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호모 미그라티오…세계를 떠도는 사람들

2023. 9.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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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지도를 보는 걸 좋아했다. 어떤 계기로 새로운 외국 지명을 알게 될 때마다 세계지도에서 그곳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곳을 가보는 상상을 한다. 요즘은 간편하게 구글맵으로 검색할 때가 많지만 전체를 조망하려면 아무래도 아틀라스 세계지도책을 펼친다.

도시 다음으로 끌리는 게 강이다. 땅을 나누고 사람을 이어주며 대지를 적시는 강. 세계지도에 나오는 저 강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아갈까. 저 강에서는 어떤 물고기가 잡힐까. 일리야 레핀의 출세작 ‘볼가강의 뱃사람들’을 처음 접했을 때 볼가강을 가보고 싶었다. 지금도 볼가강에 뱃사람들이 있을텐데. 그들을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학창 시절 ‘리오 그란데(Rio Grande)’를 배웠을 때 강이 얼마나 넓길래 ‘큰 강’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했었다. 아직까지 리오 그란데 강을 직접 볼 기회가 없었지만 항용 호기심의 대상이다.

지난 봄 방송과 신문의 국제뉴스에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이주자 이야기가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른바 ‘추방 정책’으로 통칭되는 ‘트럼프 시행 42호 정책’이 종료되자 국경이 개방될 것을 기대한 이주자들이 몰려들고 있다는 뉴스였다.

이 시기에 관련 사진이 수십 장 쏟아져 나왔다. 그 사진 중에서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결국은 가위로 오려 스크랩한 사진이 한 장 있다.

직사각형 검정색 에어매트에 어린이 네 명이 타고, 여자 어린이 한 명이 가까스로 에어매트에 매달려 있다. 어른 네 명이 에어매트를 밀고 리오 그란데 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카메라에 잡힌 어린이 네 명의 표정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 5월11일 이주자 가족이 에어매트에 어린이들을 태우고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한 가족일까, 아니면 두 가족일까. 고무보트에 실어놓은 배낭과 비닐 봉지 속에는 무엇을 꾸려 넣었을까. 또 이들은 과연 리오 그란데 강을 무사히 건넜을까.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으려는 불법 이주자 행렬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들처럼 내가 불법 이주자의 가장이었다면. 나는 과연 내 가족을 무사히 미국 땅에 데려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과연 불법 이주자 신분인 가족들을 건사할 수 있을 것인가. 조금만 허기져도 저혈당 증세로 기진맥진하는 약골인 내가….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처럼 위험한 일이지만 때때로 이분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 머리가 맑아질 때가 있다.

유엔(UN)에 가입한 나라는 199개국이다. 199개국은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나라와 이민자를 배출하는 나라.

먼저 이민자를 배출하는 대륙별 국가들을 살펴본다. 내전과 가난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민자를 배출하는 나라들이다. 수년째 내전에 신음 중인 수단, 니제르, 차드, 말리 등에서 국민은 원치 않는 전쟁에 내몰려 죽거나 아니면 굶어 죽는다. 처자식을 살리려면 나라를 떠나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민자를 배출하지 않는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한 몇몇에 불과하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도 이민자들을 배출하는 지역이다. 남미는 아프리카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남미 국가들 상당수는 석유를 비롯한 지하자원과 물산이 풍부한 나라들이다. 남미 국가들이 불법 이주자를 양산하는 것은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결과다. 남미 지역을 휩쓴 좌파 정부의 복지정책이 실상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금 퍼주기로 일관하다 경제가 거덜 나자 살길이 막막해진 국민이 미국행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해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영화 ‘더 스위머스(The swimmers)’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시리아에서 수영선수로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우던 유스라는 시리아가 내전에 휘말려 생명까지 위협받게 되자 독일로 탈출을 시도한다. 부모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빚을 내 탈출 자금을 마련한다. 언니와 사촌오빠가 험난한 여정에 동행한다. 먼저 터키 이스탄불까지는 항공편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밀입국 중개업자를 물색한다. 세 사람은 밀입국 중개업자를 만나 돈을 낸다. 고무보트에 의존해 바다를 건널 때 시청자들은 간이 콩알만 해진다. 다시 구간별로 돈을 낸다. 창문 없는 컨테이너 트럭에 숨어 타기도 하고 국경의 철조망을 넘기도 한다.

