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이끄는 ‘희망의 동아줄’… 자발 기부 많아 재정자립 100%

박성희 2023. 9. 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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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숙 이주배경한부모가족상담소 대표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 부설>


이주배경한부모가족상담소는 비영리단체 '좋은학교만들기학부모모임'(조학모)의 부설 사회복지기관이다. 2009년 출범한 조학모는 초기 일반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진행했지만, 평일에는 생업으로 바쁜 취약계층 학부모를 위해 야간과 주말 상담 교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후 더 낮은 곳으로 시선이 머물면서 이주 배경을 가진 한 부모 가족과 북한 이탈(이하 탈북) 청년 자립에 힘쓰기 시작했고, 2012년 이들을 위한 전문 복지 기관을 세웠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시작해서 다음 사람의 터가 돼 주자"는 마음으로 2009년 조학모를 맡은 서인숙(56·사진·여의도순복음교회) 대표가 2012년 자연스럽게 이주배경한부모가족상담소 센터장 역할도 맡게 됐다. 자비량으로 활동 하고 있는 서 대표를 지난 21일 서울 양천센터에서 만났다.

서 대표는 2007년 어느 날 갑자기 허리 통증으로 전혀 몸을 못 움직이게 됐다. 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연락하니 3일 후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꼼짝없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어서 식음을 전폐했다. 3일째 되는 날 간절함으로 가족과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갑자기 ‘붙박이장 손잡이에 끈만 있으면 붙잡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이야기를 들은 가족이 머리 끈을 붙박이장 손잡이에 달아줬고, 그 끈을 붙잡고 기적같이 일어났다. 그 후 지금까지 허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다는 서 대표는 “그때만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내가 잡고 일어섰던 끈처럼, 나도 탈북 주민들에게 ‘희망의 동아줄’이 돼 주고 싶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이 정부와 지자체 지원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주배경한부모가족상담소(이하 센터)는 지금까지 정부지원금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재정자립도 100%로 서울에 3곳(양천, 영등포, 마포)의 센터와 경기도 양평에 교육연수원을 운영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상담 및 교육, 자립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평일 주말, 출퇴근 구분도 없이 센터와 연수원을 오가는 서 대표의 열정에 감동한 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재정 지원과 재능기부이다.

현재 센터가 집중하고 있는 사역은 20대~30대 초반의 탈북 청년들에 대한 교육지원사업으로, 통일부나 각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탈북 주민 정착지원의 사각지대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고등학교 졸업 학력자들은 한국의 교육체계에 편입할 기회가 없어 혼자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들을 돕기 위해 센터에서는 2021년부터 ‘매력시민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매력시민아카데미는 탈북 대학생 20명, 한국 대학생 4명 총 24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물 경제교육을 포함한 음악, 미술, 역사 등을 월 2회 총 12개월 과정으로 강의한다. 특별히 강의를 수료한 탈북 대학생에게는 실물 경제를 체험할 수 있도록 1인당 1000만원의 ‘시드머니’를 지급하고 있다.

2021년 시작한 ‘매력시민아카데미’에 참여한 탈북 대학생 20명과 한국 대학생 4명 및 강사들과 함께한 서인숙 대표(앞줄 오른쪽 두 번째). 특별히 아카데미를 수료한 탈북 대학생에게는 역량평가 심사 후 1000만원의 ‘시드머니’를 지급하고 있다.


올해로 3번째인 매력시민아카데미의 시드머니는 모두 봉사자들의 재정기부로 이뤄졌다. 서 대표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회복지기관이 양적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이주배경한부모가족상담소의 지원 시업은 한 사람의 내면 변화와 자립에 중점을 두고 오랜 시간 공들여 1:1 관계를 맺는 특징이 있다”고 밝혔다.

2013년 어느 날 38세 탈북 여성이 센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과 달리 간절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북한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한국의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센터에서 가까운 교회를 방문해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피아노 실력이 조금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테스트 연주 후 그녀는 “탈북하는 과정에서 3년 동안 피아노를 전혀 만져보지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서 대표는 그 여성에게 부지런히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서울의 유명 사립대에서 피아노 석사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살폈다. 노력 끝에 그녀는 석사과정에 합격했고, 조교로 활동하며 수업료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서 대표는 “석사 졸업 연주회 때 초대받아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처음 우울하고 어두웠던 모습이 꿈을 이루고 빛나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며 “나의 작은 도움으로 다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오히려 내가 행복을 선물 받는 느낌이다. 이 행복감이 하나님이 주신 포상으로 느껴져 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교수, 의사, 간호사, 은행원 등 센터의 도움을 받은 탈북 청년들의 자립 성공기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센터는 적극적인 홍보는 물론 흔한 소식지도 일절 만들지 않고 있다. “탈북민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간절한 청년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기 때문”이며, “홍보자료 만들 시간에 탈북민을 돕는데 전력하는 게 더 낫다”는 서 대표 및 상주 봉사자들의 생각 때문이다.

매년 4월과 10월 탈북 청년들은 나무심기 행사를 통해 ‘10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를 타임캡슐에 밀봉해 땅에 묻고 있다.


센터는 다음 달 양평연수원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한다. 대지 3500㎡에 세워진 연수원에서는 2020년부터 매년 4월과 10월 두 차례, 탈북 청년들이 자신의 이름표를 단 나무와 함께 ‘10년 뒤 나에게 쓰는 편지’를 타임캡슐에 밀봉해 땅에 묻고 있다. 서 대표는 “추석이나 설 명절이면 고향에 가지 못해 더욱 외로운 탈북 청년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가 있는 양평이 제2의 고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이들이 한국에서 열매 맺는 든든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성희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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