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독주]①美 '강달러로 인플레 수출'..韓경제 물가부담 커진다

문제원 2023. 9. 2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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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러 속 주요국 통화 모두 약세
역환율 전쟁…달러 견제 세력 없어
韓경제, 물가·자금유출 부담 확대

"미국 경기는 약화할 기미가 없는데 다른 나라들은 경기 회복 신호가 잘 안 보입니다. 당분간 달러는 강세, 나머지 통화는 약세인 상황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과거에는 어느 정도 힘의 균형이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 그중에서도 연방준비제도(Fed)의 힘이 워낙 커서 위안화나 엔화 등 다른 통화가 안 보입니다."(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

미국 경제 호조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장기화로 달러 가치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달러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유럽이나 중국 등 주요국의 경제 상황이 여전히 미국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상당 기간은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는 최근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유가에 이어 강달러 부담까지 겹치면 쉽지 않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금융·외환시장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 수준을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05.9까지 오르며 가파른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지난 7월 중순 99.77까지 내려간 이후 지속해서 상승세를 보이며 장중 106을 돌파하기도 하는 등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반면 달러를 제외한 주요국 통화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 대비 엔화는 11.53%, 위안화는 5.64%, 원화는 5.39%, 유로화는 0.57% 각각 하락했다. 사실상 달러 독주 국면이다.

역환율전쟁 승자는 美…달러만 강세

이같은 달러 강세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란 분석이 많다. 미국뿐 아니라 대부분의 주요국이 지난해부터 물가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달러 가치가 오르면 미국 입장에선 물가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강달러가 되면 미국은 같은 물품을 수입해도 가격이 낮아지는 반면, 다른 나라는 달러로 표시된 에너지, 식량 등의 수입 가격이 더 올라 물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세계 각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추는 '환율 전쟁'에 나섰지만, 지난해부터는 오히려 자국 통화 가치를 높이려는 '역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물가 때문이다.

실제 미국은 과거 강달러 국면이 오래 지속되면 지금과 달리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응해왔다. 1985년에는 플라자합의로 일본, 독일 통화 가치를 끌어올렸고, 1988년에는 환율조작국 지정을 위한 법까지 만들어가며 중국 위안화 약세를 견제했다. 비교적 최근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환율 조작은 국제무역법 위반"이라고 강조하며 일본, 독일, 중국, 한국 통화 대비 달러 강세를 막은 바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필요에 의해 강달러를 유도한 상황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인플레이션 걱정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수출을 늘리려고 환율 전쟁을 벌였지만, 지난해부터는 역환율 전쟁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수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도 자국의 인플레이션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만큼 강달러로 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美, 경기·긴축 여력 있어"…강달러 계속

전문가들은 이같은 측면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달러 강세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은 고용 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경기도 좋아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더 높일 여력이 있지만, 중국이나 유럽 등 다른 주요국들은 경기가 안 좋아 미국을 따라 긴축 통화정책을 강화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 영국 영란은행(21일·이하 현지시간)과 중국 인민은행(20일), 일본 일본은행(22일)은 최근 줄줄이 금리를 동결했다.

반면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해 정책 목표 수준으로 안정화됐다고 확신이 들 때까지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고, 최근 미셸 보먼 Fed 이사와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은 총재 등 핵심 인사들도 "추가 긴축이 필요하다"며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 물가와 Fed 긴축 기조가 향후 완전히 꺾이면 강달러 역시 지금보다 약해질 수 있으나, 그전까지는 달러가 과거 대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힘이 생각보다 오래가고 있어서 강달러 구도는 이어지되, 그 정도는 내년 넘어가면서 지금보다 작아질 것으로 본다"며 "미국의 경기 여건이나 통화정책 이슈에 따라서 향후 1년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Fed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될 경우 달러의 강세 압력이 다소 희석될 것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금리차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의미 있는 수준의 달러 약세 압력을 발생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쉽게 안 꺾일 강달러…韓 물가·자금유출 우려

강달러가 오래 이어지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도움보다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기업의 원자재 부담 증가로 생산비용이 오르면 제조업 수출 중심인 한국은 타격이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반적으로 환율 상승이 우리 수출에 도움이 되는 건 맞지만 최근 수출이 안 좋은 것은 가격보다는 반도체 경기 부진과 더 관련이 깊다"며 "수출은 원화 가치 약세로 큰 도움을 받지 못한 반면, 물가 압력은 커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고금리 전망에 미 국채 금리도 지난주 10년물 기준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이 유동성을 블랙홀처럼 흡수하면서 국내 외국인 증권투자자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외국인 주식자금은 9억1000만달러(약 1조2171억원), 채권자금은 7억9000만달러(약 1조566억원) 순유출됐다. Fed가 연내 추가 금리인상에 나서면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 압력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Fed가 적극적인 긴축 통화정책으로 글로벌 금융·외환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원·달러 환율이 추가 반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 긴축 강도에 대한 기대가 가장 높았던 지난해 10월 수준에 근접해 있는 걸 감안하면 원화 환율 역시 한 단계 추가 상승 압박을 당연히 받을 것"이라며 "원화에 영향을 주는 또다른 축인 중국의 부진으로 1300원대 환율이 새로운 균형 수준으로 굳어지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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