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아빠 육아휴직 9개월째... 이런 압박을 느낍니다

권진현 2023. 9. 2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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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육아휴직이 되지 않으려면 현실에 맞는 수당 절실

그룹 '육아삼쩜영'은 웹3.0에서 착안한 것으로, 아이들을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가치로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다섯 명이 함께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권진현 기자]

육아휴직 9개월째다. 13년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던 컨베이어벨트에서 이탈한 기분이다.

컨베이어벨트에 있는 동안엔 분명히 어딘가 고장난 것 같았지만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외벌이 가장인 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이라도 할 것처럼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막상 육아휴직을 사용한 후 마주한 현실은 허무할 정도로 무탈했다.

등원과 하원을 시키고 아이들 식사를 직접 준비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끝없는 집안일의 실체를 목도하면서 돈으로 환산되는 가장의 노동과 공식적으로 언급되지조차 못하는 가사노동 중 무엇이 더 힘들고 서글픈지 생각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가족여행을 수 차례 떠나며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때만 되면 따박따박 들어오던 급여는 중단되었지만, 아무런 눈치를 보지 않고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은 돈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감동과 만족감을 주었다.

비록 맞춤법이 틀리고 삐뚤삐뚤한 글씨였지만 아이들은 수시로 나에게 '사랑한다'라고 적힌 편지를 건네주었다. 아이들의 순전한 애정은 고된 노동과 번아웃으로 텅 빈 내 삶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육아휴직이라는 험난한 과정
 
 육아휴직을 가로막은 가장 큰 벽은 '비현실적인 육아휴직 수당'.
ⓒ elements.envato
 
"쯧쯧. 남자가 육아휴직이 뭐고."

실제 들었던 말이다. 모두가 동일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 또래 어르신들이 육아휴직 중이라는 내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뭔가 눈치를 봐야 하는 것 같은 이런 상황이 불편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당장 일을 하지 않고 도대체 왜 쉬고 있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었다. 대답을 들은 어르신들의 표정에서 당혹스러움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장 업무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큰 질병이라도 있어야 육아휴직을 사용할 자격이라도 생기는 것일까. 나에게는 절실한 '육아휴직'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달나라에 가는 것처럼 생경하게 비치는 듯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전 직장동료들이 못내 눈에 밟혔다. 만약 내가 일을 쉬게 된다면 기존에 내가 맡은 일은 나머지 인원들이 떠맡아야 함은 불 보듯 뻔했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내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다.

채용과 인사라는 것이 수학문제를 푸는 것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통해 경험했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반기 이상 내 자리가 대체된 인력이 아닌 '채용공고'의 상태로 머무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육아휴직을 가로막은 가장 큰 벽은 '비현실적인 육아휴직 수당'이었다. 제도상으로 '통상임금의 80%를 지원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상한액이 낮다 보니 실제로는 통상임금의 40% 수준도 되지 않는 금액이 지급된다.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1인당 최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150만 원이다. 하지만 현실은 75%인 112만 5천 원만 수령한 뒤, 나머지 25%는 복직 후 6개월 이상 근속 시 '사후지급금'으로 지급된다. 생활비가 부족한 육아휴직 기간에 전체 금액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만약 육아휴직 기간 동안 사용할 비상생활자금을 따로 비축해 두었거나 최소 1~2천만 원 정도의 대출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면, 육아휴직이 아닌 '육아구직'이라는 참담한 현실과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육아휴직 기간 동안 '주 15시간 이상 일을 하거나 월 150만 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는' 경우, 국가가 지급하는 휴직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어있다. 2023년 최저임금 기준으로 주 15시간 근무 시 매달 받는 급여는 57만 7200원이다. 육아휴직 중인 사람이 매월 합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소득은 육아휴직 수당과 60시간의 노동을 통해 얻은 급여의 합인 170만 2200원이다.

1년이라는 짧지 않은 휴직기간을 보내면서 종종 금전적인 압박을 느낀다.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쉽게 구해지지도 않지만, 그 정도의 일을 한다고 해서 궁핍한 삶이 드라마틱하게 개선되지도 않는다. 사실 방법은 있다.

'일을 했다는 흔적이 남지 않는'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아르바이를 하는 것. 이른 새벽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하면 최소 10만 원이 넘는 일당을 받을 수 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내일이라도 당장 복직해야 하나? 지금은 자리가 없는데 어떡하지? 그런데 원하는 시기에 복직을 할 수는 있을까?'

비현실적인 육아휴직 수당

육아휴직 수당이 현실에 맞게 조정되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4인 가족이 매달 112만 5천 원으로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육아휴직을 쓰거나, 육아휴직을 쓰고도 일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각 지자체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작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서울시는 '육아휴직 장려금'을 도입해 부모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1인당 최대 120만 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경남 거창군에서도 고용보험법상 육아휴직 급여지급요건을 충족한 부모에게 월 30만 원씩 최대 6개월의 장려금을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자발적이고 혁신적인 변화도 필요하다. 롯데그룹의 경우 배우자 출산 시 '최소 1달 이상 의무 육아휴직 사용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또한 별도의 신청이나 상사의 결재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으며, 육아휴직 이후 1개월은 통상임금의 100%가 지원되고 있다.

한국남부발전은 출산휴가를 마친 후 100% 자동으로 육아휴직으로 연결되는 시스템인 '전원 자동 육아휴직제'를 지난해 도입했다. 육아휴직 중인 사원의 동료에게 최대 10만 엔의 '육아휴가 직장 응원 수당'을 지급한다는 일본의 보험회사인 '미쓰이쓰미토모 해상화재보험'의 기사를 읽으며 육아휴직 경험자로서 무척 많은 공감이 되었다.

최근 고용센터에서 일하던 30대 여성 김아무개씨가 6개월 된 아기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썼다가 폭언을 듣고 퇴사를 권유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녀의 상사는 "(김 씨가) 회사 입장에서 생각을 안 해준 상황 밖에 안 된다. 그러면 OO 선생님(김 씨)은 진짜 양아치밖에 안 된다. 이건 그냥 누가 봐도 진짜 양아치다"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에 따르면 사업주는 만 8세 이하의 자녀를 둔 근로자의 휴직 신청을 허용해 주어야 한다. 국가는 자녀의 육아와 양육을 위한 육아휴직 제도를 수십 년 전에 이미 만들어 놓았지만, 육아휴직이 실행으로 이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험난하다. 이러한 현실은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변화는 더디고 힘들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영역도 아니다. 출산과 육아가 '어리석고 미련한 짓'이라는, 모든 세대에 걸쳐 비관적인 풍조가 이어진다면 초고령사회, 출생률 꼴찌 국가에 이어 '국가 자체의 소멸' 또한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노동시간이 길고 맞벌이 가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는 출산과 양육이 가능하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닌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않을까. 더 이상 육아휴직으로 인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거나 직장 생활을 포기해야만 하는 암울한 현실이 아닌, 누구나 육아휴직의 권리를 당당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 group 》 육아삼쩜영 : https://omn.kr/group/jaram3.0
지속가능한 가치로 아이들을 길러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육아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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