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외상값 갚아야 한다"…이재명 기사회생으로 코너 몰린 '비명'
‘개딸’(개혁의 딸) 압박에 못 이긴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 걸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민주당 비명계 의원들의 ‘부결 고해성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낙연계로 분류되던 이병훈 의원은 지난 26일 페이스북에 “부결표를 던졌으며, 구속영장 기각을 호소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고 언급했다. 김한규·이소영·홍성국 등 비명계로 분류되는 표결 직후 부결표 행사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표결 공개가 비공개 투표 원칙에 어긋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한 수도권 의원은 “지역에서 반발이 너무 심하다. 각자도생이라도 해야지 어쩌겠나”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27일 구속 영장 실질심사에서 이 대표가 기사회생(起死回生)해 돌아온 뒤에는 비명계의 환영 메시지도 잇따랐다. 이원욱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무리수였으며, 결과는 완패”라고 적었으며, 강병원 의원은 “지난 2년간에 걸친 검찰의 무도하고 무리한 야당 탄압에 대해 사과하고 이를 주도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즉각 파면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런 모습을 두고 한 친명계 의원은 “재빠른 태세 전환”이라고 비판했다. 친명계와 비명계 사이에 깔린 불신이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이 대표의 영장 기각 이후 당내 비명계는 부쩍 위축된 모습이다. 우선 박광온 원내대표와 송갑석 최고위원 사퇴로 지도부 내 창구가 사라졌고, 강성 권리당원의 공격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중립 성향 중진 의원은 “차라리 부결을 시켜주고 향후 그걸 명분 삼아 친명계나 이 대표와 협상을 했어야 했는데, 정무적인 오판으로 명분과 실리를 다 잃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월 1차 체포안 표결 ‘무더기 이탈표 사태’ 당시엔 비명계는 한 달 뒤(3월) 수습책으로 당직개편을 받아냈고, 이어진 4월 원내대표 선거에서는 박광온 전 원내대표가 결선 없이 한 번에 당선되기도 했다. 한 수도권 친명 초선 의원은 “스스로 함정에 빠져 입지를 좁힌 셈”이라고 했다.
체포안 가결에도 비명계가 활로를 못 찾는 이유로는 ‘지도자 부재(不在)’라는 한계가 거론된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비명계에는 수장이 없다”며 “제각각 표결 이후 플랜이 다 다르고, 구심점 역할을 할 중진도 없다”고 지적했다. 다른 수도권 친명 의원은 “체포안 가결 후 비명계는 박광온 권한대행 체제로 자연스레 넘어가려던 전략을 삼은 듯한데, 이 느슨한 전략에 박광온만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명계 덕에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일시적으로 벗었다는 시각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체포안 가결→영장 기각 수순을 한 번에 밟은 게 이 대표 입장에선 최상의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이원욱 의원은 27일 SBS라디오에서 “(가결표를) 찍은 분들에게는 표창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비명계 의원도 같은 날 라디오에 나와 “구속 리스크는 털어냈다”(김종민) “검찰 리스크는 상당히 잦아들 것”(조응천)이라고 거들었다. 일각에선 “영장 기각이 곧 무죄는 아니다”(비명계 재선 의원)라며 완패(完敗)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관건은 향후 당내 친명계의 공세를 버텨낼 힘이 있느냐 여부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27일 최고위회의에서 “당원과 지지자, 팀원에게 했던 자해행위에 대해서 통렬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다. 그리고 반드시 외상값은 계산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다른 지도부 관계자도 “최고위에서 징계 시기와 방법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했다. 민주당 국민응답센터에 올라온 ‘가결 행위자에 대한 징계 청원’도 답변 의무 기준인 5만 명을 넘었다. 이에 대해 한 비명계 의원은 “일각에선 공천 때문에 이 대표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고 몰아가는데, 나는 그저 신념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며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더 겁낼 건 없다”고 말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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