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박근혜…전임 대통령의 영향력은 [신율의 정치 읽기]
문재인 전 대통령 영향력 발휘 쉽지 않아
윤석열-박근혜 회동, 핵심 지지층 묶을 듯
퇴임한 대통령이 현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 그것도 드물지 않게 언급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낯선 모습이다. 우리에게만 낯선 것은 아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나라 중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는 프랑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대통령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도 전임 대통령이 현재 ‘상황’에 대해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우리는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법적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 거의 정치적 ‘관습화’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현 정권이 전 정권에 대해 갖가지 수사를 벌이는 현실에 불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적 현안에 대한 입장을 자주 언급한다는 분석이다.
문 전 대통령처럼 정치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정치판에 다시금 소환되는 대통령이 또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하면서 이른바 ‘보수 빅텐트론’이 불거졌는데, 이는 박 전 대통령을 다시금 선거판에 소환하는 모양새가 됐다.
전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지난 9월 8일 공개된 한국갤럽 정례여론조사(9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14.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중 이재명 대표를 장래 정치 지도자로 꼽은 응답자는 무려 45%에 달했다. 반면, 이낙연 전 총리를 꼽은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 이는 이재명 대표 체제가 더불어민주당에 확실하게 착근(着根)했음을 의미한다. 이제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임 대통령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떨까?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의 마지막 ‘지역 맹주’다. 지역 맹주란 특정 지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거나, 특정 지역과 관련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 인물을 뜻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후자에 속한다. 지난 지방선거 당시 박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시장에 출마하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의 TK에 대한 실제적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박 전 대통령 영향력과 상징성의 분리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권력은 그 속성상 나눌 수 없다. 대통령은 지역 맹주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영향력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킬 수 있다. 둘째, 탄핵당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고 탄핵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갖는 상징성마저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정치에서는 영향력이 있어야만 ‘필요성’이 창출되는 것은 아니다. 상징성도 얼마든지 정치적 필요성을 창출할 수 있다. 이번 김기현 대표의 박근혜 전 대통령 방문은 그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와 박 전 대통령 회동 자체가 독립적인 정치적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 김기현 대표가 여당 대표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존재하는 여당의 대표는 아무래도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금 회동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일단 두 사람 회동은 ‘역사적 화해’와 ‘역사 재해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문재인 정권 아래서 국정농단 사건 수사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당시 피의자 신분이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보수층에는 역사적 화해와 재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즉,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뭔가 찜찜하게 생각했던 보수층 마음을 정리해줄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때 보수층은 역사에 빚졌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이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 회동의 두 번째 의미는 영향력과 상징성의 결합이다. 현직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상징성이 더해지면, 정치적 파급 효과는 상당할 테다.
다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측면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층에 어필할 수 있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는 단어 구사와 최근 불거진 역사 이념 논쟁을 보면, 윤 대통령은 보수층에 강력히 어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보로는 중도층 지지를 이끌어낼 수 없다. 당연히 계속 이런 행보를 보일 수도 없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도층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지금보다 ‘가운데’로 옮겨져야 한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9월 15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여론조사(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 14.6%,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중도층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여권이 민주당을 따돌렸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앞섰지만, 인천·경기에서는 민주당에 뒤처졌다. 이런 상황을 봐도 윤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는 중도로 가야 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윤 대통령이 보수정치 세력 적통을 이어받은 인물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적 정치 행보를 보일 경우, 자칫 핵심 지지층 일부가 떠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보수정치 적통을 잇는 상징적 인물의 적극적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보수의 상징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핵심 지지층을 묶어둘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회동은 선거 승리를 위해 필수적이다. 실제 두 사람 회동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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