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현주 기자]
▲ "오토라는 남자" "오토라는 남자" 영화 포스터. |
ⓒ 소니픽처스코리아 |
안 늙을 줄 알았다. '동안'이란 소리도 꽤 들었고, 학생 때나 지금이나 옷 입는 스타일도 그다지 바뀐 게 없고, 요즘 세대의 취향도 잘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부모님들이 건재하시니 그 앞에서는 여전히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이로 치면 반백년, 서울로 올라와 산 지도 이미 30년, 자식도 다 커서 군대까지 갔는데도 가끔 내 나이를 자각할 때는 놀라곤 한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의 주름을 보면 낯설다. 딱히 큰 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몸은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몸도 얼굴도 오래 사용한 티를 숨기지 않는다. 고령화 사회라고, 120세 보장 보험이 나왔다고, 노노(老老)봉양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 딴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러는 사이 늙음은 이미 내 몸 여기저기 스며들어 있다.
몸뿐만이 아니다. 두어 달 전에 시아버지께서 급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심장마비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남편의 초등 동창 아버지도 세상을 떴다. 역시 심장마비였다. 여기저기서 부음이 들리고 장례식에 가야 할 일이 늘어난다. 결혼, 백일, 돌잔치, 얘들 대학 합격 소식 등등이 들리더니 이제 초상 치르는 소식을 들을 차례가 온 것일까?
인생의 시계는 어김없이 착착 돌아가고 있다. 지난봄, 오랜만에 원피스를 한 벌 마련했다. 무난하게 검은색으로 골랐다. 이런 일들을 예상하고 산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정말 잘 산 셈이 되었다. 이제 와 보니 얌전한 스타일을 골라 다행이었다. 나이를 먹으니 이 정도의 서글픈 선견지명은 생겼나 보다.
언제부터인가 지인들과 모임을 하면 주제가 무엇이든 결국은 노후 대책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다들 사는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은 공통적이다. 늙으신 부모님, 아직 책임져야 하는 자식들, 코앞에 닥쳐온 남편 퇴직, 연금, 세금 걱정 등. 수명은 길어졌다는데, 아직 남아 있는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 어디서 살아야 하는 것인가.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계속 앉아 있다 보면 행여 좋은 정보라도 들을까 싶어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귀를 쫑긋 세운다.
국가가 보장해 주지 못하는 노년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 되어 떨어진다. 경제적 상황에 따라 누군가는 실버타운으로 누구는 요양원으로 그리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은 독거노인으로 고독사하기까지 한다. 과거 농촌 사회에서는 마을이 곧 큰 가족이었고, 그 속에서 개인의 인생은 모든 단계가 공유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출산도, 육아도, 교육도, 결혼과 죽음까지 마을 전체의 일이었다.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부양하는 것이 당연했고, 우리 아이가 잘못한 일에 옆집 할아버지가 야단을 쳐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엄마가 없으면 옆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명절이 되면 아이들은 집집을 돌아다니며 세배를 다녔다. 맛있는 음식은 나누어 먹고 힘든 일은 서로 도왔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세상은 없다. 2018년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시 비율은 16.7%이지만, 전 인구의 91.8%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과거의 농촌 공동체는 이야기 속으로 사라졌다.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위에 언급한 추억들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교과서를 통해,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일 뿐이다. 극심하게 도시화된 사회 속에서 인간은 고립화되었다.
개인을 보호하고 품어 주었던 공동체의 울타리는 더 이상 없다. 지금의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없어, 때로는 직계 가족조차 믿을 수 없다.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뉴스가 점점 많아진다. 국가도, 공동체도, 가족도 의지할 수 없게 된 세상에서 나의 노년은 나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일 뿐이다. 다들 그 무게에 허덕이고 있다.
▲ 오토라는 남자 오토의 노년은 행복하다 |
ⓒ 소니픽처스코리아 |
따뜻한 영화다. 희망을 주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웃음을 지을 수만은 없었다. 영화와 현실과의 거리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가 사는 세상은 누구나, 특히 우리 나이라면 더욱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누구나 원하는, 그러나 결코 갈 수 없는 세상. 그래서 그의 세상은 판타지랜드이다. 노인들의 '네버랜드'다. 가슴이 따뜻한 영화를 보고도 마냥 빠져들 수만은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꿈을 꾸고 싶어한다. 꿈은 각박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꿈마저 꾸지 못한다면 그 현실은 얼마나 괴로운 것일까? 그래서 <오토라는 남자>가 주는 온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언젠가는 가고 싶은 이상향, 계속 그리다 보면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저 멀리 어떤 곳. 그곳에서 오토는 행복했다. 우리도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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