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국제유가 100달러 위협…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된다

2023. 9. 2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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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감산으로 유가 30% 올라
내년까지 고유가 계속될 가능성
FOMC 내년까지 긴축정책 예고
고물가·경기둔화·환율까지 악화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여름 폭염에 지친 우리를 보듬어줄 넉넉한 한가위가 되면 좋으련만 솟구쳐 오르는 물가에 걱정이 많다. 작년 하반기부터 꺾이기 시작했던 물가가 지난달에 고개를 들더니 명절을 앞두고 대놓고 오르고 있다. 찜찜한 것은 이 불안한 물가의 뒤에 유가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 원유가격이 지금은 90달러를 넘나들고 있는데, 시장에서는 조만간 10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국에서는 중요한 것은 근원물가(core inflation·단기적인 공급 충격에 취약한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라며 물가는 안정세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머릿속의 분석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현실이다. 주유소의 기름값이 계속 오른다 싶으면 어느샌가 설렁탕이나 버스요금이나 모든 값이 다 오르는 것이 물가다. 더군다나 최근 물가 상승의 원인이 경기 둔화에서 촉발된 것이라고 하니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 상승과 경기 후퇴가 동시에 오는 현상)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퍼지고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의 근원 소비자물가(core CPI)는 7월과 같은 3.3% 오른 데 그쳤지만, 전체 소비자물가(headline CPI) 상승률은 3.4%로 그 전월(2.4%)보다 크게 확대됐다. 이렇게 이론물가와 피부물가가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다들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잡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딱 그즈음에 물가가 되튀어 오른 것이다. 이번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국제유가였기 때문이다.

석유류가 소비자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3%에 불과한 데다 지정학적인 이유로 가격 변동이 심하기에 중장기적인 물가 흐름을 파악할 때는 이를 제외해 보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석유는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석유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는 1970년대 오일 쇼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산유국이 유가를 대폭 올리는 바람에 전 세계는 물가가 폭등하고 경기는 곤두박질치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은 석유의존도를 낮추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지금까지도 유가 움직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유가가 지금 뛰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그 원인이 과거 오일 쇼크 때와 마찬가지로 산유국들의 인위적인 공급 축소에 따른 것이라고 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충격을 미연에 방지한다며 원유를 감산하자 유가가 한 달 사이에 30%나 올랐다. 이들 국가는 일단 올해 말까지만 감산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지정학 관점에서 이들의 행보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만일 고유가가 계속된다면 세계 경제는 정말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고 말 것이다.

긴축정책이 지속될 가능성 높아졌다

문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친다고 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재화의 공급 축소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고, 이번과 같이 국제적 카르텔에 의한 것일 경우 단기적으로 공급을 다시 늘릴 방법이 없다. 경기는 포기하고 그저 돈줄을 죄어 최종 물가를 잡는 것이 유일해 보이는데, 이는 세계 금융시장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긴축정책의 완화가 요원해졌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지난주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금리 인하는커녕 금년 말까지 금리를 한 차례 더 올릴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는가 하면, 점도표(미 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통해 내년도 기준금리 수준을 더 높여버렸다. 유럽중앙은행도 지난 14일에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올리며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이는 최근의 물가 움직임을 두고 세계 중앙은행들과 시장의 시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가를 책임지는 중앙은행들은 시장의 낙관적 견해(또는 희망)와는 달리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책 결정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중앙은행의 뜻대로 진행되기 십상인데, 유가가 갑자기 반락하지 않는 한 긴축정책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유가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기에 유가 상승에 따른 부작용이 더욱 크다. 당장 국제수지 악화와 환율 불안이 문제가 된다. 우리의 연간 원유수입량은 10억 배럴 정도 되므로 유가가 배럴당 10달러만 올라도 무역수지는 100억 달러나 악화된다. 거기에다 석유가격이 오르면 환율도 약세로 돌아서서 유가 상승의 악영향이 배가된다. 미국이 셰일 혁명에 힘입어 석유 수입국에서 벗어나면서, 국제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경제 사정이 호전되고 달러화도 덩달아 강세를 보인다. 덕분에 미국은 긴축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고, 우리와 같은 자원빈국의 통화는 약세(환율 상승)를 보이게 된다. 지난달 수입물가 상승률이 17개월 만에 최고치인 4.4%를 기록한 주된 이유다.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둔화하고, 국제수지는 악화되고 환율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면, 거기다가 금리도 외국에 비해 낮다고 한다면, 자금이 탈출할 호조건을 다 갖춘 셈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 경제가 단기적으로는 물론 장기적으로도 어려워질 것은 불문가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뭐라도 해야 할 텐데, 정부는 아마도 다음 달로 종료되는 유류세 경감 조치(휘발유 25%, 경유 37%)를 재연장하지 않을까 싶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물가 압력을 줄이면서도 경기 둔화를 막으려는 묘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세금을 계속 깎아주면 세수 감소로 인한 재정적자는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깊어지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말해보겠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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