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 음악은 심상치 않았다…'검은 건반' 능력자 쇼팽 이 작품
“아저씨, 그 피곤하시면 라디오 음악 틀어놓고 운행하세요.”
“그럴까? 그럼 뭐 들을까.”
“클래식?”
디즈니+의 시리즈 '무빙' 마지막 회의 대화다. 다른 버스 기사에게 클래식 음악을 권하는 전계도(차태현)는 2회에서도 클래식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아버지 봉평과 동시에 듣고 있었던 음악이다.
무빙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심상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장주원(류승룡)과 황지희(곽선영)는 아예 ‘쇼팽 커플’이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또 헤어질 때 모두 프레드리크 쇼팽의 같은 곡이 나왔다. 피아노 작품인 즉흥환상곡 C# 단조 작품번호 66이다. 11회는 처음과 끝 모두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흘렀다. 쇼팽의 작품은 어떤 음악일까.
검은 건반이 가득한 음악이다. 제목부터 샤프(#)가 붙어있듯이. 음계 ‘도’부터 ‘시’까지 7개의 음 중에 4개를 반음 올려(#) 검은 건반을 눌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음악은 선언적으로 긴 첫 음부터 검은 건반 위에서 거의 머문다. 그렇기 때문에 어딘가 반듯하지 못하고 구겨진 느낌, 또는 해결되지 않고 어둠에 머물러있는 인상을 준다.
1810년 출생인 쇼팽 이전에는 이렇게 과감하게 검은 건반을 사용하는 작곡가가 거의 없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의 몇 작품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베토벤 ‘월광’ 소나타에 대한 헌정으로 해석되곤 한다. 베토벤이 ‘환상곡풍 소나타’로 이름 붙이고 후대에 ‘월광’이 별명이 된 이 작품도 C#단조로 검은 건반 위주 작품이다.
그런데 무빙이 가져다 쓴 부분은 이 음악이 그래도 빛으로 나아가는 부분이다. 쇼팽은 즉흥환상곡을 A-B-A 형식으로 썼다. 처음 나왔던 빠른 부분(A)이 끝나면 여유롭게 노래하는 부분(B)이 나오고, 다시 빠른 부분(A)가 나오면 끝난다. 무빙은 그중에 B 부분을 편곡해서 썼다. 두 사람의 애틋하고 슬픈 장면에 계속해서 흐른다. 그런데 B 부분은 어둠이 그나마 해소되는 장조다.
쇼팽은 이 작품의 중간 부분(B)을 단조에서 장조로 바꿨다. D♭장조다. 무빙은 선율이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면서 밝은 빛을 띠기 시작하는 이 부분을 골랐다. 그런데 왜 음악은 비극이 예고된 커플에 들어맞는 걸까. 검은 건반의 마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분명 장조이지만, 이 부분의 악보를 보면 알게 된다. 여기에는 반음씩 내려서 검은 건반을 눌러야 하는 음이 5개다. 장조로 조성이 바뀌었을 뿐, 검은 건반의 우수는 더 해졌다. 참고로,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2악장도 D♭장조다. 1악장의 우울이 해소되는가 싶은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완전하게 밝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쇼팽은 이 곡을 24세에 완성했다. 고향인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찬사를 받았던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출판을 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작품 번호를 받았다. ‘즉흥곡’으로 작곡된 곡은 세 곡이 더 있는데 모두 A-B-A 형식으로 돼 있고 중간 부분이 서정적인 노래를 한다. 그 중 4번인 즉흥환상곡은 베토벤 ‘월광’ 소나타처럼 ‘환상’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졌고, 가장 많이 연주되며 단연코 가장 사랑받고 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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