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긴축 장기화에 '엔화 약세' 압박에도…BOJ "완화정책 유지"

오효정 2023. 9. 2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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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운데)가 21~22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은행(BOJ)이 현행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기록적인 엔저(低) 지속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경제 및 물가 관련 불확실성이 큰 만큼 더 지켜보겠다는 판단이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불확실성이 높아 정책 수정 시기를 구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22일(현지시간) BOJ는 전날부터 이틀간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가 종료된 뒤 “만장일치로 현행 금융완화정책 유지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일본은 저물가와 경기 부양을 위해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뒤 단기금리를 –0.1%로 묶어두고 있다. 가계와 기업 자산이 소비와 투자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또 수익률 곡선 제어(YCC) 정책을 도입해 10년물 국채수익률 상한선(1%)을 정해 놓고 시장 금리가 이보다 높아지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금리를 낮춰왔다. 이 같은 초 완화적 통화 정책은 전례 없는 엔저 현상으로 이어졌다. 국채 금리 상승을 인위적으로 막아 미국 등 주요국과의 금리 차가 벌어지면 엔화가 빠져나가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 달러화 대비 약 11% 하락했다.

시장이 이번 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건, BOJ가 통화정책을 정상화하겠단 여지를 내비칠 거란 예상 때문이었다. 초 완화적 통화 기조를 완전히 폐지하진 않더라도, 그간 정책 결정문에 명시하던 ‘필요에 따라 추가적인 금융완화 조치를 강구한다’는 문구가 삭제될 거란 전망도 있었다. 20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연 5.25~5.5%로 유지하면서도 긴축을 강화하겠단 기조를 분명히 한 것 역시 BOJ의 노선 변경 전망에 힘을 실었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가 엔화 약세에 압박을 가하는 만큼, 정책 기조 변화가 불가피할 거란 관측에서다.

현재 미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일본 국채 수익률의 약 6배로 내외금리 차가 이미 크게 벌어져 있는 상태다. 21일 미 국채 10년물은 긴축 전망을 반영해 16년 만에 최고치(4.48%)를 기록했고(국채 가격 하락), 이날 달러‧엔 환율도 장중 148.46엔을 기록하는 등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엔화 가치 하락).

엔화 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중구 명동의 환전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일본은행은 22일 기록적인 엔저에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BOJ는 “당분간 물가와 임금 동향을 신중하게 파악하면서 금융 완화대책으로 경제를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해외 경제 회복세 둔화, 자원 가격 동향 등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 충분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 기무라 타로 이코노미스트는 “임금 상승은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지만, 고용시장 약세로 불안정하고, 국내 수요가 위축되고 있어 아직 긴축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우에다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물가안정 목표의 지속적, 안정적인 실현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에는 이르지 못했다”며 “인내심을 갖고 초 완화 통화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총무성이 이날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3.1%를 기록, 12개월 연속 BOJ 목표치(2%)를 웃돌며 3%대를 유지했다. 반면 실질임금은 지난 7월까지 15개월 연속 하락했다. 우에다 총재는 CPI 상승률이 3%대를 지속하는 것을 두고 “일시적 요인”이라며 “향후 2%대의 물가 상승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향후 글로벌 경기 부진 등의 여파로 물가상승률이 둔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에다 총재는 “물가 목표 실현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YCC 폐지와 마이너스 금리 수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엔화 약세에 대해서는 “경제와 물가 전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우에다의 이날 연설 기조는 예상된 톤이라는 분석도 있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우에다 총재가 너무 비둘기파적이거나 매파적으로 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줄타기를 하며 연설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통화정책 전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시사했다가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급격하게 치솟으면 각종 대출 금리와 연동돼 기업과 가계의 부담을 높일 뿐 아니라, BOJ가 더 많은 채권을 사들이면서 생기는 부작용을 악화시킬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는 “과거 BOJ가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한 뒤 디플레이션 탈출에 실패한 경험 등을 바탕으로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다만 엔저가 계속되면 BOJ의 통화 정책 변화 시점이 당겨질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밥 미셸 JP모건자산운용 최고 투자책임자는 “달러‧엔 환율이 150엔을 웃돈다면 수입 물가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며 “BOJ가 긴축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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