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순대 간(肝)을 먹다가 문득…

2023. 9. 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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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순댓국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얼마 전 아침 순댓국이 당겼다. 친구에게 ‘급벙’을 쳤다. 저녁 약속을 거의 하지 않지만 몸이 순댓국을 간절히 원했다.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오후 작업을 하고 친구를 OOO 순대국에서 만났다. 12000원으로 오른 순댓국 ‘특’을 주문해 막 한 숟갈 뜨려는데 식당 주인이 서비스라며 간(肝)이 담긴 접시를 내왔다. 음식값을 올린 데 대한 미안함의 표시 같았다. 간을 고추소금에 찍어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아서일까. 혀에 착착 달라붙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순댓국을 매월 한 번꼴로 먹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순댓국을 포장해 집에서 끓여 먹기도 한다. 순댓국집에서 순대 한 접시를 시키면 간이 몇 점씩 나온다. 돼지간은 퍽퍽하고 밀도가 거칠지만 고소한 맛이 좋다.

순대간. [사진= 조성관 작가]

순대 간을 먹는데 종종 찾는 백화점 식당가의 회전초밥집이 떠올랐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초밥이 각각 다르다. 비린 맛을 즐기는 나는 등푸른생선을 좋아한다. 초밥집에 가면 먼저 주문하는 게 고등어초밥이다. 다음이 절인청어초밥이나 전갱이초밥을 찾는다. 일단 등푸른생선부터 주문하고 다른 흰살생선을 고른다.

회전초밥집은 계절별로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다. 언제부턴가 아귀간을 활용한 초밥이 두 종류 등장했다. 단새우아귀간감태와 아귀간군함.

감태(甘苔)는 첫입에 쓴맛이 나면서 살짝 갯내음도 머금고 있다. 탱글탱글 단맛이 나는 새우와 느끼한 아귀간을 짭조름한 감태로 싸서 먹으니 일품이었다. 아귀간 군함 역시 감태로 퍽퍽한 느끼함을 잡아 특유의 고소한 맛이 살아났다.

작년 가을쯤일 것 같다. 아귀간 군함을 처음 맛보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아구찜에도 종종 큼지막한 아귀간이 섞여 나올 때가 있지만 양념에 버무려진 아귀간에서는 아귀간 특유의 맛을 음미하기가 힘들다. 아귀간은 살짝 차갑게 해서 먹어야 한다.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아귀간 군함을 찍어 먹었을 때 입안에 맴도는 고소한 아귀간!

단새우아귀간감태 초밥. [사진= 조성관 작가]

점성질의 식감

아귀간은 일본어로 안키모(鮟肝)다. 안키모는 일식의 진미(眞味)로 통한다. 아귀간을 활용한 초밥은 일본에서 들어온 미식이다. 오래전부터 미식가들 사이에서 안키모가 인기였으나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이를 몰랐다. 안키모를 만드는 방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아귀간 덩어리를 먼저 소금으로 씻어낸다. 그다음 청주(사케)에다 헹군다. 핏줄을 제거하고 아귀를 으깨 쪄낸다. 그리고 둥그런 원형으로 만들어 굳힌다. 안키모를 잘라 접시에 놓으면 마치 생김새가 햄을 썰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아귀간의 매력은 점성(粘性)질 식감에 있다. 잇새로 파고드는 지방간의 느끼함과 뒷맛으로 남는 고소함.

가만, 내가 이런 비슷한 맛을 어디서 먹어봤더라.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귀간이 푸아그라맛과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바다 생선인 아귀간이 가금류의 거위 간과 맛이 비슷할까.

푸아그라는 최근까지만 해도 개비아, 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진미(眞味)에 꼽혔다. 그중 철갑상어 알인 캐비아는 위상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요즘 국내에서도 철갑상어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과거에 비해 흔한 식재료가 됐다.

푸아그라 요리. [사진= 위키피디아]

푸아그라(Foie gras)는 거위나 오리의 간으로 만든 식품이다. ‘푸아’는 간이고, ‘그라’는 지방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지방간이다. 건강검진에서 의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경고하는 ‘지방간’이다. 푸아그라는 고급 프랑스 식당에서 전채 요리나 메인으로 나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 먹기 시작한 푸아그라는 프랑스로 건너가 베르사이유 궁전 셰프들이 만들면서 고급 요리로 승격되었다.

프랑스는 푸아그라의 최대 생산국이면서 최대 소비국이다. 프랑스는 법령으로 푸아그라를 정의한다. ‘푸아그라는 가바쥐로 살찌운 거위나 오리의 간’이며 ‘푸아그라는 보호해야 할 프랑스의 문화이자 미식 유산’. 마치 바게트에 대한 법령을 보는 것 같다.

