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아~ 민주당은 오늘도 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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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인 색출 '후미에' 같은 행태
영장 기각, 개딸 환호에 취해선 곤란
후진적인 것은 결국 심판 대상 된다
」
#1 "찾고, 또 찾아 헤매고 홀로, 나 홀로 정처 없이 헤매면, 가도 가도 애처로운 돌길, 아~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였다."
일본의 대표적 대중가요 '나가사키는 오늘도 비였다'가 발표된 건 1968년.
그런데 정작 60년대 나가사키 지방엔 비가 유독 적었다.
가사에도 당초 '비'란 단어는 없었다. 여러 번 개사한 끝에 노래의 핵심 가사인 '이별' '눈물'이 '비'로 바뀌었다.
가사에 나온 '돌길'은 나가사키의 교회당 길을 뜻했다.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이면서 심한 탄압을 받았던 순교의 땅 나가사키의 눈물이 이 노래로 표현됐다.
실제 에도 막부는 철저하고 모질게 기독교인을 다뤘다.
대표적인 게 1629년부터 약 230년간 실시한 '후미에'다.
숨어있는 '기리시탄(기독교인)'을 색출하기 위해 예수나 성모 마리아상이 그려진 그림을 발로 밟고 지나가거나 침을 뱉도록 했다.
주저하면 죄다 끌고 가 고문하고 처형했다.
나가사키에 있는 '처자 이별의 눈물바위'는 당시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이들이 가족, 친척들과 마지막 이별을 나누며 눈물을 흘렸던 장소다.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따위 아랑곳않는 야만적 행태가 횡행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2 400년 전 일본에 있던 후미에가 대한민국 여의도에서 부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지만, 체포동의안 표결 이후 민주당에서 벌어진 일련의 행태들은 치명적이다.
당 지도부는 가결표를 던진 것으로 의심되는 의원들을 색출해 중징계하겠다고 했다. 정치적 처형이다.
그러자 서로 앞다퉈 "난 부결표를 던졌다"고 인증 릴레이를 했다.
무기명 비밀투표에, 당론으로 규정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비밀투표와 당론의 정확한 뜻도 모르는,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국회의원을 뽑은 우리들의 책임이다.
색출에 나선 당 지도부는 이 대표 영장 기각 탄원서를 전원에게 제출하라고 공문을 돌렸다.
재판 과정도 아니고 구속영장심사 단계에 탄원서 제출이라니 기가 차기도 하지만, "탄원서 서명 여부는 자유 선택이지만 그 명단은 공개할 것"이란 건 협박과 다름없다.
가결표를 던지고 또 서명도 하지 않는 '기리시탄' 의원들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2023년 버전의 후미에였다.
협박이 통했는지 가결표를 던졌던 30명의 의원 중 24명이 사인했다.
이게 판사의 구속영장 기각에 얼마나 '심리적 후미에'를 끼쳤는지 알 수 없다.
개딸은 환호하지만 68년 역사와 전통의 당격(黨格)은 몰락했다.
#3 사실 당격까지 따질 계제도 아니다. 당격을 논하기 전에 의원 개개인의 격이 무너졌으니 말이다.
김의겸 의원은 검찰이 영장 전담 판사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대학 동기라고 했다.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자 "또 겁을 주고 있다" "한 장관 잔뜩 쫄아있다" "속이 타들어가는 건 우리만이 아니란 걸 한 장관의 신경질적 반응이 입증해주고 있다"고 했다.
새빨간 '가짜뉴스'를 말하고도 순수히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고개 숙이질 않는다. 늘 토를 단다.
그는 대변인일 때도 거짓 브리핑을 하곤 "그 정도 '잔기술'은 이 업계에선 통용된다"고 했다.
이쯤 되면 불치병에 가깝다.
따지고 보면 당 대표대행 격인 정청래 최고위원도 5년 전 그랬다.
방송에 나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한 것을 로데이터(원자료)로 다 받아봤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자 "'소소한 양념'은 내 식견과 유머,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이었다"고 했다.
양념과 잔기술로 퉁치는 게 버릇이 된 정치인, 정당에 미래는 없다.
색출도, 탄압도, 정치적 처형도 양념, 잔기술이라 포장할 것이다.
후진적 후미에의 에도막부도 그렇게 막으려다 결국 심판의 대상이 됐다.
이 대표가 영장 기각 후 서울구치소 앞에서 한 말 그대로다.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상대를 품는 정치'를 해야 할 때다.
행여 "아~ 민주당은 오늘도 비였다"란 이별의 노래, 눈물의 노래가 나오지 않으려면 말이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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