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강의 주인 잃은 신발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기차를 타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어둠에 잠겨 가는 부다페스트의 거리는 왠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숙소는 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현지인들이 사는 동네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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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국회의사당 |
| ⓒ Widerstand |
그만큼이나 이 강을 가리키는 명칭도 다양합니다. 독일어로는 도나우, 헝가리어로는 두너라고 부르죠. 다뉴브는 영어 명칭입니다. 이 강과 접해 있는 국가가 워낙 많아서 한 국가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보니, 오히려 영어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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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뉴브 강 |
| ⓒ Widerstand |
그런데 강변에서 금세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강가에 놓여 있던 신발 조각이었습니다. 다양한 모습의 신발이 강 바로 옆에 조각되어 있더군요. 신발과 함께 꽃 몇 송이도 놓여 있었습니다. 주인 없는 신발 조각은 왠지 쓸쓸하고 때로 섬뜩하게 보였습니다.
강가의 신발은 예상대로 아픈 역사를 담고 있었습니다. 나치즘이 헝가리를 지배하던 시절, 헝가리에서도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습니다. 수많은 유대인이 다뉴브 강변에 서서 처형을 기다렸죠. 헝가리의 파시스트들은 신발을 벗게 한 후 총살했고, 쓰러진 시신은 그대로 다뉴브 강에 가라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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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뉴브 강변의 신발들 |
| ⓒ Widerstand |
원래 우랄 산맥과 볼가 강 인근에 거주하던 헝가리인은 9세기경 이 땅에 정착했습니다. 11세기 헝가리 왕궁을 세우고 세력을 확장했죠. 헝가리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몽골군은 곧 물러났죠. 헝가리는 재건을 시작했습니다. 다뉴브 강 건너편에 보이던 부다페스트 성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5세기 헝가리는 문화적 황금기를 경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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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 건너로 보이는 부다페스트 성 |
| ⓒ Widerstand |
혁명이 완전히 실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은 소수민족 지배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게 되죠. 오스트리아의 절대주의 통치가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후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도 패배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저항 세력의 활동은 더 활발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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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시 성당 |
| ⓒ Widerstand |
하지만 아직 어두운 시대는 끝나지 않았죠. 헝가리에도 나치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죠.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동맹을 맺고 주변국을 침공했습니다. 나치의 전쟁범죄에도 적극 가담했습니다.
전쟁 말기 헝가리는 추축국에서 탈퇴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조차 이를 눈치챈 독일군이 헝가리를 점령하며 실패했습니다. 결국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하며 헝가리의 2차대전은 끝이 납니다. 헝가리에는 곧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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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다페스트 자유광장 |
| ⓒ Widerstand |
부다페스트 시민 3천여 명이 소련군의 진압으로 사망했습니다. 헝가리의 자유주의 정책을 이끌었던 너지 임레 총리는 루마니아로 압송되어 비밀리에 처형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위조차 그저 실패한 혁명은 아니었습니다.
헝가리는 이후 점진적인 자유화 조치를 추진하게 됩니다. 분명히 동구권에 남아 있었지만, 자유로운 경제 체제를 일정 부분 도입한 것이죠. 이런 '헝가리식 공산주의'를 헝가리 전통 음식의 이름을 붙어 '굴라쉬 공산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헝가리는 1980년대에 접어들며 정치적인 자유화 조치들도 조금씩 이행했습니다. 1989년부터는 다당제를 허가하고 자유 선거를 치를 준비를 시작했죠. 여행 자유화 조치를 통해 오스트리아와의 국경도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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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뉴브 강변의 신발들 |
| ⓒ Widerstand |
부다페스트 강변에 세워진 신발들은, 꼭 어느 한 사람의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헝가리의 역사 속에서, 또 많은 사람들이 권력의 총부리에 몰려 이 강변에 서야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헝가리의 시민들은 그 속에서도 조금씩 진보와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 아래서도 자치를 얻어냈고, 소련의 지배 아래서도 자유를 얻어냈습니다. 그렇게 지금의 헝가리 공화국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도 다뉴브 강은 부다페스트의 중심을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세상은, 더 이상 이 강변으로 사람들을 몰아세우지 않는 곳이 되었을까요? 이제 신발 한 켤레로 남는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것일까요? 그런 고민을 하며 강변을 걸었습니다.
여전히 강변의 신발 조각 옆에는 꽃 한 송이를 두고 가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고통 위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꽃 한 송이가 시들기 전까지는 이 평화로운 강변의 풍경이 그리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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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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