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한가위 극장가, 못다 푼 팬데믹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이번 주 극장가에 한국영화 세 편이 동시에 개봉한다. 개인적으로 저마다 궁금한 영화라서 이번 연휴는 평소보다 자주 극장 나들이를 할 것 같다.
그중 김지운 감독, 송강호 주연의 ‘거미집’은 검열의 칼날이 엄연히 존재하던 1970년대 영화 촬영 현장이 배경인 블랙 코미디라는데, 올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직후부터 전모가 궁금했다. 강제규 감독, 임시완·하정우 주연의 ‘1947 보스톤’ 역시 제작 소식은 진작부터 들려온 영화인데, 스크린에 다뤄진 적 없는 소재의 실화를 어떻게 완성했을지 궁금하다. 사전 예매율에서 앞서고 있는 김성식 감독, 강동원 주연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신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 명절 대목 흥행을 겨냥해 등판하는 점에서도 그 반향이 궁금하다.
물론 흥행의 상식으로 보면,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이 여럿인 게 좋을 리는 없다. 올여름 극장가는 굵직한 한국영화 네 편이 연이어 개봉했다가 제작비 회수는커녕 흥행에 무참히 실패한 경우도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나갔어도 극장가 전체 관객 수는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여름은 한국만 아니라 할리우드도 대작을 쏟아내는 대목이다.
반면 추석 연휴는 전통적으로 한국영화가 강세를 보여왔다. 극장가가 크게 위축된 팬데믹 시기에는 안방극장에서 굵직한 화제작이 나왔다. 재작년 추석 넷플릭스가 공개한 황동혁 감독의 시리즈 ‘오징어 게임’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여러 한국 콘텐트가 해외 OTT에서 각국 이용자의 주목을 받는 큰 물꼬를 텄다.
지난해 추석에는 극장가에서 ‘공조2: 인터내셔널’ 이 흥행 독주를 벌이며 7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는데, 넷플릭스가 공개한 윤종빈 감독의 시리즈 ‘수리남’ 역시 다양한 화제를 낳았다. 팬데믹 시기 한층 대중화된 OTT 이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관객 혹은 이용자의 시간과 비용을 두고 경쟁하는 건, 같은 날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끼리만이 아니다.
한국영화계는 팬데믹이 안겨준 또 다른 짐도 짊어지고 있다. 팬데믹 시기에도 영화 제작이 이어진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관객 드문 극장가에서 개봉을 미룬 영화가 한두 편이 아니다. 그 규모는 최근 민관 합동으로 운영된 ‘한국영화 재도약 정책 실무 협의체’가 약 110편에 달하는 미개봉 영화의 극장 개봉촉진을 해결 과제로 꼽고 마중물 마련 방안에 나선 데서도 드러난다. 산업이 정상화되려면 이런 신작의 개봉과 유통 역시 정상화되어야 한다.
올해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한결 길다. 개별 작품의 성패는 나뉠 테지만, 추석 극장가 상차림이 팬데믹 이후 모처럼 푸짐하고 상대적으로 새로워 보인다. 물론 가장 큰 볼거리는 그리운 얼굴들과의 만남, 그리고 한가위 보름달일 테지만 말이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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