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10년 차에 첫 우승 서연정…“긍정적인 마인드로 ‘착한 강자’ 꿈꿨어요…그래서 260번 기다린 것” [창간 54 인터뷰]
이은경 2023. 9. 27. 07:29
우승을 위해 260번을 기다렸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 첫 우승 트로피를 차지한 주인공은 서연정(28)이다. 이달 초 KG 레이디스 오픈에서 10시즌 만에 생애 첫 우승을 거머쥔 서연정은 아마도 그동안 도를 닦는 듯한 느낌으로 버텨오지 않았을까. 그의 깊은 속내와 투어 생활에서 느낀 깨달음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보았다.
2014시즌 정규투어에 데뷔한 서연정은 올해로 프로 10년 차다. 국가대표 출신인 그는 아마추어 시절 내내 남부럽지 않은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프로가 된 후 이 무대가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몸으로 느꼈다.
쟁쟁한 동기들에게 치이고 밀리는 느낌은 기본이고, 아무리 갈망하고 노력해도 우승이 찾아오지 않았다. 2019시즌에는 부진이 이어지며 1부투어 시드를 잃었다. ‘지옥의 시드전’이라 불리는 시드전을 거쳐 간신히 2020시즌에도 정규투어에 남았다.
서연정은 그렇게 10시즌째 꾸준하게 정규투어에서 뛰었지만 ‘우승 없는 프로’에게 세상의 시선은 냉혹했다. 한때 진지하게 골프채를 놓을 생각까지 했던 그에게 우승이 찾아온 건 260번째 대회였다. 같은 스폰서사인 요진건설의 후원을 받는 후배 노승희와 연장전을 벌였고, 한 타 차로 우승 트로피는 서연정 품에 안겼다.
260번째 대회 만에 우승한 건 역대 KLPGA투어 최장기간 도전 끝의 우승이다. 종전 기록은 안송이의 237번째 도전만의 우승이었다.
우승 순간에는 “실감이 안 난다”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던 서연정은 약 3주가 지나 다시 만나자 “이제 마냥 신나기보다는 겸손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면서 “타이틀도 좋고, 상금도 좋고 다 좋은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역시 2년간 시드를 확보한 게 제일 좋더라.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며 웃었다.
KLPGA투어의 힘은 세계 무대에서도 통할 만한 강자들이 즐비하다는 데 있다. 승승장구하는 다승자, 개인 기록 부문 상위 랭커들은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런 스타들을 제치고 언제든 우승할 수 있는 '서연정들'이 투어에 두텁게 포진하고 있다는 게 진짜 KLPGA투어의 힘이기도 하다.
서연정이 우승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어떻게 잘 버틸 수 있었느냐’다. 숫자로 쓰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10시즌’은 결코 순탄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서연정은 “골프는 우승만 생각하고 친다고 해서 성적이 나오진 않는다. ‘이러다 결국 우승은 못 해보고 은퇴하겠구나’ 하는 두려움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골프가 재미없어지니까, 긍정적으로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에 입문한 서연정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고,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천재 소녀는 아니었지만, 늘 꾸준하게 성적을 내는 선수로 평가받았다”고 했다. 어느 종목보다 경쟁이 치열한 여자 골프에서 남들과 비교당하면서도 잘 버텨낸 건 긍정적인 성격 덕분이었다. 서연정은 “골프 선수로서 내 최고의 장점을 꼽자면, 긍정적인 성격이다. 스트레스를 크게 안 받으려 하고 안 받는 편이다”라고 했다.
그런 그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 프로가 된 직후였다. 동기 백규정은 데뷔 시즌 3승을 거두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대회에서도 우승해 신데렐라가 됐다. 또 다른 동기 고진영 역시 루키 시즌에 첫 승을 신고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서연정은 “아마추어 때는 실력이 비슷비슷했는데, 프로에서 주목받는 건 그 친구들이었다. 정말 샘이 났고, 오히려 오기가 나서 더 골프를 그만두지 못한 것도 있다”고 웃었다. 그는 “내가 샘만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오히려 그때부터 그들을 인정하고, 걔들은 뭘 잘하는 건지 유심히 봤다. 멘털이 강한 것 같다고 느꼈다. 승부처에서 냉정하고, 흔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투어의 동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며 집중하는 성숙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솔직하게 자신을 분석한 서연정은 “내가 좀 노는 것처럼 플레이하고, 즐겁게 하는 걸 좋아한다. 연습하다가도 친한 사람이 오면 떠들기도 하고 집중력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서연정의 멘털리티가 더 단단해진 결정적인 계기는 베테랑 김해림과 친해지면서다. 2019년 시드를 잃고 시드전에 도전했을 때 누구보다 응원하고 힘을 줬던 김해림은 서연정에게 ‘냉정해지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연정은 “해림 언니가 내 단점을 지적하면서 ‘너 우승하려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줬다. 2019년에 김해림 언니와 친해지고 많은 걸 배운 게 내 커리어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만일 그때 서연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번 KG 레이디스 오픈 연장전에서도 절친한 후배 노승희와 경쟁하며 마음을 다잡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서연정은 “우승은 정말로 준비된 사람에게 오는 것이더라. 그동안 사람들이 '서연정은 뒷심 없는 선수'라고 평가할 때마다 상처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정작 우승 순간엔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했다.
골프에서 누구나 강조하지만 누구도 정답을 알기 어려운 멘털리티에 대해서는 “투어 생활을 오래 하면서 정신력이란 건 체력 훈련을 잘해 놔야 따라온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대회 마치고 쉬는 월요일에는 무조건 체력 훈련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프로 골퍼란 어떤 직업인가'라고 물었더니 "외로운 직업이다. 늘 외로움과의 싸움인 것 같다. 우승하고 환호받을 때도 있지만, 못할 땐 쓸쓸하게 잊히는 걸 감내해야 한다"고 답했다.
'착한 사람은 우승하기 어려울까'라는 주제에 관해서도 스스로 찾은 해답이 있다. 서연정은 “올해 특히나 신지애 프로님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정말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좀 악랄해야 골프를 잘 친다’고들 한다. 그런데 신지애 프로님이 늘 온화하게 웃으면서 플레이하는데 엄청난 결과를 내는 걸 보고 진짜 나의 롤모델이 됐다.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장기 목표를 물었다. 서연정은 “해외 투어에 나가겠다는 생각은 없다”면서 “우승을 한 번 해보니까 또 하고 싶더라. 우승한 날 축하 텍스트 메시지가 800통 정도 온 것 같다. 며칠에 걸쳐서 감사 답장을 보냈다. 그 기분을 또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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