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마 꿈 꾼 다음날 아들이 죽었다…난중일기 해몽한 '순신'

나원정 2023. 9. 2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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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순신'
11월 7~26일 예술의전당 초연
이순신 장군의 삶과 고뇌를 담은 창작가무극 '순신'이 오는 11월 7~26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한다. 주인공 순신 역은 무용수 형남희(사진)가 맡아 육체적 표현을 극대화했다. 사진 서울예술단

중국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담은 판소리는 있는데 왜 정작 조선의 명장 이순신(1545~1598)에 관한 판소리는 없을까. 창작가무극 ‘순신’ 탄생 배경이다.
서울예술단이 임진왜란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의 삶과 고뇌를 담은 신작 ‘순신’을 오는 11월7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초연한다. 연출가 이지나, 음악감독 김문정, 소리꾼 이자람, 무대미술가 오필영 등 정상급 창작진이 뭉쳤다. 판소리, 현대 음악에 한국적 군무, 최첨단 무대미술을 더한 ‘융복합 총체극’을 표방했다.


"中적벽대전 판소리 있는데 이순신 왜 없나"


작창을 맡은 이자람은 21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적벽가’에 비견해볼 만한 대전(大戰) 판소리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순신의 해전 판소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8년 전 이지나 연출이 이순신 뮤지컬을 제안받고 이자람과 구상하다 무산된 걸 서울예술단 제안으로 되살리게 됐다.
'순신'은 창작 뮤지컬 '바람의 나라'의 이지나 연출(왼쪽 두번째)과 더불어, 소리꾼 이자람(맨왼쪽), 음악감독 김문정(맨오른쪽)이 작곡에 참여하는 등 정상급 '드림팀'이 뭉쳤다. 사진 서울예술단
‘순신’은 이순신 장군이 1592년 임진왜란 발발부터 7년간 남긴 『난중일기』 속 40여개 꿈 이야기에 주목했다. 이지나 연출은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이 굉장히 꿈을 많이 꾼 사람이다. 고통과 희로애락이 농축돼있고 예지몽도 많았다. 그 꿈에 상상을 보태 임진왜란 상황과 엮어냈다”고 설명했다. 총 관객 2489만명을 동원한 이순신 영화 ‘명량’(2014)과 ‘한산’(2022), 2005년 시청률 1위를 기록한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최고 시청률 32.2%) 등 기존 작품들과 차별화했다.

무용수가 이순신 역…소리꾼·코러스 내면해설


‘순신’에선 이순신의 흉몽과 함께 임진왜란이 닥친다. 한산대첩 때와 같은 상서로운 길몽 뒤엔 명량대첩 대승을 거뒀다. 말에서 떨어진 자신을 막내아들이 끌어안는 꿈을 꾼 다음 날엔 스무살 막내아들 면의 전사 소식이 날아들었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떳떳함이거늘 (중략) 아아, 내 아들아….”(『난중일기』)
‘순신’은 영웅 이순신의 인간적 고통에도 초점을 맞췄다. 이순신 역을 서울예술단 무용수 형남희가 맡아 춤‧움직임 등 육체 표현을 극대화했다.
'노인과 바다' 등 해외 고전을 판소리로 재해석해온 소리꾼 이자람은 '순신'에서 작창 및 극중 소리꾼이자 서술자 역할을 하는 '무인'(사진) 역을 겸했다. 서울예술단 신예윤제원이 무인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사진 서울예술단
이지나 연출은 “순신의 대사는 몇마디 되지 않는다”면서 “‘순신’의 내면을 말해주는 역할은 이자람 작창이 맡는 ‘무인’ 캐릭터(소리꾼 겸 해설자), 고대 희랍극에서 차용한 코러스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인 역은 판소리 신동 출신의 서울예술단원 윤제원과 더블캐스트다. 다만, 순신의 아들 면(권성찬), 순신의 어머니(고미경) 역할은 뮤지컬적 대사와 노래로 표현한다. 극중 유일한 허구의 캐릭터인 남장 여자 무사 하연(송문선)과 면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도 가미했다.

김문정 "판소리·뮤지컬 음악 퍼즐 맞춰가"


명량·한산·노량 등 주요 해전 장면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춘 전통 판소리와 사물, 피아노 선율과 합창이 어우러진다. 작곡을 맡은 김문정은 “판소리와 어우러지는 유기적인 (현대 뮤지컬) 음악을 연구하고 있다. 퍼즐처럼 맞춰가는 과정”이라 설명했다.
오필영 무대미술 감독은 “거북선, 당당히 서 있는 모습 등 이순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이 우리 작품의 표현 방식은 아니다. 관객의 상상을 제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 ‘데스노트’ 등 전통적 무대미술, LED조명을 활용한 첨단 기술을 넘나든 그는 ‘순신’에선 이순신의 고통을 20m 깊이 ‘고통의 동굴’이란 신개념 공간에 담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빛을 투사하는 영상 기술 ‘프로젝션 매핑’을 통해 정서적 표현을 준비중이라며 “지금껏 보지 못한 형태의 시각효과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BTS 한국적인걸로 인기 얻지 않아, 퍼포먼스 가치 있어야"


서울예술단 측은 “한국적 표현이 강한 총체극 양식의 창작 뮤지컬, 가무극은 국제 교류차원에서 해외 공공기관‧단체의 호응이 있다”면서 ‘순신’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내다봤다.
이지나 연출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구호는 현실에 맞지 않는다. 방탄소년단(BTS)이 한국적이어서 인기를 얻은 건 아니다. 문화는 퍼포먼스로 가치 있어야 한다”면서 “대중성과 순수예술성을 어떻게 잘 버무려서 독특한 밥상을 차릴 것인지가 우리의 숙제”라고 말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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