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돌연 변심 "우크라에 무기 안 줄 것"…곡물이 문제였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가장 강력한 우방을 자처했던 폴란드가 돌연 우크라이나에 무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둘러싼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발표됐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곡물 분쟁에도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무기 이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폴란드를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농산물 분쟁을 확대한다면 수입 금지 품목을 늘릴 것"이라고도 했다.
곡물 분쟁이 폴란드-우크라 공조 균열
앞서 폴란드 외교부는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를 초치해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항의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유엔 총회 연설 중 농산물 분쟁에 대해 "정치 극장판은 러시아를 돕게 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폴란드는 "전쟁 첫날부터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온 폴란드에 대한 부당한 대우"라고 분노했다.
실제로 폴란드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곧바로 국경을 열고 우크라이나 난민 입국을 허용해 지금까지 약 150만 명을 받아들였다. 이후 자국이 보유한 미그29 전투기와 독일제 전차 레오파르트2 등을 우크라이나 전달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지난해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의 대체 수출로를 제공하면서 양국에 균열 조짐이 생겼다.
지난해 러시아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주요 수출로인 흑해 항구가 폐쇄되면서 세계 식량 가격이 치솟자,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인접 동유럽 국가의 육로를 경유하는 우회 수출로를 터줬다. 우회 수출로 이용에 따르는 관세도 철폐했다.
값싼 우크라이나산 농산물이 동유럽 시장에 과잉 유입되자 이들 나라는 현지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다. 일부 국가에선 농민 시위가 잇따르고 자국 선거에도 영향을 주는 등 정치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결국 EU는 지난 5월 폴란드·루마니아·헝가리·불가리아·슬로바키아 등 5개국에 대해 우크라이나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경유만 가능하도록 했다. 4개월 뒤인 지난 15일 EU는 "시장 왜곡 현상이 해소됐다"며 다시 동유럽 5개국에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 금수 조치를 해제했다.
하지만 폴란드·헝가리·슬로바키아는 EU 결정에도 자국 농민 보호를 위해 자체 금수 조처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이들 3개국을 세계 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갈등이 격화돼왔다.
총선 앞둔 '표심' 전략 가능성
폴란드가 무기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양국 갈등 격화는 많은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서방이 지원하는 무기는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를 통해 수송된다. 우크라이나가 사용한 경험이 없는 서방 무기가 공급될 때 폴란드는 우크라이나군 훈련을 도왔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폴란드는 감정을 접어두길 바란다"며 진화에 나섰다.
AP통신 등은 폴란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발끈한 배경이 다음달 치러지는 총선이라고 지적했다. 집권당인 법과정의당은 농촌을 지지 기반으로 하고 있어 곡물 수입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서다. 또 법과정의당과 경쟁하고 있는 극우연대는 현 정부가 지나치게 우크라이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비판하며 표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날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우리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므로 그들(우크라이나)이 우리의 이익을 이해하길 기대한다"며 "그들의 모든 문제를 존중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농민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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