 진행했던 국회도, 당시 강하게 경고를 날렸던 선관위도 지금은 조용하다. 심지어 한겨울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국민들도 지금은 그다지 노하지 않는 듯하다.

대통령의 '후보자 밀어넣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정당이 책임 있는 후보자를 공천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과 체념의 결과일까? 매서운 추위 속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그 외침의 결과가 결국 양극화된 정치, 정치의 실종, 신뢰할 수 없는 정당, 제왕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 통치 도구가 된 권력기관이라는 사실 앞에서 허탈하고 무기력해지고 냉소적인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치가 복원되어야 대통령의 권한이 줄어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75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거수 경례를 하고 있다. 2023.9.26
ⓒ 연합뉴스
 
결국 개헌을 통해 정부 형태를 바꾸거나 대통령의 법적 권한을 제한하는 것만으로는 현실을 바꾸기 힘들어 보인다. 대통령의 비대한 권한은 본질적으로는 한국에서 정치가 실종된 결과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지켜지는 민주적 정치 구조를 위해서는 정치의 복원이 가장 우선적 과제라 하겠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감시·견제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뿐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제도적·정치 문화적 기반을 갖출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은 양당 대결 구도 하에서는 갈등 조정이 어려워 결국 대통령·여당과 야당 간 패싸움만 남는다. 그 결과, 검찰·감사원 등 비선출 권력이 정치에 쉽게 개입하게 되고 사법부가 심판자로 등장하여 정치의 영역이 극도로 축소된다.

국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회 내 대결 구도를 바꿀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혁으로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 내에서 공존할 때, 민주적 규칙을 수용하면서 서로 합의하는 정치문화를 만들 수 있고 타협과 조정의 정치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국회의 입법 기능 강화, 대통령에 대한 견제 기능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당이 제 기능을 회복하지 않고는 정치 복원이 불가능하다. 대통령이나 정당 지도부가 공천을 장악하면 정당 정치가 왜곡되고 이에 따라 자질이 부족한 정치 지도자를 배출할 위험이 커진다. 이들은 제도적 장치를 경시하고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여 극단적 지지자들을 만들어 내며, 이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게 된다.

따라서 정당의 대중적 기반 및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하고 공천 과정을 민주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당 민주주의와 시민적 참여의 정치문화를 회복할 때 비로소 정당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래야 자질과 역량을 겸비한 정치 지도자가 배출될 수 있으며 그 결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 그리고 견제와 균형의 정치가 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권력기구의 제자리 찾기가 시급하다. 권력기구를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공수처 기능 확대 등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권력기구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개혁의 필요성 또한 크다. 비선출 권력의 권력을 나누고 시민이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정부형태에서도 권력기구를 도구화하는 제왕적 지도자가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힘들다.

제왕적 대통령을 막기 위한 개헌 논의가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겠지만, 개헌이 해법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심할 일이다.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기 위한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긴 시간이 필요한 개혁도 있고 신속히 완성할 수 있는 과제도 있을 것이다. 과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기 위해 합리적 공론장을 만들고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1) 예산을 법률의 형식으로 의결하는 것. 대부분 국가에서 예산은 법률이지만, 한국은 국회의 예산안 심의·확정권을 입법권과 별도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예산은 법률안이 아닌 예산안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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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 이소영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10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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