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우의 시시각각]이재명 제치니 정청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여권에선 “그냥 부결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말이 돌았다. 민주당이 이재명 간판으로, 방탄 이미지로 총선을 치르는 게 여권에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체포안 가결로 이 대표가 수감되고 퇴출당한 뒤 제1야당이 환골탈태해 거듭나면 국민의힘엔 오히려 악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재 민주당 돌아가는 판세는 최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표결 당일 밤, 온건파 박광온 원내대표를 완력으로 몰아낸 건 ‘친명 일극체제’의 서막이었다. 당 투톱(당대표ㆍ원내대표)이 부재하자 이튿날 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은 건 강경파 정청래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가결표 의원을 겨냥해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되는 비정한 짓을 저질렀다.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면서 “윤석열 정부 정적 제거 공작에 놀아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에 비명계는 허겁지겁 ‘부결 인증’을 공개하거나 “당원들이 사퇴하라면 사퇴하겠다”(고민정 최고위원)며 꽁무니를 빼기 바빴다. 계파 대격돌이니 반란 운운은 언감생심이었다.
■
「 체포안 가결로 당 변화 예상 깨고
비명 숨죽인 채 친명색채 더 강화
구속돼도 '이재명 체제' 굳건할 듯
」
당 밖은 더 흉흉했다. 표결 직후 친야 커뮤니티엔 ‘수박 당도 측정법’이란 게 유포됐다. 체포안 표결이 무기명 투표라 가결표 색출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이를 추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든 것이다. ‘개딸’의 거듭된 요구에도 ▶공개적으로 부결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자 ▶부결 여부를 묻는 문자ㆍ전화에 답변하지 않은 자를 우선 추리고, 이 대표 단식 중에 ▶농성장을 방문하지 않은 자를 포함하면서, ▶지난 7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동참한 자(31명) ▶검사 탄핵소추안 발의에 불참한 자(62명) 등 공식 수치를 취합한 것이다. 지표 중 4개 이상 해당하는 현역 의원은 ‘수박 당도 4 혹은 5’로 측정돼 가결 확실로, ‘당도 1ㆍ2’는 가결 의심으로 분류된다. 단지 추정에 불과한 이 같은 ‘가결 리스트’가 내년 민주당 총선 공천을 좌우할 것이라고 한다.
이 대표 구속을 전제로 한 ‘옥중 공천’을 넘어, 이 대표 본인도 인천 계양을에 ‘옥중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비명계에겐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이 외려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 대표가 풀려나면 통 큰 정치인으로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 포용의 제스처를 취할 테지만, 이 대표가 수감돼 현재처럼 ‘극성 친명계’가 더 설치는 상황이 오면 비명계 공천 학살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이재명 제거’가 민주당 변화의 트리거가 되기는커녕, 이처럼 더 극렬한 ‘이재명 시즌2’로 변질되는 건 왜일까.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현재의 윤석열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특히 이 대표 단식 농성장에서 큰절을 올린 여성을 떠올려 보라. ‘이재명교(敎)’에 교화된 신도(개딸)에게 윤석열 정부는 ‘지옥불’인 것이다. 그런 엄혹한 현실에서 내 편의 작은 허물을 들추다니, 그건 용서될 수 없는 반역이다. 혹여 윤 대통령이 이 같은 개딸 정서를 간파하고 강경 기조를 여태껏 유지했던 것이라면, 가히 정치 9단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대통령 탄핵-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은 이듬해 지방선거에서도 2대14(광역단체장)로 참패했다. 우파 진영에선 그게 바닥이라고 여겼다. 아니었다. 지하는 더 깊었다. 당명만 바꾸었을 뿐 황교안 대표가 들어서면서 우파 성향은 더 뚜렷해졌고, 그 결과는 2020년 총선에서 역대급 패배였다. 하물며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고, 168석이나 가진 거대 야당이 스스로 혁신한다?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다. ‘이재명 체제’는 어떤 우여곡절에도 내년 총선까지 갈 것이다. 지하실로 들어서기엔 아직 빛이 환하다.
최민우 정치부장
Copyright©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모든 게 제 불찰…국민께 진심으로 사과" | 중앙일보
- 5일 내리 쉬었다고 돈도 준다…현대차 막강 복지혜택 40개 | 중앙일보
- "남편, 돈 대신 제주땅 받아와"…그 교사 120억 날린 사연 | 중앙일보
- 일주일째 마약 투약한 커플…여친 자진신고했다 덜미, 무슨 일 | 중앙일보
- 비 내리는 새벽 '딩동'…어르신 울컥하게 한 우유 배달원 정체 | 중앙일보
- "저러니까 진거다" 라켓 박살내고 악수 무시한 권순우에 경악 | 중앙일보
- "혐오감 든다" 당내서도 한탄…민낯 드러낸 '이재명의 민주당' | 중앙일보
- 젤렌스키 독한 입, 바이든도 혀찼다…영부인 "대선 안 나갈 수도" | 중앙일보
- 비, 85억 부동산 사기 혐의 고소당했다…"연예인 흠집내기" | 중앙일보
- 41세 여성 시신 물고 다녔다…미 충격 빠뜨린 4m 거대 악어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