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핵 공격 받는다면…"美, 핵우산 펼치지 않을 것" 65.6% [창간기획-한미 동맹 7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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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의 모든 교전 당사국은 전쟁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이 시기의 미국 정치인들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의 안보와 무관하다고 선언했던 멀리 떨어진 나라에 군을 파병함으로써 보여준 비전으로 기억될 자격이 있다."
최근 한국어로 출간된 저서 『외교』(Diplomacy)에서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는 '한국은 미국의 방어선 밖에 있다'던 미국의 기존 입장을 뒤집은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참전 결정을 "한국 문제에 대해 확고히 맞서기로 한 용기"로 평가했다.
이런 '비전'과 '용기'를 바탕으로 함께 피흘린 한·미 동맹이 올해로 70년을 맞았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온국민의 땀으로 다시 일군 지금의 대한민국은 침략당한 피해국이 아니라 책임있는 평화 수호국으로 국제무대에 다시 섰고,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생물체와도 같은 동맹은 7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방향으로 진화했다.
올해로 창간 58주년을 맞은 중앙일보는 동맹의 기반인 한·미 상호 방위조약 체결일(1953년 10월 1일)을 앞두고 국민과 함께 과거 70년을 돌아보고, 미래 70년을 내다보기 위해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8월25일~9월13일 사이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 조사(최대허용 표집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로, 표집은 성별·연령별·지역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 추출)를 통해 한·미 동맹의 과거와 현재를 평가하고, 미래에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
"북한의 핵 공격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은 과연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위험에 빠뜨릴 것인가."
외교가의 오래된 질문인 이른바 '서울-샌프란시스코 딜레마'다.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한국을 상대로 핵 공격을 감행한다면, 미국이 본토가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동맹인 한국을 도울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를 집약한 질문인데, 국민 3분의2는 미국이 그런 상황에서 '핵 우산'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중앙일보 창간 58주년과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중앙일보가 동아시아연구원(EAI)과 함께 실시한 심층 대면 면접 조사에서 '북한이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직접 공격하는 게 가능해진 경우에도 한국이 북한의 핵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해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라는 응답은 34.4%, 3분의1 수준이었다.
반면 과반이 넘는 55.8%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 밖의 군사적 수단으로 대응할 것"이라 답했다. 심지어 9.8%는 "미국은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다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핵우산을 구체화한 확장억제는 동맹이 핵 공격의 위협에 처할 경우 미국이 미 본토 방위와 같은 수준의 핵 억제력을 제공하는 게 핵심이다. 이번 조사에서 국민 상당수는 이런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 셈이다. 한·미 정상 간 대북 확장억제 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이 북핵 위협으로 인한 한국의 안보 우려를 해소할 것으로 전망하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면서도(57.6%) 정작 미국의 핵우산에 대해서는 더 많은 응답자가 의구심을 표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응답 비율에 차이는 있었지만, 추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보수층의 60.1%가 미국이 핵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고, 진보층(71.0%)과 중도층(67.0%)은 더 회의적이었다.
사실 윤석열 정부 들어 확장억제에 대한 미국의 공약은 더 명확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직접 핵, 재래식 및 미사일 방어 능력을 포함해 가용한 모든 범주의 방어 역량을 사용해 한국을 지키겠다고 수차례 확인했다.
그런데도 국민이 적지 않은 불신을 드러내는 건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빠른 속도로 고도화하는 가운데 오히려 한·미 동맹에 대한 냉정하고 현실적인 인식이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아무리 동맹이라고 해도 자국의 이익이 우선이고, 미국 역시 본토가 위협에 노출되는 상황에선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국을 우선에 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 완성을 선언한 뒤 최근에는 한국을 노린 전술핵 개발에 골몰하는 것도 이를 노려 '한·미 갈라치기'를 하려는 속셈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확장억제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정에 기대야 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이 판단해 '알아서 제공하는 방위'이기 때문에 기존에는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할 핵전력 목록조차 한국에 알려주지 않았다. 이에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핵 전력 운용시 한국의 발언권을 제도화할 수 있는 워싱턴 선언에 합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현재진행형인 '트럼프 트라우마'도 국민 인식에 상당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방위 공약은 확실하다고 해도 동맹을 경시하는 자국 우선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미국의 입장이 큰 폭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는 앞으로 정부가 풀어야 할 정책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확장억제 논의 과정에서 핵우산을 보다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화 등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여론을 '레버리지'로 삼을 필요도 있다. 지난 7월 한·미 핵협의그룹(NCG)도 출범했지만 '우리 국민은 아직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는 점을 근거로 미국을 향해 핵우산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설득할 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유엔총회 참석에 앞서 지난 17일 보도된 AP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앞으로 한·미의 확장억제는 양국이 함께 협의·결정·행동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체제로 발전할 것"이라며 "북한의 어떠한 핵·미사일 위협도 억제하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핵우산이 공고하다고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담긴 액션 플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특별취재팀=유지혜·강태화·정영교·정진우·박현주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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