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형 빼줘라"...검찰 '수사 무마' 정황 녹음파일 공개
뉴스타파는 대장동 일당이 김만배 기자를 통해 검찰 수사를 무마하는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녹음파일을 입수했다. 총 3분 56초 분량의 녹음파일은 정영학 회계사가 2021년 10월에 검찰에 스스로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정영학은 이 중 2분만 '정영학 녹취록'에 실었고, 나머지 2분은 싣지 않았다. 자신도 공범으로 몰릴 수 있기에 일부 내용을 감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7월 2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를 받고 나온 남욱은 정영학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남욱은 수사관과 나눈 대화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남욱은 "(수사관이) 그냥 덮어줬다. 아예 터놓고 (사건을) 덮어줬다"면서 "만배 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윤갑근 서울중앙지검 1차장(당시 검사장급)의 이름이 등장한다. 남욱은 "깐 김에 다깠죠...우형이도 빼줘라"고 말했다면서 으스대기까지 한다.
이후 남욱의 발언은 현실로 이어졌다. 당시 검찰은 남욱에게 '무혐의'를, 조우형은 피의자로 입건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끝냈다. 당시 이들을 변호한 건 박영수 전 특검 측이었다.
예금보험공사가 고발한 2013년 서울중앙지검 수사는 실제로 '무마'
정영학 녹취록 곳곳에는 김만배가 고위 검찰 인사를 통해 대장동 일당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는 정황이 나온다. 그 중 대표적인 게 2013년 7월 2일 남욱-정영학 통화 녹음파일이다. 이날 이들의 대화를 이해하려면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2013년 예금보험공사는 남욱과 조우형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사연은 이렇다.
대장동 사업 초기인 2010년 11월, 조우형은 대장동 사업권을 인수했다. 이와 동시에 조우형은 경기도 고양시 풍동2지구 개발을 위한 시행사 '벨리타하우스'를 운영했다. 벨리타하우스는 부산저축은행이 조우형을 내세워 차명으로 소유한, 불법 사업장으로 의심받는 4개 법인 중 한 곳이다. 부산저축은행은 여기에도 409억 원을 대출해줬다. 이후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은 조우형에게 대출금 중 80억 원을 다른 회사로 보내라고 지시했고, 조우형은 이를 실행했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행각을 벌인 것이다.
대출금 배임이 이뤄질 당시 벨리타하우스 대표는 강모 씨였다. 강 씨는 조우형의 대학 후배로 바지 사장이었다. 실소유자는 조우형이었다. 조우형은 2011년 대검 중수부가 저축은행 수사에 들어가자, 회사 대표를 남욱으로 바꾼다.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자,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는 대출금 회수를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예보는 벨리타하우스 관계자인 남욱, 조우형, 강모 씨를 모두 고발하기에 이른다.
2013년 7월 2일, 남욱은 이 고발 사건에 대해 서울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고 나온 직후 정영학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얘기했다.
○ 남욱 : (검찰 수사관이) 책임지고 마무리하겠다.
● 정영학 : 음.
○ 남욱 : 그래갖고 이제 깠죠. 그래서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이러해서 이건 이렇게 된 거고. ‘그럼 한, 지금 한 17억 정도가 공중에 떠있네요?’ 그러더라고요. ‘그 정도 될 겁니다’ 그랬더니 ‘대충 맞긴 맞네요’ 그래서 ‘맞긴 맞죠. 그런데 자료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저번에 계장님이 그냥 가라(가짜)로 내라고 그래서 낸 겁니다.’
● 정영학 : 아.
○ 남욱 : 그래서 막 웃더라고요. 막 웃더라고요. 그러니 그 자료를 그 등기부등본이 3개예요. 그게 열 몇 개 중에. 그건 빼더라고요. ‘이건 뺍시다, 그럼’ 그렇게.
● 정영학 : 오케이, 오케이. 아이고 다행이네요. 아니 아까 들어가 있다고 한 순간부터 영 스트레스, 그냥
- 2013년 7월 2일자 남욱-정영학 통화 녹음파일. 기존에 공개된 정영학 녹취록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녹음파일 속 남욱 "수사관이 예보 고발인 불러서 조져준다고 했다"
녹음파일 속 남욱은 상당히 흥분한 모습이다. 벨리타하우스 "대출금 관련 비리에 대한 혐의를 소명하는 자료를 수사관이 '가짜'로 내라고 해서 그렇게 냈다고 했더니 수사관이 막 웃었다"는 등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을 정영학에게 설명하고 있다.
정영학은 "아이고 다행이네요. 아니 아까 (검찰에) 들어가 있다고 한 순간부터 영 스트레스"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때 검찰이 이때 이들을 처벌했다면, 대장동 사업 또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남욱은 '검찰 수사관이 자신들을 고발한 예보 관계자를 불러다 혼내주겠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전한다. 이 같은 남욱의 말이 사실이라면, 해당 검찰 수사관은 단순히 편의를 봐준 게 아니라 범죄 피의자들과 한통속이 된 것처럼 발언한 것이다.
