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수소, 尹정부가 안 할거라는 인식이 발목 잡는다
"5,6년 전 수소 사업한다며 투자를 받으려고 하면 수소보단 전기차가 대세가 될 거란 대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관심이 생긴 2,3년 전에는 액화수소가 되겠냐, 암모니아 사업을 하라고 되려 훈수를 뒀다. 올해는 어떤지 아느냐. 이번 정부는 수소 사업을 안 할 텐데 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더라."
최근 열린 한 수소 세미나에 참석한 한 중소기업 대표가 경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10여년 간 액화수소 사업에 매진했지만, 그는 회사가 여전히 스타트업이라고 표현했다. 일찌감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수소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수소에 대한 국내 인식이 바뀌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그는 투자자들에게 미국이나 유럽의 정책과 현지에서 추진 중인 수소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말했다. 국내가 아닌 해외를 좀 보라며. 그는 "미국, 유럽에서 하는 수소 사업을 보면 광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있어서 정치적인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와는 정말 다르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시대 청정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수소 산업이 우리나라에 만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양산하면서 수소 산업의 싹을 틔웠다. 조만간 액화수소를 생산하고, 혼소발전을 시작하는 것으로 꽃을 피울 봉우리를 맺는다.
허나 대부분 수소 기업들은 우리나라에 수소 산업이 꽃을 피우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미흡한 부분을 꼽으라고 하면 하나같이 정책이라고 답한다. 쉽게 말해 나라 정책에 확신할 수 없다는 거다.
확신 없이 갈팡질팡 하다 보니 결정은 늦어진다. 남들은 뛰고 있는데도 말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 6월 오만에 녹색수소 사업 독점 개발권을 확보했다.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남서쪽 약 450km 떨어진 알우스타주(州) 두쿰 지역에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단지를 만들고, 여기서 생산한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국내로 들여오는 사업이다. 제철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 포스코는 핵심 원료인 석탄을 대체하기 위해 수소 대량 확보가 시급하다.
포스코가 이 사업 모델을 개발한 것은 2021년. 당시 해외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던 오만 정부는 포스코에게 수의계약으로 사업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반년 넘게 투자를 결정하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정권이 바뀌었다. 정부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투자 위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는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오만 정부는 작년 말 경쟁 입찰을 도입하는 정책을 수립했고, 포스코는 지난 6월에야 사업권을 낙찰받았다. 사업 초기보다 비싼 값을 치러야 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업을 검토했던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은 한 발 앞서 오만 정부와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속전속결로 결정을 내려 경쟁 없이 더 좋은 입지의 사업권을 차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 방향은 기업이 투자 의사 결정을 이끄는 지렛대"라며 "정책의 일관성을 기업에 보여주면 의사 결정을 훨씬 빠르게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수소에 대한 정부 지원은 후퇴하고 있다. 최근 한국무역협회 조사 결과, 수소생산 구축사업 대상 10개 지역 중 5곳의 예산 집행률이 70%를 밑돌고, 모든 사업장이 인허가 문제 등으로 당초 계획보다 6개월 이상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소를 활용한 탄소중립 산업핵심기술개발 사업 예산은 기존 6조5662억원에서 9352억원으로 깎였다. 수소 생산기지 구축 사업 예산은 2021년 666억원에서 올해 88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CF(Carbon Free)100'의 국제 연합을 제안했다.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RE100' 보다 원전과 수소를 포함해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성을 높인 무탄소 에너지 체제다. 수소 사업에 적극 지원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은 반갑지만,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바라는 건 정책의 일관성이다.
오현길 차장 ohk0414@asiae.co.kr
Copyright©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기업까지 덮쳤다… 한국 산업계 흔드는 '집게 손모양' 논란 - 아시아경제
- 성장전망 낮추고, 물가전망 높인 한은…내년 더 힘들다(종합) - 아시아경제
- 카페 알바의 고백 "케이크에 들어가는 과일, 안 씻어요" - 아시아경제
- “내가 아빠야” 트로트 가수 오유진 스토킹한 60대 재판행 - 아시아경제
- 日 '부동산 큰 손' 해외투자자, 금리 인상 조짐에 시장서 발뺀다 - 아시아경제
- '4조 손실 전망' 홍콩ELS, "고령층에 판매 적합했나" 법으로 따진다 - 아시아경제
- "18개월에 글 줄줄 읽더라"…최연소 멘사 회원 된 美2세 여아 - 아시아경제
- "해야 할 일을 했을 뿐"…강추위 속 쓰러진 사람 구해내는 훈훈한 '시민 영웅들' - 아시아경제
- [르포]교촌치킨 왜 작아? 배달시간 왜 느려?...‘교촌1991스쿨’ 직접 가보니 - 아시아경제
- "시간관리는 학생 스스로" 日서 '수업 종' 사라진다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