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잡스인데 '폰 금지령'…네 자녀 '아빠찬스' 딴 데 있었다

서유진 2023. 9. 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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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참, 아이들도 새로 나온 아이패드를 마음에 들어 하나요?"
A : "애들은 아이패드를 써 본 적 없어요."
애플 창업자 고(故) 스티브 잡스가 작고하기 1년 전인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내놓고 나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나오는 대목이다. 잡스의 자녀라면 아이패드를 당연히 사용했을 것이란 생각에 던진 질문에 잡스는 예상 밖의 대답을 한 거다.

이어 잡스는 기자에게 “집에서 우리 아들·딸들은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없다”며 “아이들이 집에서 IT 기기를 접하는 걸 철저히 막고 있다”는 자신의 교육 방침을 소개했다.

왼쪽부터 스티브 잡스, 막내 이브, 둘째 리드, 셋째 에린, 그리고 아내 로렌 파월 잡스.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첫째 리사는 혼외자였던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로 사진 속 아이들과는 엄마가 다르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젖먹이도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시대를 연 아이폰의 '아버지' 잡스가 정작 자녀는 아이폰·아이패드 등을 멀리하게 했단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NYT에는 후속으로 "잡스는(하이테크에 대비되는) '로우테크(low tech)' 부모였다"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잡스처럼 다른 IT 기업 대표들도 자녀에게는 철저하게 전자기기 사용 제한을 둔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NYT에는 ‘잡스는(하이테크에 대비되는)‘로우테크(low tech)’ 부모였다’는 글이 실렸다.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아이패드 출시로부터 13년이 지난 2023년. 아빠의 '폰 금지령' 아래서 학창 시절을 보낸 잡스의 자녀들(첫째 혼외자녀 제외)은 어엿한 성인이다. 아빠의 교육 방침은 성공적이었을까. NYT와 미국 경제전문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미국 언론들은 잡스의 자녀들이 현재 무슨 일을 하며 사는지 조명했다.


혼외자와 얻은 첫째 딸, 작가로 성장


첫째 리사 브레넌 잡스(45)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교내 신문에 글을 실었던 것을 계기로 작가 겸 화가가 됐다. 리사는 잡스가 연인이었던 크리스 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다. 이 둘은 결혼 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20대에 만난 브레넌과 잡스는 1978년 브레넌이 리사를 임신하면서 결별했다.
첫째 딸 리사 잡스(왼쪽)와 스티브 잡스. 사진 페이스북 캡처
처음엔 잡스가 리사를 딸로 인정하지 않았고, 부녀는 법정 다툼까지 갔다. 하지만 나중엔 잡스도 리사를 자기 딸로 인정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지원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 이름을 리사로 지을 정도로 실은 딸을 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리사 브레넌 잡스가 쓴 회고록 '스몰 프라이'. 사진 아마존 홈페이지 캡처
역설적으로 아빠와의 사이가 나빴던 게 리사에게는 작가로서 돌파구를 마련한 계기였다. 리사는 2018년 그간 복잡하게 얽혔던 애증의 부녀 관계를 다룬 회고록『스몰 프라이(Small Fry·작은 존재)』를 출판했다.
스티브 잡스의 첫째인 리사 브레넌 잡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리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일하다가 스타트업 창업자가 된 빌 모레인과 결혼했다. 타임에 따르면 이들은 자녀 3명을 뒀는데 모레인이 이전 결혼에서 얻은 두 딸과 빌·리사 부부가 낳은 아들이다.

아빠 앗아간 암 정복 프로젝트 진두지휘하는 아들

잡스는 아내 로렌 파월 잡스(59)와의 사이에서 둘째 리드(아들·31), 셋째 에린 시에나(딸·27), 넷째 이브(딸·25)를 얻었다. 첫째 리사까지 합치면 자녀는 넷이다.

스탠퍼드대 MBA 학생이던 로렌 파월은 혁신적인 기업가 잡스와 금세 사랑에 빠졌다. 이들은 1991년 결혼해 아들 리드 폴 잡스를 얻었다. 잡스의 유일한 아들 리드는 올해 7월 벤처캐피털 '요세미티'를 설립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스티브와 파월이 결혼식을 올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이름을 땄다.

리드 잡스. 사진 스탠퍼드대 홈페이지 캡처

요세미티의 설립 취지는 명확하다. 아버지를 사망케 한 췌장암 등 암을 정복하는 걸 아들이 '일생의 목표'로 삼은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녀 넷 중에서 특히 리드를 아꼈다고 한다. 잡스의 전기에는 췌장암 투병 중이던 2007년, 잡스가 "리드가 졸업하는 모습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살고 싶었다. 신과 담판 짓고 싶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요세미티는 매사추세츠공대(MIT),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 록펠러대 등으로부터 2억 달러(약 26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고 자금 조성 목표를 4억 달러(약 5000억원)로 잡았다.

아들 리드와 2007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찍은 사진. 사진 스티브잡스 포토 홈페이지 캡처

앞서 리드가 일했던 곳은 어머니 로렌이 세운 자선·투자단체 '에머슨 콜렉티브'다. 환경·언론·교육·건강 등 각종 분야 사업을 하는 에머슨 콜렉티브에서 리드는 암을 연구하는 팀을 이끌었다. 이때의 경험이 바탕이 돼 요세미티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리드는 명문 사립고 크리스탈 스프링 업랜드 스쿨을 다녔고,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에서 역사와 국제 안보를 공부했다. 리드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잡스 가족'이란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건 꺼렸다.

