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치료제의 '만병통치' 꿈…GLP-1, 치매·간질환 잇단 임상시험
체중 감량효과 커 비만치료제로 주목
심혈관 질환 예방·1형 당뇨 치료 효과 확인
치매와 NASH 치료제까지 영역 확장 시도
주요 질환 치료 통한 보험입성 가능할까
2형 당뇨·비만 치료제로 시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약품이 심혈관 질환에 이어 1형 당뇨,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알츠하이머성 치매 등 각종 질환으로 영역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근원적 치료제가 개발되지 못해 미충족 수요(un-met needs)가 높은 질환들인 만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GLP-1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강하하는 효과가 확인되면서 제2형 당뇨 치료제로 개발이 시작됐다. 그러나 식욕 억제 효과, 위에서의 음식물 배출 속도 감소 효과가 확인되면서 비만으로 적응증을 확대하게 됐고, 최근에는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까지 확인됐다.
GLP-1 계열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를 개발한 노보 노디스크는 지난달 주요 심혈관 사건(MACE) 예방을 위한 표준 치료 보조제로 세마글루티드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한 '셀렉트(SELECT)' 임상에서 투약군의 MACE가 20%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를 개발한 일라이 릴리도 '서마운트(SURMOUNT)-MMO' 임상을 통해 터제파타이드가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줄일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10월 임상을 시작해 2027년에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생활 습관이 주요 병인인 2형 당뇨와 달리 유전적 문제 등으로 발병하는 1형 당뇨까지 GLP-1 치료제가 효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1형 당뇨는 유전적 요인 등으로 인해 면역세포가 췌장 베타(β)세포를 공격해 파괴해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는 난치성 질환이다. 근본적 치료법이 없어 평생 인슐린을 맞아야 한다. 지난해 발병을 지연하는 '티지엘트(테플리주맙)'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지만 역시 근본적 치료제는 아니다.
최근 미국 뉴욕주립 버팔로대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초기 1형 당뇨 환자 10명에게 세마글루티드를 투여할 경우 인슐린 투여 없이도 주요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인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치료 시작 전 이들은 당화혈색소 수치가 평균 11.7%로 정상범위인 4~6%를 한참 웃돌았다고 기저·식사 인슐린을 계속 투여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세마글루티드 치료 3개월 이내에 식사 인슐린을 모두 끊었고, 10명 중 7명은 6달 만에 기저 인슐린까지 끊었다. 그런데도 평균 당화혈색소 수치는 6개월 시점에 5.9%, 12개월 시점에 5.7%로 정상범위 내로 들어왔다. 연구진은 1형 당뇨 환자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인슐린을 비축하고, 세마글루타이드가 β세포로 하여금 이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자극함으로써 별도의 인슐린 투여 없이도 당화혈색소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발 더 나아가 치매까지 GLP-1 의약품을 통한 치료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노보 노디스크는 세마글루티드의 알츠하이머성 치매 개선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이보크(EVOKE)' 임상 3상을 2021년 5월 한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시작해 2025~2026년 마칠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임상이 진행 중으로 국내 임상 책임자인 한설희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당뇨와 알츠하이머성 치매 모두 뇌 염증이 중요한 원인이니까 이를 통해 치매의 주요 원인인 아밀로이드 베타(Aβ)의 독성을 없앨 수 있을 것이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며 "이미 Aβ가 상당히 쌓인 후에 일어나는 산화성 스트레스와 신경 염증을 없앨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른 질환으로의 확장이 중요한 건 향후 보험 적용이라는 관문을 여는 열쇠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경우 대다수 보험사가 비만 치료제에 대한 보험 급여를 적용하지 않고 있고, 공보험인 메디케어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급여 적용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심혈관, NASH, 치매 등 각종 비만 관련 합병증에 대한 효과가 확인된다면 보험 적용이라는 난관이 쉽게 풀릴 수 있게 되고,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2형 당뇨·비만 외의 적응증으로는 주로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치료제로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 빅 파마에서도 잇따라 치료제 개발에 실패하면서 '빅 파마의 무덤'이라고도 불린 질환이지만 최근 마드리갈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레스메티롬'이 FDA의 허가 절차에 진입하면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장(한미약품 사장)이 이끄는 'H.O.P(한미 비만 파이프라인)' 프로젝트를 통해 2025년까지 GLP-1 기반의 한국인 맞춤형 비만약 출시를 목표로 내건 한미약품이 이 분야에서도 가장 앞서가는 모습이다. GLP-1에 더해 체내 에너지 대사량을 증가시키는 글루카곤(GCG)의 이중작용제 '에피노페그듀타이드'를 MSD(미국 머크)에 기술 수출해 현재 임상 2b상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인슐린 분비 자극 폴리펩타이드(GIP) 수용체를 결합한 3중 작용제인 '에포시페그트루타이드(랩스트리플 아고니스트)'도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미국 자회사 뉴로보 파마슈티컬스에 기술이전 한 GLP-1과 글루카곤 이중 작용제인 NASH·비만 치료제 'DA-1276'의 임상시험계획(IND)을 올해 하반기 안으로 제출할 예정이다. GLP-1을 증가시키는 G단백질 결합 수용체 119(GPR119) 작용 기전의 NASH 겸 2형 당뇨 치료제 'DA-1241'도 임상 2상을 진행 중으로 최근 첫 환자 투약을 시작했다. 유한양행이 베링거인겔하임에 기술 수출한 'YH25724'도 최근 임상 1상을 개시했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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