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치료와 인권 사이

김유나 2023. 9. 25.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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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나 사회부 차장

정신질환자 '사법입원제'
검토… 퇴원 이후 관리 위한
정책설계와 예산지원도 필요

조현병 환자인 50대 A씨는 별다른 직업 없이 나이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주변 사람과의 왕래는 끊어졌고, 다른 형제들이 있지만, 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했다. 온종일 집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다가 가끔 집 앞 골목으로 나와 담배를 태우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주변과 단절된 A씨는 조현병 치료를 하지 않았고, 공격 성향도 강해졌다. 담뱃불을 제대로 끄지 않고 꽁초를 버리는 A씨를 향해 주민들이 항의하면서 갈등도 깊어졌다. 항의하면 A씨가 욕설을 하는 식이었다. 이 동네는 이전에도 좁은 골목에 불이 난 적이 있어서 주민들의 불안이 큰 상태라고 했다. 동주민센터에 주민들의 민원이 반복됐고, 경찰 신고로도 이어졌다.

A씨는 당장 사회에서 격리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일까. 최근 정신질환자들이 치료를 임의로 중단하면서 저지른 강력범죄를 떠올리면 격리가 필요해 보인다. 혹시라도 큰불을 내거나 공격 성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나 주민들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지만 당장은 불을 냈거나 이웃을 때리는 등 직접적인 위협 행동이 드러나지 않은 A씨를 강제입원(행정입원)시킬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만약 담뱃불이 골목을 태웠다면 결론을 내리기 간단하겠지만 아직 발생하지 않은 위험으로 예단하는 건 어려운 문제다. 특히 인권침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A씨는 기자가 이달 초 찾은 광주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열린 주간회의 때 공유된 사례자였다. 센터에서는 매주 월요일 행정기관, 의료기관 등에서 의뢰된 정신건강 사례자를 두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머리를 맞댄다. 김성완 센터장(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과 전 직원이 회의하는데, A씨 사례처럼 신고 당시 상황과 이후 센터 직원들이 찾아가 당사자, 가족 면담을 통해 파악한 내용도 공유한다.

A씨 외에 사례자들의 상황을 일일이 공개하긴 어렵지만 센터 관계자들은 혹시 모를 위험성과 치료인권 사이에서 30여명의 사례자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김 센터장은 A씨를 두고는 A씨 어머니를 설득할 것을 권했다. 그는 “입원이냐, 아니냐만 생각할 게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통해 주사를 맞고 약을 먹든 치료를 해야 위험성이 줄어들 수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례마다 자해·타해 위험성이 명확한지 점검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다. 사례자 중에서는 증상이 명확한데도 치료 경험이 없거나 중단한 이들도 있었다. 특히 중년의 조현병 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조현병은 10대 후반부터 30대 초에 발병하는데, 초기 약물 등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으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동기 범죄가 발생하면서 국민 불안이 커지자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치료뿐 아니라 예방과 조기 개입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법원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의 경우 입원하도록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현재도 전체 입원의 35% 정도는 본인의 의사가 아닌 보호자(2명 이상, 전문의 2명 동의)나 행정기관에 의해 이뤄진다. 하지만 가족이 직접 입원을 의뢰하는 일은 쉽지 않다. 행정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판사가 직접 대면한 뒤 심사해 강제 입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신건강 전문가들도 적극적 치료 대책을 환영하고 있다. 잠재 위험성이 보이지만 치료를 강제하기 어려웠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법 입원 그 이후다. 퇴원 이후 이들이 지역사회로 돌아가 꾸준히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연계가 부족하다. 의료기관에서도 별도의 수가(진료비) 지원이 없다 보니 센터와 같은 곳으로의 연계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언했으니 이제는 촘촘한 정책 설계와 예산 지원으로 뒷받침해야 할 때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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