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240만 시대…외국인 예능에도 시작된 ‘변화’ [다문화 시대, 외국인 콘텐츠①]
조나단·샘해밍턴 등 다양한 예능에서 자연스럽게 활약
이탈리아와 중국 출신의 두 청년이 경북 영주의 어느 집을 방문하자, 할머니가 요강을 건네준다. 두 청년이 “마시는 거냐”, “비빔밥통 이냐”라고 질문하며 냄새를 맡자 웃음이 터진다.
1999년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한국이 보인다’ 속 한 장면이다. 당시 이탈리아와 중국에서 학업을 위해 한국에 유학을 온 브루노와 보쳉은 한국의 시골을 누비며 국내 문화를 체험하고, 때로는 할머니·할아버지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물론 한국 문화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그들의 진정성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였다. 그러나 외국인 청년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생경하던 그 시절에는, 그들이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서툰 모습이 웃음 포인트가 되곤 했었다.
외국인 예능의 트렌드가 바뀐 것은 2006년 KSB2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가 방송되면서부터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여성들이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의 차이에 대해 짚어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능숙한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한국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나라별로 다른 시선을 접하는 재미를 선사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보여주며 외국인 예능의 가능성을 넓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유리, 비앙카, 구잘 등 스타들도 탄생하면서 외국인 방송인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후 2014년 좀 더 진지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JTBC ‘비정상회담’이 이 바통을 이어받아 크게 흥행했다. 혼전 동거에 대해 각 나라의 인식 및 정책 등에 대해 알아보는가 하면, 글로벌 이슈에 대해 다루기도 하면서 재미와 정보를 모두 전달했다. 능숙한 한국어로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했던 타일러, 알베르토, 기욤, 다니엘, 럭키 등은 지금까지도 방송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한국이 보인다’처럼, 외국인들의 체험기를 다루는 프로그램도 없지 않다. 지난 2017년부터 꾸준히 방송 중인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다양한 나라에서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친구들의 한국 여행기를 다루고 있다.
다만 이들이 한국 문화를 낯설어하는 것이 아닌, 여행의 즐거움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재미를 동시에 전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 대다수의 출연자들이 자신의 취향대로 한국 곳곳을 진지하게 즐기면 패널들은 이를 지켜보며 공감하고,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포인트가 될 만한 부분들을 짚어내는 등 한국을 다른 시선으로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한 외국인 240만 시대에 발을 맞춰 그들의 일상을 담기도 한다. 학업, 취업, 여행과 사랑 등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어서와 한국살이는 처음이지’가 MBC에브리원에서 방송되고 있다. 여행을 통해 한국을 즐기는 것을 넘어,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있다. 론칭 당시 “김치로 신기해하는 한국살이는 NO. 한국을 신기해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넘어,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과 한국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국제적인 대한민국의 내용이 담긴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관찰자의 위치가 아닌, 프로그램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외국인 방송인들이 늘어난 것도 하나의 변화다. 콩고에서 온 조나단, 파트리샤 남매는 각종 유튜브 콘텐츠는 물론 여행, 좀비 예능 등 다양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활약 중이다. 샘 해밍턴도 육아, 여행 예능에 출연하며 ‘외국인’이 아닌, 한 명의 구성원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세계관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방송 중인 KBS2 ‘이웃집 찰스’의 정효영 CP는 최근 프로그램에 생긴 변화에 대해 “한국에서 태어난 외국인이 대학을 다니고 군대 가는 일상적인 모습을 많이 담으려고 한다. 과거에는 외국인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외국인으로서 이 나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더라. ‘이웃집 찰스’는 동시대성을 반영해서 21세기 외국인들이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사회 일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명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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