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산책]먼지 덮인 소장고서 60년만에 돌아온 장욱진의 '가족'

김희윤 입력 2023. 9. 2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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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유화·먹그림·표지화·삽화 등 270여 점 전시
日서 찾은 '가족'·마지막 작품 '까치와 마을' 최초 공개
장욱진 애호가 RM 소장품 6점 전시 포함…내년 2월12일까지

“작품이 나를 기다렸구나”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일본 소장가의 아틀리에에서 처음 장욱진의 ‘가족’을 발견한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무성한 수풀을 낫으로 베어 길을 만들며 들어간 오래된 아틀리에, 전기조차 끊어진 건물 2층 다락방 한쪽에 있는 낡은 벽장에 눈길이 향했다는 배 학예연구사는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낡은 벽장문을 겨우 반만 열고, 몸을 비집고 들어가 휴대전화 조명등을 켰다고 한다. 오랜 먼지를 뒤집어쓴 물건들 사이 저 안쪽 깊숙이 비스듬히 꽂혀 있는 작은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설마 하며 손에 잡힌 그 액자를 벽장 밖으로 꺼내는 순간, 60년 동안 이야기로만 전해진 작품과 만남은 그렇게 성사됐다.

‘가족’(1955)의 발견 당시 사진. 배원정 학예연구사 제공

한국 서양화의 거장, 장욱진의 60년 화업인생을 총망라한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막했다.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 등과 2세대 서양화가로 꼽히는 장욱진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기원을 연 화가로 분류된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 동료들은 앞서 탄생 100주년을 기점으로 대규모 회고전을 통해 각자의 작품세계를 정리했다.

그래서 ‘장욱진 회고전’은 그의 탄생 100주년이 지난 시점에 열리고 있지만, 그가 아꼈던 작품을 발굴해 공개하는 의미와 함께 한국 서양화 2세대의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마지막 전시라는 평가를 받는다.

장욱진, '까치', 1958, 캔버스에 유화 물감, 40×31cm,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회고전은 1920년대 학창 시절부터 1990년 작고할 때까지 60여년간 이어온 장욱진의 화업 인생을 총망라한 전시다. 배 학예연구사가 일본에서 발굴한 장욱진 최초 가족도인 ‘가족’(1955)부터 마지막 작품인 ‘까치와 마을’(1990)까지 작가가 남긴 유화, 먹그림,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가장 진지한 고백’은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고 말한 장욱진의 글에서 가져온 것으로, 작가는 자신의 책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에서 밝혔듯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 진솔한 자기 고백으로 창작에 전념한 인물이었다.

‘가족도’(1972, 캔버스에 유화 물감, 7.5×14.8㎝) [사진제공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전시는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청년기(10~20대) △중장년기(30~50대) △노년기(60~70대)로 분류해 공간을 구성했다. 작가가 추구한 주제 의식과 조형 의식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형성되고 변모했는지 입체적으로 제시한다.

작품과 함께 공개하는 아카이브에서는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 미술 단체와 전람회 활동을 포함해 새롭게 공개된 작가의 초기 행적과 기존에 알려진 작품명과 연보상 오류를 바로잡는 연구 성과도 함께 대중에 선보인다.

전시가 시작되는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에서는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장욱진의 1917녀부터 1960년, 특히 그의 청년기 시절 작품을 대거 공개한다. 1938년 양정고보 5학년 시절에 그린 작품 ‘공기놀이’와 그해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7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에서 수상한 ‘정물’,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소녀’ 등을 발굴해 전시했다.

작품 '진진묘'는 아내의 법명으로 장욱진이 직접 제목을 붙인 작품이다. 개인소장.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작가는 중년에 접어들며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적 사유를 작품에 녹여냈다. '진진묘'(1970)는 아내 이순경 여사를 보살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에서 기도하던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다 '화상'(畵想)이 떠오른 장욱진은 그길로 덕소 화실로 향해 꼬박 일주일간 작품 제작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작품을 완성한 후 그는 아내에게 달려가 그림을 건넨 뒤 한동안 심하게 앓았다고 알려졌다.

장욱진은 평생 작품에서 까치와 나무, 해와 달을 반복해서 다뤘다. 그에게 까치는 분신 같은 존재였고 나무는 온 세상을 품는 우주였다. 해와 달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의 매개체를 상징한다.

그의 40대 대표작으로 꼽히는 ???'나무와 새'(1958)는 1958년 2월, 미국 뉴욕 월드하우스갤러리에서 진행한 ‘한국현대회화전’에 출품되며 한국 회화의 아름다움을 미국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마을'(1984)은 장욱진 특유의 대칭 구도를 기본으로 한 조형적 치밀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장욱진이 생전 마지막으로 남긴 '까치와 마을'(1990)도 최초로 공개돼 관심을 집중시킨다.

고 장욱진 화백의 가족사진 1964, 개인 소장. [사진제공 =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시에는 장욱진 애호가로 알려진 방탄소년단 리더 RM의 소장품 6점도 포함됐다. 다만 RM은 자신의 소장작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염려해 어떤 작품인지는 함구해줄 것을 미술관에 부탁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장욱진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과 함께 그간 축적된 장욱진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보완해 장욱진의 예술세계가 보다 온전하게 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진행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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