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처음으로 명품도 사봤다…'가성비 끝판왕' 이 나라
10년째 신혼여행 ⑥ 튀르키예 이스탄불
아내의 여행
튀르키예와는 인연이 남다르다. 이 나라에서만 한 달 살기를 다섯 번이나 했는데, 그중 세 번을 이스탄불에 머물렀다. 요즘 간혹 해외 뉴스에서 이스탄불 소식을 접할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바로 돈 때문이다. 최근 몇 년새 자이로드롭을 탄 것처럼 환율이 떨어져 버려서다.
튀르키예의 화폐 단위는 ‘리라’다. 이스탄불을 처음 찾았던 2012년에는 1리라가 우리 돈 700원 정도였다. 당시 ‘양고기는 튀르키예가 싸다’는 소리를 듣고 고깃집을 갔는데 웬걸, 140리라(약 10만원)가 적힌 계산서를 보고 ‘여기도 유럽이구나’ 싶었다.
그다음 해 이스탄불에 돌아왔을 때는 1리라가 600원꼴이었는데, 서울과 비슷한 수준의 물가였기에 부담 없이 먹고 즐길 수 있었다. 다시 1년 뒤 방문 때는 급기야 원·리라 환율이 500원대 이하로 떨어졌다. 당시 ‘이러다 나라가 망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는 현지인도 여러 번 목격했다.
리라 가치가 200원 아래로 떨어진 2018년의 어느 날. 우리는 이스탄불의 버버리 매장 앞을 둘러싼 긴 줄을 목격했다.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생긴 환차익을 누리고자 많은 사람이 명품 매장에 몰려든 거였다. 종민도 이날 태어나 처음으로 명품 안경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지난해 팬데믹 끝물에 방문했을 때는 1리라가 100원대를 간신히 유지 중이었는데, 흡사 동남아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10만원 주고 먹었던 양갈비를 단돈 1만5000원에 맛볼 수 있었다.
현재는 원·리라 환율이 50원대까지 떨어졌다.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물건값이 급격히 상승하는가 하면, 여행객을 상대하는 관광지의 물건값도 부쩍 올랐단다. 높아진 물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이 튀르키예로 떠날 적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한 달 살기’처럼 관광지 투어보다 로컬 문화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라면 떨어진 환율을 몸소 느낄 수 있을 테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여행에서 경비만큼 중대한 문제도 없지 아니한가.
남편의 여행
첫 ‘이스탄불 한 달 살기’는 끔찍했다. 숙소가 문제였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경험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최악의 집이었다. 숙소는 6개월 전 예약을 마쳤다. 꼼꼼히 따져 골랐지만, 새벽 6시에 도착한 숙소의 몰골은 처참했다. 양말과 옷가지 뭉치가 구석에 쌓여 있었고, 방 전체에서 찌든 내가 났다. 평생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신 아버지의 서재보다 냄새가 강력했다. 우리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집주인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더러우면 좀 치워 줄까?”
세계 곳곳의 시장에서 호객 행위를 당해봤지만, 손님을 불러 앉혀 놓고 그들의 전통차를 무한 리필해주는 나라는 튀르키예가 처음이었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중 가장 큰 곤혹이 바로 이 느닷없는 초대였다.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건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자리에 앉혀 놓고(그도 여의치 않으면 가판 구석에 세워 놓고) 전통차 ‘차이’를 연신 따라줬다.
이스탄불에서 한 달 살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나도 이제는 제법 능청이 생겼다. 요즘은 차이를 한잔하고 싶으면 ‘그랜드 바자르’ 시장으로 씩씩하게 들어간다. 차이를 얻어먹는 나만의 방법도 있다. 일단 인상 좋아 보이는 상인의 가게 앞에서 물건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아지! 부 네카다르?(아저씨! 이거 얼마예요?’)하고 물어보면 대번 점원이 가게 안쪽으로 손짓한다. 자리에 앉으면 차이를 대접받을 수 있다. 이제는 더듬더듬 대화도 주고 받는다. ‘네레리슨(어디서 왔냐)’ ‘귀네이꼬레(남한)’하는 식의 간단한 회화지만, 차이 한 잔을 마시는 동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첫 이스탄불 여행 때 우리는 결국 담배 냄새보다 역했던 그 방을 빠져나왔고, 급하게 다른 숙소를 구했다. 새 숙소는 바닷가를 끼고 있는 근사한 집이었다. 비용이 맞지 않았지만, 우리의 사정을 들은 집주인이 기꺼이 방을 내줬다. 처음엔 그들의 대책 없는 붙임성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넘치는 인간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스탄불에 다녀온 뒤로 나도 제법 오지랖이 넓어졌다. 서울에서 외국인 여행자를 만나면 넘치게 참견을 하고 싶어진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한 달 살기 정보· 비행시간 11시간 · 날씨 봄, 가을 추천 · 언어 튀르키예어(어순이 한국어와 유사하여 익히기 수월한 편) · 물가 현지 동네 물가는 태국 방콕 수준(단,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지 물가는 달러나 유로에 맞춰져 다소 비쌈) · 숙소 500달러 이상(집 전체, 중심부에서 30분 내외 거리)
글·사진=김은덕·백종민 여행작가 think-thing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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