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연휴, 자녀와 이런 대화 어떨까요?

이상욱 2023. 9. 2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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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특별하지 않아...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생각해야

[이상욱 기자]

 대구 동구 숙천유치원에서 열린 '추석맞이 전통체험 한마당'에서 원생들이 윷놀이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정에서 대화가 끊기면, 학교는 학생이 의지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공간입니다. 학교가 일반적으로 따뜻한 공간이 아니었다면, 우리 공동체는 이미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생계를 책임지는 보호자와 교육을 책임지는 보호자의 역할로 나뉘는 가정, 아침밥은커녕 저녁밥도 제대로 챙기기 힘든 맞벌이 가정은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가족의 모습이 아닙니다.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 성장의 최전선에서 싸웠다면, 학교는 자녀들의 지식부터 지혜·사회성·도덕성 발달을 책임졌습니다. 축제·수련회·수학여행·체육대회 등으로 평생 회자될 추억을 만들어주는 공간이었고, 온갖 육체적·심리적 문제를 관리하면서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최후방에서 고군분투해왔습니다.

하루에 7시간 이상을 학교에서 보내고 학원을 다녀오면, 학생이 집에서 부모님과 온전히 보내는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과제도 해야 하고 유행하는 드라마도 봐야하고, 학교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도 친구와 나눠야 합니다. 잠들기 전에 게임도 좀 해야겠죠. 부모와 자녀가 대화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그러다 보니 학부모 상담 때 가장 많이 듣는 보호자들의 토로는 단연 대화의 어려움입니다. 보호자들은 언제든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하지만, 자녀들의 입장은 조금 다를 것입니다.

자녀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부모가 하고 싶은 이야기
 
 추석 설문조사
ⓒ 이상욱
 
자녀가 듣고 싶은 이야기와 부모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괴리는 생각보다 큽니다. 물론 사춘기라서 부모에게 자신을 숨기고 싶을 수도 있지만, 사실 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싶죠. 쉬는 시간만 되면 교무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릅니다. 선생님을 찾는 학생들로요.

저희 반 재훈(가명)이는 꽤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수학을 잘 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체스에 소질이 있습니다. 말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자기 주장을 몇 분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친구들을 질리게 하기도 합니다. 쉬는 시간마다 자신의 철학으로 저를 설득시키려고 해서 귀찮을 정도였죠.

그렇기 때문에 상담 때 들었던 재훈이 어머님의 고민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작년부터 재훈이가 집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밥시간 때를 제외하면 방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체스 동영상을 보다 늦게 잤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부모님이 겨우 깨워 놓아도 지각을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다니던 학원도 모두 그만 두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과의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죠. 사이가 안 좋을수록 대화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습니다.

방과후에 재훈이와 체스를 두기로 했습니다. 제가 속수무책으로 세 번째 완패를 당할 때쯤, 재훈이가 말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재로 소문난 형과 항상 비교를 당했어요. 형은 영재고에 진학했고, 2년 만에 졸업해 일류 대학에 입학했어요. 저는 형을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형이 될 수는 없었죠. 부모님은 왜 형처럼 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형처럼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를 했죠. 형이 다녔던 학원을 똑같이 다녔는데, 항상 주눅 들었어요. '형보다 못한 동생'이 꼬리표처럼 저를 따라다녔거든요."

재훈이가 말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힘든 걸 참아야만 나중에 행복해진다는 말은 저에게는 거짓말이죠. 전 지친 게 아니라 부러졌거든요. 그래서 저는 나름의 행복을 찾아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책도 읽고, 게임도 하고, 체스도 배우고 있지만 솔직히 자신 없어요. 행복해질 수 있을지는요."

가족치료 전문가인 존 브래드쇼는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치유를 위해 '인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나는 널 보고 있고, 네 말을 듣고 있어. 그리고 있는 그대로 널 소중히 여긴단다. 너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존중한단다"는 게 핵심입니다.

사실 대화의 기술이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하게 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불쑥 나의 주장을 펼치고 싶을 때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면 됩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추석을 맞이해 반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길고 긴 추석 연휴 때 부모님과 하고 싶은 얘기(+)와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24명의 학생이 써낸 설문의 결과를 참고해서 추석 연휴 자녀와 대화해 보는 건 어떨까요?

졸업식날 재훈이 아버님을 만났습니다. 여전히 재훈이는 방문을 잠그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돌아갈 예전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십니다. 정답을 알지 못하는 저는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버님, 체스를 배워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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