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북송]①중국 땅 밟자마자 납치…팔려간 세 모녀
탈북 직후 언니 납치…브로커, 모녀 팔아넘겨
"북송 뒤 살아돌아오자 쇠사슬 묶어놓고 매질"
中 탈북민들 인권침해 심각…"구출 노력 시급"
편집자주 - 23일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개막하면서 중국 내 탈북민은 '벼랑끝' 북송 위기에 내몰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경을 봉쇄했던 북한이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인적 교류를 재개하면 중국에 구금된 탈북민이 대거 북송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탈북민은 중국에서 인신매매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다, 북송 이후 구금과 고문, 처형 위험에 노출된다. 아시아경제는 탈북민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주목하고 북송을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역할을 모색했다.
24년이 걸렸다. 북한을 탈출한 세 모녀가 '그날의 기억'을 서로 털어놓는 데 걸린 시간이다. 싸늘한 칼바람을 뚫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넌 세 사람은 국경을 넘자마자 다시 지옥을 마주했다. 철들기 전부터 영양실조로 숨을 거둔 아버지를 지켜본 소녀는 중국으로 탈출한 뒤 납치와 성폭행, 인신매매라는 잔혹한 현실을 견뎌야 했다. 기구한 삶은 이들 모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도 중국에 있는 대다수의 탈북민이 처한 '현재진행형' 위기다.
목숨 건 탈북, 갑작스런 납치…세 모녀 덮친 지옥
탈북 과정을 담은 책 '열한 살의 유서' 작가 김은주씨(37)의 이야기다. 1999년 2월 어느 날, 새벽 어스름 속 김씨와 엄마, 두 살 터울의 언니는 눈보라를 뚫고 두만강으로 나섰다. 아버지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뒤 '꽃제비' 생활을 해오던 이들 모녀는 '굶어죽을 바엔 탈출이라도 시도해보자'는 심정으로 탈북을 결단했다. 얼어붙은 두만강은 걸음마다 쩡쩡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숨죽인 채 얼마를 걸었을까, 미처 얼지 않은 지류가 나타났고 차가운 물속에 몸을 던진 세 모녀는 국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산속에 숨어 젖은 옷을 말리던 세 사람은 날이 저물고 나서야 기슭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바로 그 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이 사납게 달려들었고 순식간에 언니를 낚아챘다. 끌려간 김씨의 언니는 무참히 성폭행을 당했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불이 켜진 집을 찾은 엄마도 조선족 남성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열세 살 소녀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었다. 세 모녀는 24년간 그날의 일을 서로에게 묻지도 털어놓지도 않았다.
김씨는 우여곡절 끝에 언니와 다시 만났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브로커가 이끈 세 모녀의 종착지는 인신매매. 김씨는 "중국은 '남아 선호사상'이 남아 있어 여아 출생률이 낮고, 시골 지역일수록 여자가 귀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탈북 이후 국경 지역을 떠도는 여성들을 납치하거나 식량으로 꼬드긴 뒤 결혼하지 못한 중국인 남성에게 팔아넘기는 인신매매가 횡행했던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녀는 2000위안, 우리 돈으로 고작 35만원에 팔려 갔다.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고 제 이름 석 자조차 쓰지 못하는 한족 남성과 결혼했다. 노예와 다름없는 삶이었다. 농사일을 돕는 일꾼이나 자녀를 낳아주는 도구처럼 여겨졌다. 브로커는 자매에게 학교도 다닐 수 있을 거라 꼬드겼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김씨는 "그럼에도 감사한 점은 우리가 흩어지지 않았던 것"이라며 "어린 나이에 홀로 여기저기 팔려 다닌 또래들도 많았다"고 했다.
"하루도 편히 잘 수 없었는데"…다시 끌려간 북한
김씨는 "중국 공안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매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며 "깜깜한 밤중에 불빛이 나타나거나 개가 짖기 시작하면, 일단 엄마와 언니의 손을 잡고 뒷산으로 도망치곤 했다"고 회상했다. 고된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세 모녀는 다시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렸다. 공안에 붙잡혀 북송된 것이다. 2002년 3월, 탈북 3년 만이었다. 그날따라 공안의 차량은 좁고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라이트도 켜지 않고 달려와 기습했고, 세 모녀를 연행했다.
힘든 경험을 차분하게 털어놓던 김씨는 막냇동생 이야기에 처음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세 모녀가 북송당한 것은 중국에서 태어난 남동생이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품 안에서 키운 동생이 애틋했지만, 그 존재를 입 밖에 꺼낼 순 없었다. 북한에선 40대를 넘겨 출산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인식이 만연했고, 중국인 남성의 아이라는 점도 김씨의 엄마에겐 비난의 두려움이 됐다. 한국으로 온 뒤 국가정보원 조사에서도 그 존재를 숨겼다고 한다.
변방대에 머물다 북송된 이들 모녀는 보위부에서 1차 조사를 받았다. 다시 노동단련대로 끌려가 조사를 받고, 감옥과 같은 도 집결소를 거쳐 교화소로 보내지는 순서였다. 불행 중 다행일까. 고향에는 이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고, 곧장 교화소로 가는 대신 집결소에 더 머물 수 있게 됐다. 아사자가 많다 보니 3년 정도 행적이 불명확한 경우 사망자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허술한 감시를 틈타 탈출을 시도했고, 다시 두만강을 넘는 데 성공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지만, 세 모녀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김씨는 "북송 과정에서 엄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겼지만, '다시 잘 살아보자' 하며 동생이 있는 집으로 향했다"며 "하지만 중국인 아빠와 형제들은 한겨울에 쇠사슬로 나무에 묶어놓고 우리를 매질했다"고 전했다. 가족이 아니라 '재산'을 뺏겼다고 여긴 것이다. 결국 한겨울에 맨발로 담장을 넘어 도망쳤고, 사선을 넘나든 끝에 2006년 9월 한국으로 오게 됐다.
"中, 인신매매 종착지…한국 정부, 구출 노력해야"
김씨의 사연은 비단 이들 모녀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의 탈북민은 중국에서 인신매매와 성 착취, 강제결혼 등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경제적 이유'에 따른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송된 이후에는 구금과 고문, 처형 등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중국 정부는 이마저도 부정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강제분리, 강제낙태, 영아살해 등 형태로 자녀에게 대물림된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로 3년 넘게 봉쇄했던 국경을 서서히 개방하고 있으며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인적 교류가 활발해질 경우 중국 내 탈북민이 대거 북송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근 유학생, 외교관 등 '보장된 신분'에 해당하는 북한 주민들이 본국으로 먼저 귀국한 바 있다. 김씨는 "북송만 피할 수 있다면 '돼지굴'이라도 간다는 심정일 것"이라며 "정부가 중국을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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