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리뷰] ‘거미집’ 욕망과 광기 사이의 웃픈 줄타기

정진영 2023. 9. 2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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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그 욕망이 이토록 웃프다 못해 잔혹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겠지만.

무언가를 실현하고자 하는 마음은 큰데 장애물이 많을 때 욕망은 광기가 되곤 한다. 영화 ‘거미집’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점차 광기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인간 내면을 찌르는 통찰력과 그것을 구현하는 연출력이 발군이다.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되리라 믿는 김열(송강호) 감독의 지독한 집착은 영화를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 그 자체로 보이기도 해 웃기면서도 슬프다. 어떤 사랑은 기괴해 보이기도 하는 법이다. ‘사랑은 미친 짓’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에서 김열 감독은 데뷔작 이후 이렇다 할 호평을 받는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 하고 ‘치정극 전문’이란 딱지를 안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촬영을 모두 끝낸 영화 ‘거미집’에 대한 꿈을 꾸고 영감을 받는다.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긴다.

김 감독은 곧바로 촬영을 재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세트장 철거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이틀. 배우들은 바뀐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고, 1970년대 검열 당국은 영화의 결말을 바꾸는 걸 용납해주지 않는다. 오로지 영화 제작사의 후계자이자 재정 담당인 신미도(전여빈)만이 김열 감독의 새로운 영감을 지지한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신미도는 적극적으로 김열 감독을 돕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여러 차례 두게 된다. 세트장 안에 갇힌 배우들은 미치기 일보 직전. 저마다 감독을 찾아와 불만을 토로한다. 이런 환장할 상황들이 영화 곳곳에서 웃음을 유발한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 보면 순간 섬뜩해진다. 어떠한 목표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집착이 되고, 그것이 광기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주 리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광기와 집착이 영화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이해하기에 마냥 김 감독을 조롱할 수도 없다. 꿈과 욕망, 사랑과 집착, 이성과 광기 사이의 간극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거미집’은 영화 속 영화의 구성을 하고 있다. 김 감독이 찍는 영화 ‘거미집’의 장면들은 흑백으로 구성, 관객들이 착각 없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게 한다.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두 작품을 본 것만 같은 재미가 있다. 1970년대 작품이기에 영화 속에서 배우들이 구사하는 그 당시 대사톤 역시 보는 재미를 높인다. 배우들은 당시의 작품들을 보며 연기 및 대사톤을 연구했다고 한다.

하이라이트는 영화 말미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영화가 스크린에 올라갈 때 보이는 김열의 얼굴이다. 송강호는 ‘거미집’을 통해 왜 자신이 칸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대체불가한 배우인지를 또 한 번 입증했다.

오는 27일 개봉. 15세 관람가. 132분.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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