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 항생제 '내성균' 크는데…약 분리수거, 버릴 곳이 없다
25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기자가 지난달 코로나19에 걸렸을 당시 처방받은 약 중 남은 폐의약품을 분리 배출하기 위해 약국 세 곳에 들렀다. 세 곳 중 아무 말 없이 약을 받아준 곳은 한 곳뿐이었다.
A약국 약사는 “봉지째 들고 오지 말고 알약만 모아서 따로 담아 가져와 달라”고 말했다. 이유를 묻자 “약을 수거해 가시는 분들이 봉지째 든 약은 가져가지 않는다”며 “봉지에서 알약을 분류하는 데 또 인건비가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B약국 약사는 “코로나19로 처방하는 약은 감기약과 똑같고 유통기한이 기니, 버리지 말고 집에 보관하다 또 쓰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 2017년부터 폐의약품을 분리 배출해 따로 처리하도록 제도화했다. 폐의약품을 특별관리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분류해 약국·보건소·동사무소에 설치된 폐의약품 함에 버리면 지자체가 수거·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폐의약품이 일반 쓰레기처럼 종량제 봉투에 담겨 버려지거나 하수구를 통해 도시하수로 배출되면 토양과 하천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이유에서다. 중앙대 항생제내성체 연구센터는 2019년에 한강 하류 등에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 300종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영국 요크대 등 국제연구팀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서울 한강 8개 지점에서 활성 약물 성분(API) 61종 중 23종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청 민원실 앞에도 없는 폐의약품 수거함
인근에 있는 마포구청에 가보니 민원인이 오가는 청사 1층 재활용 쓰레기통 어디에도 폐의약품 수거함은 없었다. 결국 구청 건물 뒤편 보건소 입구까지 가서야 폐의약품 수거함을 발견했다.
서울 시내 25개 구청도 대부분 마찬가지다. 구청은 폐의약품함을 설치하게 돼 있는 동사무소의 상급 기관이지만 정작 구청에서 폐의약품 수거함을 설치해둔 곳을 발견하긴 어려웠다. 환경부의 생활계 유해폐기물 관리지침에 따르면, 가정에서 발생한 폐의약품은 알약과 가루약 모두 약이 든 봉지째 분류해 배출하고, 지자체가 각 지점에서 수거해 처리해야 한다. 또 지자체는 폐의약품 배출방법을 적극 홍보하고 지역 약사회 등 관련 단체와 협의해 폐의약품 수거 날과 방식을 결정해 약국과 보건소에 폐의약품이 적체되지 않도록 한 달에 1회 이상 수거해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폐의약품이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지정돼 지자체가 처리하도록 돼 있지만, 관리 지침은 지침일뿐 사실상 폐의약품 처리 주체와 방식을 의무적으로 명시한 명확한 법 체계가 없어 지자체도 관심 있게 일처리하기가 어렵다”며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변기를 통해 버리는 건데,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홍보도 부족하다”고 했다.
“마약성 폐의약품도 있을텐데…지자체 적극성 필요”
서울시는 우체통을 통해 폐의약품을 수거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한 구청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구내에 주민센터와 병원 5곳 등 동별로 배출함을 설치해 뒀다”면서도 “우편함도 이용할 수 있게 시에서 조치를 더했지만, 홍보와 시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인프라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헌수 대한약사회 대외협력실장은 “폐의약품에는 마약성 의약품이 있을 수도 있어 정확한 분리 폐기가 중요해 인프라 개선 등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 40% “폐의약품 분리 배출 몰랐다”
폐의약품을 분리 배출해야 한다는 인식도 여전히 낮다. 최근 자원순환사회연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서울시·경기도 시민 823명)의 40% 가까이는 ‘폐의약품 분리 배출법 자체를 모른다’고 답했다.
분리배출 의무를 아는 응답자 중에서도 82.6%는 실제 ‘분리 배출을 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분리배출함이 (근처에) 없어 귀찮다’는 것이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약국과 보건소 이외에도 편리하게 배출할 수 있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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