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타그램] 도시의 지붕과 사진의 바깥
철제 계단은 도시의 상징인 건물의 위엄에 비해 초라했다. 옥외의 돔 지붕으로 통하는 계단 난간의 파란 페인트칠은 사람들 손닿는 곳부터 벗겨져 까맣게 윤이 났다. 사람의 무게 정도는 견딜 만해 보이지만 한 명만 다닐 수 있는 좁은 계단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올라가는 사람들도 내려가는 사람들도 줄을 서서 마주 오는 행렬이 끊기기를 기다려야 했다. 난간을 붙잡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성당의 커다란 돔 주위로 좀 더 높고 두꺼운 철제 난간이 둘러쳐 있었고 그 안쪽이 말하자면 전망대다. 옥외 공간 또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어 지나치는 사람들과 어깨가 닿았고, 서너 걸음마다 기다렸다 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도시의 가장 높은 건물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교향곡처럼 장황하고 재즈처럼 울퉁불퉁했다. 오래된 제각각의 지붕들은 건물들의 개별적 과거와 그곳을 살다 간 사람들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지평선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진 지붕들의 행렬은 크고 작은 너울이 밀려오는 바다 같았다. 그 너머 시야의 끝에는 화물선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크레인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거기가 진짜 바다였다. 발트해는 지붕의 바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돔을 둘러싸고 있는 청동색 철 지붕 모서리 근처에 젊은 남녀가 서로 몸을 기대앉아 있었다. 남자는 멀리 바다 쪽을 가리키며 원대한 미래를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붕에 가 앉기 위해서는 어른 가슴 높이의 난간을 넘어야 했고, 비스듬한 지붕 끝에는 별다른 보호 장치가 없었다. 이 도시에서 지붕 위에 올라간 남녀들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기서는 애정 고백을 지붕에 올라가 하는 게 유행인지, 절박한 이야기는 압도적인 풍경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지, 젊은이들은 수시로 지붕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려다보이는 5~6층 높이의 오래된 직사각형 건물 옥상은 카페이거나 식당인 듯했다. 옥상을 실내와 실외로 나누는 기다란 접이식 유리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안팎에 이 삼십 명의 남녀들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그들 표정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웃고 떠들고 일부는 취해 있다는 것을 알 만한 거리였다. 키 큰 나무 화분들이 있는 마당에는 아이보리색 파라솔 대여섯 개가 늦은 오후의 햇빛을 받아 도드라져 보였다.
하얀 식탁보를 덮은 둥근 테이블에는 하얀 3단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풍성하고 긴 아이보리 색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유리문을 지나 밖의 사람들에 섞여들었다. 검정과 회색 계열 정장을 입은 남자들과 와인색 원피스 드레스와 겨자색 투피스를 입은 여자들은 몸놀림이 컸다. 이미 취한 사람들의 과장된 몸짓이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리드하고 있었고, 원래 재즈였을 성싶은 음악은 바람과 거리의 소음에 대부분 묻혀 베이스와 트럼펫 소리만 간간히 건너왔다.
검은 정장의 한 남자가 안으로부터 걸어 나와 옥상 구석으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그가 오늘 결혼한 남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정장은 살짝 커서 헐렁했고 걸음은 물기에 젖은 듯 처져 보였다. 안에서는 보이지 않고 바깥에서도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에 서너 명이 들어서 담배라도 피울 만한 공간이 보였다. 옥상을 둘러서는 1미터 남짓 되는 높이의 콘크리트 난간이 있다. 구석에 잠시 서 있던 남자는 흔들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쓰며 난간 위로 올라섰다. 난간 위는 사람의 두 발 넓이 정도였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고는 담뱃갑을 허공에 던졌다. 담뱃갑은 멀리 날아가지 못했다. 그는 두 손으로 담배를 감싼 채 불을 붙이려 했지만 바람 때문에 담뱃불을 쉽게 붙이지 못하는 듯했다. 라이터를 두세 번 흔든 뒤 다시 불을 붙였다. 그는 앞뒤로 흐느적거리며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허공을 한참 올려다보던 그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 있는 곳을 잠시 바라본 뒤 허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힘을 쏟아 길게 아주 길게 담배를 빨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더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내장까지 토해버리고 싶은 듯 남자의 날숨은 길었다. 연기는 약한 바람에도 멀리 뻗지 못하고 흩어졌다.
음악이 멈춰 있었다. 카메라를 들었다.
지붕의 바다가 보였다.
사진의 바깥부터 먹구름이 유화(油畵)처럼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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