푸아그라는 가바쥐(gavage) 사육법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이 사육법으로 인해 동물 학대로 비난을 받는다. 가바쥐는 거위를 케이지에 가둬두고 강제로 먹이를 먹여 키우는 방법이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주둥이를 벌려 깔대기에 사료를 부어 먹이는 게 가바쥐다.(요즘 기준으로 동물복지에 반하는 사육법이다) 갇혀 있는 상태에서 먹기만 하니 살이 찌고 간이 비대해진다. 그런데 지방이 많이 낄수록 질 좋은 푸아그라로 대접받는다.

가바쥐 사육법은 고대 이집트가 원조다. 기원전 2500년 이집트인은 거위나 오리 같은 철새류가 집단이동을 하기 전 먹이를 최대한 먹어 몸집을 비대하게 키운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착안해 그들은 거위나 오리에게 강제로 먹이를 삼키게 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푸아그라를 얼마나 즐겼으면 공공건물의 바닥돌에까지 가바쥐 사육을 부조(浮彫)로 남겼을까.

고대 이집트의 가바쥐 사육법을 묘사한 부조. [사진= 위키피디아]

패스트리에 푸아그라를 넣으면…

푸아그라는 고대 이집트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 푸아그라 최대 생산지는 알자스 지역의 스트라스부르다. 스트라스부르의 명물이 스트라스 파이(Strasbourg pie)다. 패스트리에 푸아그라를 넣어 만든 빵이 ‘스트라스부르 파이’다. 유럽에서 ‘스트라스부르 파이’는 고급 베이커리로 통한다. 윌리엄 새커리의 대표작 ‘허영의 시장’부터 뮤지컬 ‘캣츠’에까지 문화예술에 ‘스트라스부르 파이’가 종종 등장하는 배경이다. 롱타임 스테디셀러 뮤지컬 ‘캣츠’에는 20여곡의 노래가 나온다. 그중 맨 마지막 노래가 ‘어드레싱 오브 캣츠(Ad-dressing of Cats)’. 우리말로 옮기면 ‘고양이에게 말 걸기’가 된다. T.S.엘리엇의 시에 곡을 붙였다.

“… Some little token of esteem

Is needed, like a dish of cream

(조그만 존경의 표시도 필요해.

이를테면 크림 한 접시 같은 것)

And you might now and then supply

Some caviar, or Strassburg pie

(때로는 내놓을 수도 있지.

캐비아 약간이나 스트라스부르 파이)

Some potted grouse or salmon paste

He’s sure to have his personal taste

(꿩고기 통조림이나 연어 페이스트를

분명 고양이마다 취향이 있을테니)

완벽한 각운(脚韻)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T.S. 엘리엇을 다시 보게 된다. 도도한 고양이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려면 최소한 캐비아나 스트라스부르 파이 정도를 갖다 바쳐야 되는구나. 웃음이 절로 나온다.

뮤지컬 '캣츠'의 한 장면. [사진= 위키피디아]

독수리가 쪼아먹는 간

인간의 장기(臟器) 중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게 간이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로 인해서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아틀라스, 에페메테우스, 헤스페로스 등의 형제로 나온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푸스 신들의 전용(專用)이던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다. 신들의 신인 제우스가 이런 프로메테우스에 분노한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프로메테우스에게 형벌을 내린다. 프로메테우스를 기둥에 결박시켜놓고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도록 하는 형벌. ‘프로메테우스의 간’이다. 이 형벌은 끝이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독수리가 낮 동안 쪼아먹지만 하룻밤만 지나면 간은 원상회복된다. 다시 독수리가 파먹고 다음날 간이 재생되고.

이 신화는 재생능력이 탁월한 간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현대의학에서 간이식 수술이 가능해진 게 바로 이러한 간의 재생능력 때문이다. 건강한 간의 한쪽을 떼어내 이식해도 공여자는 3개월이면 원래대로 회복한다.

내가 그리스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 형벌을 처음 접했을 때 제우스의 형벌이 가혹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간의 특성을 알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간은 자각증세가 없는 장기다.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그래서 간암은 증세가 나타나면 대부분이 손을 쓰기 힘든 말기다.

순대간과 아귀간 맛을 되새기다가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프로메테우스의 간까지 흘러가 버렸다. 푸아그라는 여전히 비싸지만 안키모는 가격 부담이 적다. 조만간 안키모와 푸아그라를 한 접시에 놓고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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