넷플릭스 영화 '스위머스'.

유스라 일행은 기적적으로 독일 땅을 밟는다. 베를린에 난민으로 정착한 유스라는 다시 수영을 시작하고 마침내 2016년 리우올림픽에 난민대표(ROT)로 출전한다. 우리는 천신만고라는 표현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나는 스위머스를 보고 ‘천신만고’라는 표현을 앞으로 쓰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에 시작됐다. 12년 동안 570만명이 시리아를 떠나야만 했다. 셀 수도 없는 시리아 난민이 바다를 건너다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난민의 참상을 보여주는 어떤 기사나 사진도 ‘스위머스’의 감동을 넘어서지 못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나라 상위권에 든다. 왜 중남미 사람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살고 싶어할까. 몸을 움직여 일을 하기만 하면 어쨌든 기본적인 생계를 꾸릴 수 있으니까. 캐나다는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는 정책을 펴 최근 2년 사이 캐나다 인구가 103만명 늘었다. 이로써 캐나다는 사상 최초로 인구 3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 미국에서 출신국별 1위는 독일계로 17%에 해당한다. 그 다음이 아일랜드계, 아프리카계 순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독일계가 그렇게 많았어?

2017년 시리아 난민들이 그리스 레스보스해를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고 있다. 이 사진은 미국 네바다대학이 시리아난민 문제를 이슈화하며 내건 이미지 사진이다. [사진= 네바다대학]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핵폭탄을 개발한 독일계 2세 미국인이다. 이름을 남긴 독일계 미국인의 이름을 열거해본다. 록펠러, 크라이슬러, 구겐하임, 골드만삭스, 오펜하이머, 아이젠하워, 키신저, 슈왈츠네거, 트럼프, 스티브 잡스, 빌리 조엘, 존 덴버….

미국에 왜 이렇게 독일계가 많냐고 물어본다면, 답은 간명하다.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지만 1950년까지만 해도 독일이 가난했던 시기가 길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나라가 분열되어 있었던데다 툭하면 침략을 당하거나 전쟁터로 변했고, 남자들은 용병으로 팔려나가기 일쑤였다. 1차세계대전에 이어 나치 체제와 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나라가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졌다. 독일인은 대서양을 건너지 않으면 먹고 살 방법이 없었다.

아일랜드는 누구나 다 아는 대로 1845~1852년대 감자 대기근으로 인구 850만이던 인구가 600만으로 줄어들었다.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리지 않으려 북미행 여객선을 탔다. 뉴욕, 토론토 등 북미의 대도시에는 유럽 거의 모든 나라의 코뮤니티가 있다. 리틀 이태리, 리틀 아이리시 하는 식이다. 그러나 프랑스 커뮤니티는 어디에도 없다. 유럽에서 가장 비옥하고 기후가 좋은 땅이 프랑스다. 먹는 게 풍족하고 나라가 안정되면 누구도 조국을 떠나지 않는다. 누가 고향을 등지고 물설고 말 다른 이역만리로 가겠는가.

정부가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사람은 그 나라에 기대를 접고 더 나은 환경을 좇아간다. 그게 인간의 생존본능이다. 호모 미그라티오(Homo migratio 이주하는 인간)다. 인류 역사는 호모 미그라티오의 역사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조선말 함경북도 사람들은 배고픔과 양반의 학정에 시달리다 두만강 건너 거친 만주 벌판으로 갔다. 1902년 인천 제물포항에서 하와이 이민선을 탄 조선인들 역시 똑같은 처지였다.

1950년 12월 흥남항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탄 북한 주민들.

1950년 12월, 눈보라 휘몰아치는 흥남부두에서는 더 절박한 호모 미그라티오가 벌어졌다. 북한 주민 10만명 이상이 후퇴하는 유엔군을 따라 무작정 따라나섰다. 그들은 기적적으로 미군 수송선을 얻어타고 남쪽 땅으로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한밤중에 두만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탈북민들이다. 중국에는 강제 북송의 공포에 떠는 탈북민들이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2022년 현재, 세계 난민은 3500만명이다.

추수감사절은 기독교 문명권의 추석이다. 추수감사절에는 가족이 다 모인다. 외국에 나가 아무리 성공해도 추석이 되면 고향 땅이 사무치게 그립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이제 한국인은 더이상 외국을 떠돌지 않는다. 외국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다. 500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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