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에서 인류는 ‘노예’가 될 수밖에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14)
많은 학생들이 오스트리아학파와 신고전학파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과 불개입을 기준으로 케인스학파와 신고전학파가 대립하는 구도라는 이원론적 사고 때문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펼친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학파는 신고전학파와 같다고 착각한다.
오스트리아학파와 하이에크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류 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 차이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영국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 정의에 따르면 주류 경제학은 ‘목적과 한정된 수단들 사이의 관계에 있어 인간 행태를 연구하는 과학’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인간 행태(미시)를 중심으로 경제 상황을 분석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 분석에 있어 통계를 기반으로 한 연역 사고를 통해 가설을 도출하고 검증한다. 즉 통계적 검증을 통한 경제 현상의 일반적 원칙의 확인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고전학파, 신고전학파, 케인스학파 모두 주류 경제학파로 간주한다. 간단하게 말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고 해석해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반해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주장한다. 개별 경제 주체들의 가치 판단과 합목적성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들은 경제 현상의 과학적 예측은 어렵고 경제학과 사회과학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무의미해진다. 그러므로 오스트리아학파는 자유방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면서 미국 경제는 위기를 맞았다. 1933년 집권한 루스벨트 행정부는 뉴딜 정책을 개시했다. 뉴딜 정책의 핵심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시설 투자와 가격 통제, 생산량 쿼터제, 최저임금제 도입, 노조권 강화 등의 도입이다. 실업률을 낮추고 절대 빈곤층을 구제하려는 목적의 정책이었다. 동시에 연방정부에 임금과 가격 제한 정책과 생산 쿼터제 등 국가적 자원 배분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시장에 대한 정부 입김이 극대화됐다.
파시즘과 사회주의의 대두에 경고를 날리다
미국만이 아니라 1930년대 세계 각국 정부는 경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대중 또한 이를 당연하다고 느꼈다.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 여파로 자유경제 국가들은 기나긴 경기 침체에 돌입했다. 이들이 고통받는 동안 공산주의 소련과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는 계획경제를 기반으로 빠른 성장을 성공적으로 일궈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계획경제의 강점을 인지하게 됐다. 공산주의나 파시즘을 추구하던 전체주의 국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생산량을 계획하며 자원 배분을 조정했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곧 빠른 성장을 이루는 열쇠라고 자유주의 국가들은 생각했다.
전체주의의 어두운 점들은 선전과 탄압에 가려진 상황에서, 시장의 무질서 대신 정부의 계획적인 정책 수립은 마치 대공황을 타파할 해결책처럼 보였다. 이 때문에, 이후 영국 보수당 수상이 되는 해럴드 맥밀런조차 저서 ‘중도의 길’에서 자본주의 존속을 위해 사회주의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특히나 파시즘은 서구 세계에서 이미지가 좋았다.
영국 경제학자이자 하원의원인 윌리엄 베버리지는 1932년 히틀러 집권이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에 대한 반박으로 독일 파시즘은 사회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를 중산층으로 바꿨을 뿐이라는 내용의 메모를 보냈다. 이 메모가 이후 ‘노예의 길’ 초고 역할을 하게 된다.
하이에크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인류를 ‘노예의 길’로 인도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개인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에 반해 사회주의는 ‘공동선’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국가가 개인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공동선이 추구하는 가치는 사회마다 다르다. 전 국민의 효용 극대화가 될 수도, 평등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에서의 공동선은 ‘경제적 평등’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파시즘에서의 공동선은 ‘독일의 영광’이었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시장경제에서 경제 주체들은 자유로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참여한다. 모든 경제 참여자로 이뤄진 집단지성이 실시간으로 시장을 확인하고 그에 반응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집단지성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즉시 반응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지켜보는 눈이 많고 스스로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획경제 체제는 국가가 시장을 확인하고 시장에 반응하며 시장을 조정해야 한다. 이런 경제 체제가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의사 결정의 독점권을 가진 국가가 광범위하게 항상 변화하는 시장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한다. 하이에크는 “국가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계획경제 체제는 효율적일 수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져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 간 경쟁을 저해하거나 가격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다. 이때 국가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돈이 없어 식량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빵 시장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하면 빵의 공급은 시장에서 원하는 양(균형)보다 적어질 것이다. 빵의 공급이 적으면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빵을 사지 못할 것이고, 어떤 형식으로든 부족한 빵을 나눌 방법(배급제)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국가는 빵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빵 생산자에게 빵의 생산을 강제로 명령하게 된다. 물론 원자재 또한 부족한 빵 생산량에 맞춰져 있어 수급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원자재에도 가격 제한이 이뤄질 수 있다. 이렇듯 경제의 자원 배분과 생산 요소를 국가가 통제하고 명령하기 시작하면 자유가 박탈당하고 연쇄적으로 비효율이 발생한다.
하이에크는 이것이 바로 독일의 사회주의 정책이 파시즘으로 이어진 이유라고 말한다. 나치가 집권한 독일은 아우토반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냈고, 이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상승하는 물가를 통제하기 위해 독일 정부는 가격상한제를 실시했고, 이는 공급 부족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럽게 배급제가 실시됐으며, 부족한 공급을 메우기 위해 대기업 중심으로 생산 계획이 하달됐고, 이들 대기업을 위한 노동자들이 배치됐다. 그리고 반발을 잠재우고 계획경제의 비효율을 감추기 위해 선전 선동과 반대파 숙청이 이뤄졌고, 이는 개인을 완전히 수단 취급하는 전체주의 정부의 대두로 이어진다.
하이에크는 국가의 경제 개입은 필연적으로 개인 자유를 제한하는 독재 국가를 탄생시키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나치와 같은 파시즘으로 변모하는 것이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안으로 파시즘이 탄생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를 항상 지옥으로 만들어온 것은 인간이 그것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애쓴 결과였다”는 독일 시인의 풍자를 인용하며 사회주의자들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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