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컷칼럼] 통계 조작과 '그들만의 나라'

이상렬 입력 2023. 9. 24. 23:00 수정 2023. 9. 25.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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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감정원(한국부동산원)의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

감사원의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사건’ 중간 감사결과에서 충격적인 것은 부동산원 직원들이 전한 생생한 압력의 멘트들이다. 위 발언은 2019년 7월 초 국토부 간부가 부동산원 직원을 불러 한 말이다. ‘협조’는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실제보다 낮추라는 것이었다. 주무 부처 관료의 위협이 부동산원 직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 부동산원 직원들 외압 기록 남겨
국정 성과 위해 수치 조작 의혹
통계조작은 나라 망치는 지름길

사건의 본질은 그런 얘기가 실제로 오갔느냐는 여부, 그래서 통계가 달라졌느냐는 것이다. 감사 결과에는 청와대와 국토부에 시달린 부동산원이 ‘2019년 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총 70주간 조사 없이 임의의 예측치를 주중치로 산정하였고’라는 대목이 있다. 조사도 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임의로 입력했다는 것이다.
문 정부 참여 인사들은 이번 감사를 ‘감사 조작’ ‘정치쇼’라고 비난한다. 감사가 조작됐다면 그런 압력과 통계치 조작이 없었음을 해명하고 입증하면 될 것이다.

문 정부 경제정책은 집값 안정과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핵심이었다. 27번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는 동안 집값은 잡히지 않고 계속 올랐다. 근로자 소득을 올려 성장을 꾀한다는 ‘소주성’은 2018년에만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했지만 고용과 분배는 오히려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상적인 정부에선 이 정도 상황이면 정책 기조를 돌아보고 궤도를 수정한다. 그 판단 근거가 되는 것이 국가 통계다. 문 정부는 대신 집값 상승률을 낮추거나 소득 지표 산정 방식을 변경하는 등 통계치를 바꿨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다.

통계 조작이 위험한 것은 현실 인식을 왜곡해 세상을 엉뚱한 곳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부동산원 통계에서 문 정부 5년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19.5%였다. 하지만 KB국민은행 조사에선 62.2%였다. 부동산 대란의 핵심 원인은 공급 부족과 불안 심리였다. 그러나 문 정부는 수요 억제에 골몰했다. 세금 인상, 대출 제한, 재건축 규제 등을 쏟아냈다. 규제가 가수요를 폭발시켰고, 집값은 폭등했다.

소주성은 최저임금이 급상승한 2018년 초부터 바로 문제를 일으켰다. 취업자 증가 폭이 둔화하더니 그해 8월 3000명으로 떨어지는 고용 참사가 벌어졌다. 1분기 빈부 격차는 통계 작성 이래 최악으로 나타났다(소득 5분위 배율 5.95배).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2018년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 문 정부는 다음 해에도 최저임금을 10.9% 올렸고, 산업 현장은 더 얼어붙었다.

3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열린 2018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감사원 감사 결과는 문 정권에 대해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국민의 실제 삶보다 통계 분칠을 해서라도 자신들이 공약한 세상(집값 안정과 소주성)이 구현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인가. 그러고도 민주 정부라고 할 수 있나. 통계 조작은 문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 아래 진행된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은 모른 채 진행된 청와대 참모와 장관의 비뚤어진 충정이었나.

통계 조작이 나라를 망친 사례는 많다.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기와 구제금융도 재정적자 통계 조작에서 비롯됐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통계 조작도 악명 높다. 옛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딴 세상 얘기로 흘려넘길 일이 아니다. 잘못된 통계는 틀린 정책을 낳고 나라 경제를 골병들게 한다. 부동산 대란 속에 치솟은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소주성은 고용 시장을 일그러뜨렸다. 문 전 대통령은 감사결과가 나오자 “문재인 정부 동안 고용률과 청년 고용률은 사상 최고였다”며 한 연구소의 보고서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그가 언급한 고용률에는 소주성의 후유증으로 급증한 초단시간 일자리와 세금으로 만든 고령자 공공 일자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자랑하기엔 민망한 일자리들이다.

글=이상렬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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