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묻기가 효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가만 보면 이 속담만큼 최고의 덕담이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맛난 음식 맘껏 먹어가며 밤낮없이 즐겁게 놀듯이 한평생을 이처럼 지내라는 말, 와 이럴 수만 있다면야 나는 당장 지갑 속 천가방에 들어 있는 여섯 개의 ‘걱정 인형(worry dolls)’부터 뺄 작정이니 말이다.
네 걱정은 내가 할 테니 너는 잠이나 자렴. 오래전부터 과테말라에서 전해져온다는 이 걱정 인형의 주술성을 흉내 내어 보들보들한 토끼 인형을 하나 산 적이 있다. 쓰러져 혼자 몸 뒤집지 못하는 아가가 된 아빠에게 토끼 인형을 안겨주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걱정이 막 밀려와서 잠이 안 오면 이 토끼한테 다 말해. 그럼 얘가 그걸 물고 깡충깡충 멀리 떠날 거야.” 순간 토끼처럼 눈이 동그래진 아빠가 그랬다. “너도 참, 순박한 토끼에게 왜 그런 힘든 짐을 지워주냐. 토끼는 하염없이 착하다. 쓸어주기만 해도 내가 따뜻해진다.”
걱정 인형을 걱정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니…. 그때 병실 창문 너머 나는 크고 둥근 달을 봤다. “달에게 그 무슨 이별의 한 있으랴만 어이하여 늘 이별해 있을 때만 둥근가. 사람에겐 슬픔과 기쁨, 이별과 상봉이 있고 달에겐 흐림과 맑음, 둥그러짐과 이지러짐이 있는 법.” 1036년 송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의 시를 1945년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들려줄 적에 자연히 고개 끄덕이게 되는 공감은 결국 초월이란 배움 아니려나.
침대 옆에서 소동파의 시 ‘수조가두(水調歌頭)’(조규백 역)를 읽어주는데 잠들었나 싶게 너무 조용한 것이, 숨이 멎었나 싶게 아주 고요한 것이, 덜컥 겁을 불러 화들짝 가슴께에 귀를 갖다 대는데 스르륵 감은 눈을 뜨며 아빠가 말했다. “동파육이 너무 먹고 싶다.” 미식가 소동파로부터 유래한 요리라는 내 설명을 놓치지 않은 아빠 덕분에 올 추석 연휴 식탁 메뉴 하나가 정해졌다. 효도가 별거려나.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어보면 될 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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