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개미·러브버그…글로벌화‧기후변화가 부른 ‘외래종’의 습격

김기환 2023. 9.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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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붉은 불개미가 발견돼 출입을 통제한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 독자 제공=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부산항 자성대부두 컨테이너 야적장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붉은 불개미 50여 마리가 나오면서다. 이곳에서 붉은 불개미가 나온 건 1년 만이다. 즉각 방역 관계자가 출동해 주변을 통제했다. 컨테이너 사이 발견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최대 100m까지 출입을 통제하고 약을 뿌렸다. 컨테이너 270여개는 소독을 거칠 때까지 발이 묶였다. 농림축산검역본부 관계자는 “붉은 불개미는 남미가 원산인 ‘세계 100대 악성 외래종’”이라며 “꼬리에 달린 침에 찔릴 경우 통증·가려움증이 나타날 수 있고, 심하면 현기증·호흡곤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류 인플루엔자(AI)나 구제역 같은 가축 전염병이 유행할 때 ‘소방수’로 뛰는 농림축산검역본부 등 방역 당국이 연중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외래종의 국내 출몰이 빈번해지면서다. 외래종은 원래 서식지를 벗어나 새 서식지에 정착한 생물을 말한다. 22일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한국에 들어온 외래종은 2009년 894종에서 2021년 2653종으로 연평균 16%씩 늘었다. 어류(855종)가 가장 많고 식물(778종), 양서류·파충류(363종), 곤충(211종), 포유류(201종) 순이다.

지난 13일엔 경남 창원의 한 주택가에 흰개미가 나타나 방역 조치를 했다. 발견된 건 단 1마리였지만 비상이 걸렸다. 흰개미가 세계적으로 그동안 방제에 성공한 적 없는 외래종이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원산인 흰개미는 안쪽부터 나무를 갉아먹어 목조 건축물이나 문화유산에 큰 피해를 준다. 조창욱 국립문화재연구원 연구원은 “여름·겨울의 뚜렷한 경계가 기후 온난화로 흐릿해지며 외래종이 쉽게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가정집 화분에 붙어있는 러브 버그. 연합뉴스

올여름엔 서울 은평구와 경기 고양 등 수도권 서북부를 중심으로 붉은등우단털파리(일명 러브 버그·Love bug)가 대거 출몰해 민원이 속출했다. 러브 버그는 성충이 된 뒤 암수가 함께 붙어 다니며 비행하거나 먹이를 먹는다. 밤에 여러 차례 긴 시간 짝짓기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벌레 2마리가 항상 붙어 있어 러브 버그란 별명이 붙었다. 해충은 아니지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외래종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목화나 감자·고구마, 블루베리도 외래종이다. 최근엔 톱날꽃게(부산청게)처럼 꽉 찬 속살과 맛으로 환영받으며 금어기까지 지정한 외래종도 있다. 문제는 흰개미같은 악성 침입 외래종으로 자연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을 위협하는 생물이다.

수명이 30년에 이르는 데다 천적이 없고 번식력이 높은 붉은귀거북, ‘호수의 포식자’ 불리는 배스(큰입우럭), 옥수수·콩·호박 등 작물에 달라붙어 생장을 방해해 ‘식물계 황소개구리’로 불리는 가시박 등은 이미 한국에 토착화한 침입 외래종으로 꼽힌다. 침입 외래종은 학술연구·교육·전시 등 목적으로 지방 환경청의 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 수입·사육·양도·양수 등이 금지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외래종은 글로벌 이슈다.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에 따르면 외래종에 따른 손실이 연간 530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하고, 기후 온난화가 확산하며 외래종의 피해가 늘었다. 최근엔 반려동물 시장 확대도 영향을 미쳤다.

사전 검역 강화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인력·시스템에 한계가 있다. 이미 외래종의 침입이 ‘임계점’을 넘어선 만큼 토종 동식물의 면역력을 키워 국내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토종이 제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는 곳에 쉽사리 뿌리내릴 수 있는 외래종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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