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장기 고금리 시대 시작"…글로벌 통화정책 대전환
지난주 11개국 중앙은행 금리결정
전세계 통화정책 사이클 전환점
美·英 등 8개국 금리 동결 '긴축 장기화'
중앙은행 70% "내년 하반기 인하"
‘장기 고금리 시대(new regime·신체제)가 시작됐다.’
지난 18~22일 주요 20개국(G20) 절반 이상이 줄지어 통화정책을 발표하는 '금리 슈퍼 위크'가 끝나자 시장에서 나온 평가다. 통화정책 결정에 나선 11개국 중 7개국이 금리를 동결했다. 통상 긴축 기조가 약해지면 경기 연착륙과 피벗(pivot·방향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커져야 하는데 시장은 '긴축 장기화'에 초점을 맞췄다. 예상보다 강한 경제로 인해 각국 은행들이 그간의 긴축 효과를 확인하고 추가적으로 금리를 높이는 고금리의 뉴노멀 가능성을 더 높게 점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곤두박질친 경제를 구제하기 위해 장기간 이어진 초저금리 시대(구체제)가 가고, 고금리 시대(신체제)가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Fed ‘긴축 장기화’ 시사
지난 19~20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이후 점도표를 공개하자 장기 고금리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는 시각이 잡히기 시작했다. 점도표에는 내년 말 목표 금리가 5.1%로 종전 4.6% 대비 0.5%포인트 올라갔다. 내년 말까지 5%대 금리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기준금리가 5.25~5.5%인 만큼 금리 인하 시점은 내년 말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FOMC 직후인 24일 영국 시장조사업체 캐피털이코노믹스가 전 세계 30개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금리 인하 시점을 조사한 결과 ‘내년 하반기에 인하에 나서겠다’고 답한 곳은 21곳(70%)에 달했다.
시장은 이보다 비관적인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 제니퍼 매키언 캐피털이코노믹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 세계 통화정책 사이클에서 중대한 '전환점(milestone)'을 지나고 있다"면서 "고금리 상황이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답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프린시플자산운용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 시마 사하는 "Fed는 미 성장세가 예상보다 강하다고 보고 있어, 내년에 인하로 돌아설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FOMC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중립금리 추정치가 높아지고 있다’는 시장의 평가를 언급했는데, 이 역시 고금리 장기화를 시사하는 단서로 꼽힌다. 그는 "이것이(중립금리 추정치 상승) 미국 경제가 위축되지 않고 탄력적으로 버티는 이유"라고 말했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과열시키지도 냉각시키지도 않은 수준의 금리를 말한다. 그런데 중립금리가 높아졌다면 추가 인상이 이뤄지거나 인하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Fed 위원들은 중립금리 상승으로, 고금리 상황이 더 오래 지속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美 이어 英 등 지난주에만 8개국 '동결' 또는 '인하'
미국에 이어 영국 영란은행(BOE)도 깜짝 동결 결정과 함께 ‘긴축 장기화’를 선언했다. BOE는 2021년 12월 연 0.1%에서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14차례 금리를 올리며 공격적으로 긴축을 펼쳐왔다. 이번에도 0.25%포인트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그런데 회의 전날 물가상승률이 18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하루 만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앤드루 베일리 BOE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후 "추가 인상이 필요할지 면밀히 관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추가 인상 대신 5%대인 현 금리 수준을 오래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KPMG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야엘 셀핀은 "금리 인하는 내년 11월이 돼야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한주 앞서 금리를 결정한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지만 추후 동결을 유지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필립 레인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 금리는 인플레이션을 이길 수 있는 궤도에 있다"며 금리 동결을 시사했다.
이 밖에도 대만은 기준금리를 1.875%로 동결했다. 대만은 올 3월까지 총 5차례에 걸친 금리 인상을 끝냈다. 대만의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가 2.24%에서 2.22%로 하향하고, 내년에는 2%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지금까지 취한 통화정책 조치가 물가 안정에 충분한지 검증할 시간"이라며 연 1.75%로 동결을 택했다.
전 Fed 부의장이자 세계 최대 채권운영사인 핌코 채권 총괄 담당자인 리처드 클라리다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현 수준에 묶어두는 조치는 잠시 진정된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만큼, 다시 과열될 수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짚었다.
‘침체 中’ ‘엔저 日’은 금리 유지
경기 수축 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중국은 미국·유럽과 다른 이유로 금리를 동결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20일 기준금리 격인 대출우대금리(LPR)를 1년 만기 3.45%, 5년 만기 4.20%로 유지했다. 인민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 6월과 8월 LPR을 각각 0.1%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경제의 거품 붕괴로 인한 장기 침체 전망을 고려해 연내 추가적인 LPR 인하가 단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 신용평가사 둥팡진청의 왕칭 수석 애널리스트는 "낮은 물가가 금리 인하에 유리한 조건"이라며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노무라증권은 "금리를 내려도 가계와 기업이 부채 줄이기에만 몰두하느라 투자와 소비를 하지 않는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저금리에도 실물경기 부진을 계속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7년 넘게 마이너스 금리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은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로 유도하는 기존 정책을 유지했다. 이런 초완화적 통화정책으로 기록적인 엔저 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물가 불확실성이 아직 큰 만큼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이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리는 파월 의장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에 기반하겠다는 기조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WSJ는 "미국의 긴축 장기화가 엔화 약세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는 만큼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이너스 금리를 포기하거나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선(1%)을 없앨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美 앞지른 신흥국…긴축 끝내고 완화 모드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에 극단적 긴축 모드에 돌입했던 신흥국들은 미국보다 서둘러 금리 내리기에 나섰다.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20일 기준금리인 셀릭금리를 연 13.25%에서 12.75%로 0.50%포인트 내렸다. 올해 연말 셀릭금리 전망치로 11.75%를 제시해 향후 수차례 금리 인하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브라질은 2021년 3월부터 1년6개월간 발 빠르게 기준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은 뒤 지난달부터 금리 인하로 돌아섰다. 브라질의 8월 CPI는 4.61%로, 최근 6개월 연속 중앙은행 목표치(1.75~4.75%)에 부합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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