○ 남욱 : 나중에는 그 얘기까지 했어요. 왜 고발을 당한 거냐. 그래서 얘기를 쭉 해줬어요. 그랬더니 ‘이 십새끼가 내가 열받게 했다고 고발을 한 거다, (예금보험공사) 관리인이.’ 그랬더니 ‘예보 사람이다’ 그랬더니. ‘변호사 아니냐’, ‘변호사 아니다’. ‘그러면 내가 불러서 조져줄게. 내가 복수 한번 해줄게’. (수사관이) 그러더라고.
● 정영학 : 그러면 (범죄 혐의가) 밝혀졌는데도 다행이네요.
○ 남욱 : 그렇죠. 그냥 덮어주더라고요.
● 정영학 : 네. 오케이, 오케이.
○ 남욱 : 아예 터놓고 덮어주더라고요.
● 정영학 : 네, 다행입니다.
○ 남욱 : 그것 때문에 늦었습니다.
● 정영학 : 아니, 아니에요. 괜찮으면 됐어요.
- 2013년 7월 2일자 남욱-정영학 통화 녹음파일. 기존에 공개된 정영학 녹취록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다.
"우형이도 빼주라 했다"...이후 남욱의 말대로 '혐의 없음' 종결
녹음파일에서 남욱이 언급한 청탁 경로는 '김만배→윤갑근(중앙지검 1차장, 검사장)→최모 수사관' 순이다.
남욱은 "아니, 그런데 보니까 만배 형이 고생을 많이 했네...(수사관이) 윤갑근 차장 얘기를 하더라고요. 검사장이 직접 전화하는 예가 없가 없대요. (김만배가) 얼마나 가서 달달 볶았으면 전화했겠어요"라고 말한다. 남욱은 또 "그래서 까는 김에 다 깠죠. 이렇게 됐다. (조)우형이도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에게 몰아주고 우형이도 빼줘라. (수사관이) 알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 들었다고, 얘기"라고 덧붙인다.
이날 남욱의 말은 결과적으로 현실이 됐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조우형을 피의자로 입건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를 받은 벨리타하우스 바지사장 강모 씨에 따르면 조우형은 조사 과정에서 "벨리타하우스는 강모 씨가 아닌 내가 실소유자"라고 자백까지 했다. 하지만 조우형은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남욱과 강모 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양(부산저축은행 부회장)에게 몰아주라"는 남욱의 말도 그대로 실현됐다. 2014년 6월,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는 김양 전 부회장을 벨리타하우스 관련 80억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중앙지검 수사망을 빠져나간 조우형은 2015년 수원지검이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면서 덜미가 잡혔다. 2015년 10월 15일, 수원지법은 벨리타하우스 대출금 80억 원 배임 및 불법 대출 알선 혐의로 조우형에게 징역 2년 6월, 추징금 20억 4500만 원을 선고했다.
윤갑근 "수사관에 전화는 전혀 사실무근"...최모 수사관 "1차장이 전화했을 리 없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청탁 의혹을 부인했다. 윤갑근 전 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김만배가 법조 출입기자를 오래했기 때문에 누군지는 알지만, 어떠한 청탁도 받은 적이 없고 담당 수사관에도 전화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청탁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녹음파일에서 남욱이 지목한 최모 수사관은 "그때 남욱을 내가 조사했는지도 오래돼서 기억에 없고, 1차장님이 나한테 전화를 했을 리가 없다"고 반박했다.
대장동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21년 10월 22일, 남욱에게 위 녹음파일의 내용을 물었다. 이에 남욱은 정영학 녹취록 내용이 모두 맞다면서 김만배로부터 "내가 갑근이 형한테 전화해놨으니까 걱정하지마"라는 말을 들었다고 답했다. 남욱은 그러나 실제로 김만배가 어떻게 부탁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검사는 김만배가 2013년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를 통해 청탁을 했을 가능성도 물었다. 남욱은 "김만배가 윤갑근, 곽상도 다 친하다고 자주 말을 하기는 했고, 곽상도에게도 연락을 했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남욱 진술 "김만배가 검찰 윗분들에게 얘기를 하기는 했다고 봅니다"
남욱은 지난해 11월 24일 검찰 조사에서는 김만배의 검찰 로비가 때때로 실현됐기 때문에, 자신이 김만배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날 남욱은 "김만배의 청탁을 받고 불기소했는지까지는 몰라도, 김만배가 검찰 윗분들에게 얘기를 하기는 했다고 봅니다. 이런 건 나중에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인데, 김만배가 아무 부탁도 안 했으면서 그렇게 과시를 했겠어요? 사업이 걸려있는데?...실제로 김만배가 사건이 처분되기 전에 '무혐의 처분될 거야'라고 말해준 적도 있습니다"라며 결코 김만배의 법조 인맥 과시나 허풍을 아님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수사 무마' 로비 정황이 적나라하게 담긴 대장동 일당의 녹음파일이 공개된 만큼, 실제로 김만배가 검찰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 수사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일련의 녹음파일과 관련자들의 진술까지 확보해놓고도 2년 넘게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대장동 일당의 검찰 수사 무마 정황이 고스란히 담긴 남욱-정영학 통화 녹음파일을 임의적인 편집 없이 전부 공개한다.
녹음파일 풀버전 보기 : https://youtu.be/z_tRXXemGog
뉴스타파 봉지욱 bong32@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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