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벌벌 떠는 '삐라'…대북 심리전 본격화
신원식 장관 취임 뒤 확성기 가동 공식화할 듯
정보당국, 北 내부로 정보 유입시킬 준비 완료
문재인 정부 시절 만들어진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본격적인 대북 심리전을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을 중지하거나 파기하는 부담을 안지 않고, 대북전단 살포 및 확성기 가동을 통한 '김정은 압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들 심리전 수단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비대칭 전력으로 꼽힌다.
통일부는 지난달 헌재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위헌 결정을 내린 뒤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입장문을 통해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통일부는 "지난 정부는 남북관계발전법을 졸속으로 개정했다"며 "헌재 판결은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과도하게 제한되고 북한 주민의 알 권리도 침해되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은 전단 살포에 따른 김여정의 반발 직후 문재인 정부가 법 제정 의사를 밝힌 탓에 '김여정 하명법'이라 불리기도 한다.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전단 살포 등 행위를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이 조항으로 군 당국의 대북 확성기 방송도 발이 묶였다.
전단·확성기·정보 유입까지…심리전 족쇄 풀렸다
정부는 이미 대북 심리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다. 주요 계기는 지난해 12월 북한의 무인기 도발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통일부는 남북관계발전법과 연계된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하면, 그 자체로 대북전단 살포 행위와 확성기 방송 재가동이 가능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 대북전단금지법 자체가 위헌이라는 판단까지 나왔으니, 아무런 걸림돌 없이 전적으로 정부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군 당국도 이미 충분한 확성기 전력을 확보해둔 상태에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군은 160억원을 들여 기동 확성기 16대, 고정 확성기 24세트 등 신형 확성기 도입을 완료했다. 신형 확성기의 가청 범위는 기동 확성기 기준 8~10㎞, 고정 확성기는 12~15㎞로, 군사분계선에서 개성공단까지 방송이 닿을 정도의 성능이다. 저녁 시간에는 가청 범위가 최대 30㎞까지 닿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당국도 대북 심리전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 5월 북한을 겨냥한 심리전을 전담하는 '대북심리전국'을 1급 독립부서로 신설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 회담·교류 기능을 담당했던 대북전략국을 폐지했다. 신설된 대북심리전국은 2차장 산하에 편제됐다고 한다. 기존에 대공·방첩 등 국내 파트를 전담해온 2차장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북한 담당' 차장으로 바뀌었다. 국정원은 북한 주민들에 정보를 유입하는 심리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효과만점' 심리전…김정은 벌벌 떠는 '비대칭 전력'
심리전은 북한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으로 꼽힌다. '김정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전단 살포 때마다 "너절한 삐라"라며 격하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북전단금지법은 위헌'이라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민간의 전단 살포 행위를 허용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20일 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인천 강화도 일대에서 전단 20만장과 USB 1000개, 소책자 200권을 날렸다.
군 당국이 운용하는 확성기는 냉전시대의 유산이라 평가될 만큼 오래된 심리전 도구나. 과거 북한이 우리의 확성기 방송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했는지 돌아보면, 확실한 효과를 낸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례로 2015년 8월 목함지뢰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부는 확성기 재가동을 결정했다. 당시 북측은 "확성기를 멈추지 않으면 전쟁"이라고 위협하며 확성기를 향해 고사총까지 발사했지만, 우리는 계속 가동했고 결국 북한은 지뢰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정보 유입'도 대북 심리전의 한 축이다. 정보 소식통은 "윤석열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북한인권' 논의를 선도하는 노력을 통해서도 김정은 정권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물밑에서 내부로 정보를 유입시키기 위한 고민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 당국이 밝히지 않은 사실을 유입시켜 주민들을 동요시킨다는 구상이다. 예컨대 김정은의 친모가 북한에서 최하층으로 여겨지는 '재일교포'라는 점, 김정은 일가에도 탈북자가 여럿 있다는 점 등이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신원식 장관 취임하면 확성기 등 심리전 본격화"
북한은 이미 사이버 공격까지 동원하는 등 대남 심리전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사회적 이슈를 정교하게 악용하는 행태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용산구 이태원 사고 대처상황 - 2022.10.31(월) 06:00 현재'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 유포했다. SK C&C 판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을 땐 '[Kakao] 일부 서비스 오류 복구 및 긴급 조치 안내' 제하의 피싱 이메일을 뿌렸다.
정부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북한의 대남 활동 및 간첩 공작에 대한 '심리전 강화'를 주문한 것이 심리전의 시작을 알린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 북한은 지난해 전례 없는 도발을 감행하며 미사일을 70발 넘게 퍼부었지만, 올봄 이후로는 정찰위성 발사 외에 중대한 도발을 어느 정도 자제하는 양상이다. 심리전은 '강경파'로 꼽히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에 이어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취임까지, 안보라인 교체를 완료하면 보다 본격화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9·19 남북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했지만, 우리가 먼저 파기하면 도발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통일부는 이미 사실상 대북전단 살포를 허용해오고 있지 않느냐"며 "이처럼 국방부 장관 교체 작업이 끝나면 대북 확성기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다'는 일종의 의사 표현이 이뤄지거나,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선을 넘는 도발에 나설 경우 예고 없이 가동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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