스티브 잡스의 아들인 리드 잡스(왼쪽), 스티브 잡스의 아내 로렌 파월 잡스가 2022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등학교 때 리드는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자막에는 어머니 성(姓)인 파월을 따서 리드 파월이라고 표기한 자막이 나갔다. 아버지의 후광을 피하려 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셋째는 디자이너, 막내는 모델 겸 승마선수 활약

셋째인 에린 잡스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잡스의 전기에서 에린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향"이라고 묘사돼 있다. 에린은 아이작슨에게 "스티브 잡스는 나의 아버지이자 애플의 수장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자신의 역할을 꽤 잘해낸다. '역할 저글링'에 능하다"고 소개했다.
2010년 일본 교토로 여행을 간 스티브 잡스와 셋째 에린. 사진 스티브잡스 포토 홈페이지 캡처
막내인 이브는 지난해 "아이폰 14 바뀐 게 없잖아"라면서 애플을 저격해 눈길을 끌었다. 이브가 올린 사진은 "애플의 (아이폰14) 발표 이후 아이폰13에서 아이폰14로 업그레이드했다"는 글과 함께 한 남성이 자신이 입은 셔츠와 똑같은 셔츠를 들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는 아이폰이 신제품을 내놨지만 실제로는 이전 모델과 바뀐 게 없고 혁신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이브 잡스가 아이폰14에 혁신이 부족하다며 올린 밈(meme)사진.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이브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재원으로, 루이뷔통 모델로도 나서는 등 모델 경력을 쌓고 있다. 인스타 팔로워도 45만명이다.
말과 포즈를 취한 잡스의 막내 이브.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뛰어난 승마선수이기도 하다. 6살 때부터 말을 탄 이브는 빌 게이츠 MS 창업자 딸인 제니퍼 게이츠와 대회에서 경쟁한 적도 있다. 여러 차례 승마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받았고 2019년 '25세 이하 세계 1000대 승마 선수(호스 스포츠 선정)' 가운데 5위에 올랐다.
말을 타고 있는 이브 잡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잡스는 발랄하고 의욕 넘치는 막내딸을 사랑했다. 잡스는 전기에서 "막내딸 이브가 언젠가 애플을 경영하거나 미국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상상해봤다"면서 "이브는 제가 만난 어떤 아이보다도 강한 의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모델로도 활약중인 이브 잡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 창립자 "자녀엔 유산 X"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건 그가 56세였던 2011년 10월 5일이다. 그의 사망 당시 102억 달러(약 14조원)였던 회사 가치는 지난 7월 시가총액이 사상 첫 3조 달러(약 3975조원)를 넘는 대기록을 세웠다. 3조 달러는 세계 경제 총생산(GDP) 7위 국가와 맞먹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낡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은 창립 47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업이 됐다.

2011년 10월 5일. 잡스가 56세로 세상을 떠난 날, 애플 스토어 매장에 적힌 "고마워요 스티브"라는 글귀. AP=연합뉴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아내 로렌 잡스는 129억 달러(약 17조원)의 부를 갖고 있다. 남편이 사망할 때 애플과 디즈니 지분 등을 상속받아서다. 이런 막대한 재산이 자녀에게 갈 법도 하지만, 로렌은 NYT 인터뷰에서 세 아이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로렌은 "잡스가 생전에 자녀에게 유산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녀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가 뜻을 모은 건, 자녀가 각자 알아서 길을 개척하길 원해서였다. 잡스는 소위 벼락부자가 부리는 사치를 경멸했다. 잡스는 아이작슨에게 "애플 상장 후 많은 이들이 롤스로이스 등 고급 차량과 집을 사고, 가족들에게 성형 수술도 시켜줬지만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잡스의 '진짜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월터 아이작슨은 거의 매일 저녁 잡스가 큰 테이블에 앉아 아이들과 식사하며 책과 역사 등을 토론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누구도 밥상에서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지 않았다. 또 잡스는 투병 중에도 자녀들과 틈만 나면 여행을 갔다. 아빠 잡스가 가장 주고 싶어했던 선물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잡스표 아빠 찬스 "여기 이틀이 2년 비즈니스 스쿨보다 낫다"

물론 잡스라서 가능했던 '아빠 찬스'도 있긴 있었다. 잡스는 아들 리드가 험난한 비즈니스의 세계를 엿볼 기회를 줬기 때문이다.

아이작슨의 전기에 따르면 잡스는 리드가 고등학생일 때 애플 중역들이나 다른 IT기업 대표들이 모이는 장소에 데려갔다. 잡스는 아들에게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대단한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줬다. 그러면서 잡스는 "이틀간 네가 여기서 배우는 건 비즈니스 스쿨에서 2년 동안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 경험들이 쌓여 오늘날의 요세미티 벤처가 탄생했는지 모른다.

2007년 1월 9일 맥월드 컨퍼런스에서 애플 아이폰을 들어보이는 잡스. AP=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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